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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세상 살아가는 우리들은
옛추억을 살려준다는 의미로 혹은 건강을 위한 건강식으로
아니면 입맛을 살려준다는 맛맛으로
어쩌다 한번씩 일부러 찾아가며 먹어보는 그보리밥.
우리들은 보리고개를 넘긴 세대는 아니지
그래도 내겐 보리하면 가난이 먼저 떠오르게 하네.
왜냐구
난 어릴적에 순 꽁보리밥으로 하루 3끼를 살았거든.
그래 보리밥만 묵고 자란내가 어느날 칙간에 앉아 뒤를 보는데
똥구녁이 찢어져 피가 나드라고
그래 거기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들었것다
그때서야 우리집이 가난하고 못산다는것도 알게되었거든
그래 내겐 보리하면 좋은추억보다 안좋은 기억이 더 많은가봐
그런데 난 이렇게 우리집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려고 하는지 몰라
어찌되었건 친구들
똥구 안찢어져본 느그들은 가난을 야그도 하지마ㅋㅋ
어째거나 겉보리 야그를 하려면 보리 야그부터 하고 가야것제
보리
가을 걷이가 끝난 들판엔 1년동안 마당 모퉁이에 모아둔 퇴비 거름을
지게며 손수레로 끌어내느라 일손들이 바빠지고
벼를 베어낸 논 바닦엔 아부리는 배고픔 참아가며 아껴두었던
보리종자를 뿌리시고 어머니와 우리들은 뒤엄이며 각종 퇴비들을
아버지가 씨뿌려놓은 뒤를 쫓아 흩뿌리기를 하고나면
소 쟁기달아 보리 두덕을 만들고 온식구 합세하여 보리씨 흙덮기를 해주면
보리는 이내 겨울을 이겨보겠다고 싹을 튀우고 그렇게 보리갈이가 끝이나면
때는 한해에 마무리가 되어가는 동짓달로 들어서고
동지 섣달 추운 겨울날에도 보리는 배고픈 농부들에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냥
파릇함으로 농부들에 희망을 주지.
아부지는 이때부터 이듬해 보리 가실때 써야할 새끼줄을 겨우내 마련 하시거든
동지 섣달 기나긴 밤에 단칸 방에서
아버지는 웃묵에서 새끼를 꼬시고
어머니는 아랫묵에서 모시를 삼으셔.
또 저짝 꾸석지엔 꼬물 꼬물 우리들이 잠들어있어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많으셔
일곱자식씩이나 낳아주시고 어머니는 따뜻한 아랫목을 아버지께 한사코 양보를 하시건만
아버지는 단한번도 아랫목을 차지해 본적없이 겨울은 지나고
이듬해 4~5월이 되면 추운겨울 잘도넘긴 보리들은 목아지를 내밀어
이때부터 여심들 또한 흔들리기 시작해
보리 목아지 바람에 흔들려 출렁거림은
수많은 사랑한다는 말로도 못잡았던 여인에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여이은 봄만되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봄바람이 나는거지머.
그래 여심을 잡기위한 수없이 많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보리밭 앞에만 서면 여인은 저절로 흔들려 쓰러지거든
그래 사랑을 하려거든 보리밭으로 가라는 한밭에 아그가 하는 야그일뿐이고
보리 누렇게 익어 목아지를 숙이면 아버지는 식구 숫자만큼 낫을 준비하시고
울타리 너머로 이웃에 손을 빌려가며 보릿가실이 시작되고
낫질을 못하는 우리들은 이삭줍기로 하루를 보내지
모아놓은 보리단을 이웃집 품앗이로 보리타작을하면 보리가실은 끝이나.
이때또 보리 타작이 끝난 보릿대 베늘은 아이들에 좋은 놀이터가 되지.
간픈 아그들은 밑에다 굴을 파고 응가까지 해놓거든.
그럼 뒤에 들어간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그걸 ... ㅋㅋㅋ
타작이 끝난 보리는 덕석에 당글게로 널어 7~8월 뙤약볕에 잘 말리면
농부들에 마음또한 뿌듯해지지.
그런데 여기서 덕석에 널어놓은 보리가 말썽이라
그때는 우리가 철이 들락 말락 할때에 보리를 한되빡즘 퍼다가
남댕이 건너가 복숭아도 사먹고 하던때.
하루는 덕석에 널어놓은 보리를 한되빡 퍼내어 보릿대 베늘속에 감춰두고
덕석 채 덮었다 다시 널기를 하면 표시도 안나거든.
그래 맘 턱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디.
엄니가 감자삶는다고 보릿대로 불 넣으시다가 아이고 그만 내가 보리 퍼놓은것 들켜 버렸네
그래 한 3일쯤 쫓겨나서 집에도 못 들어 가고
이웃 친척집에서 밥 얻어 묵었던 기억속에 보리가 되어버렸네.
어째거나 야그는 겉보리로 넘어가.
겉보리
늘보리? 알보리를 빗자루로 쓸어내면 껍딱이 덜 벗겨진 추그렁 보리가 모아지지
조금은 천덕 스러운듯 하지만
이름부터 참우리것 같은 정겨운 겉보리
부지런한 우리들에 어머니에 손을 거치면 이 겉보리 또한 없어서는 안될 먹거리를
만들어 주는 거거든 . 어머니는 겨울 어느날에 겉보리 자루를 꺼내서
일부는 엿기름 용으로 촉을 틔우고 일부는 방앗간에 가서 늘보리를 통째로 빻아오셔
물축여 진익여 메주 절반쯤 크기로 뭉쳐 따뜻한 아랫묵에 이불 푹 처덮어 놓으면
발효가 되는데 이걸 누룩 띄운다고 하지
이렇게 만들어진 누룩을 엄니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날짜를 계산하셔
시루에 쩌낸 꼬두밥하고 누룩가루를 잘 섞어서 솔잎 몇개 띄어서
또 뜨끈 뜨끈한 아랫묵에 놓고 두꺼운 솜이불 푹 처덮어놓고
한닷새쯤 지나면 술독에선 술이 뽀글뽀글 거리면서 익기 시작해
이런때 혹자들은 술 익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글도 써대쌌으마
난 그런 좋은글은 못쓰고 그냥 엄니가 담가놓은
술 옴박지 깨묵은 야그나 쫌 해보께
어느해던가 내깐엔 철이 조금 들었다고 아부지 몰래
밤이면 막걸리도 한잔씩 마시고 들어와 몰래 살짝 내방으로 들어가 잠을자곤 하던 때였어
이때 내방은 안방에서 저멀리 떨어진 대문 옆에 있었거든
그래 그때도 울 엄니는 때를 꼭 맞춰 술을 담그셨어
그래 섣달 그믐날밤 아그들은 놀다가 설새러 간다고 다들 돌아가고
혼자 앉아 있자니 심심 하드라고 그때 생각난것이
엄니가 담가놓은 그 막걸리 생각이 나드라고
엄니는 막걸리를 시원하게 하려고 장독대에 두셨드마
그래 고놈에 막걸리를 동이째 내방으로 들고왔지머
들고와서는 부엌에가서 툭시발 한개 가지고 와서
엄지 손가락 절반쯤 푹 담가서 휘휘 저어 갖고 한잔 묵고
또 이런 저런 생각 하다 또 한잔 묵고 그만 묵으까 하다가 한잔만 더묵고 하다가
그냥 저냥 몇잔 묵고서 그만 묵어야지 하고선 그래도 아쉬워
사발에 한잔 듬뿍 떠서 방바닥에 놓고
술 독아지 갔다 놓으려고 일어서니까 머리가 빙~~잉 돌드라고
간신이 정신을 차리고 방문을 살짝 여니까 밖에는 진눈깨비가 오고 있드마
그래 정신을 다시한번 가다듬고 진눈 깨비가 절반쯤 차있는 검정고무신을 포도시 찾아서
탈탈 털어 신고 술동이 두손으로 꽉 움켜쥐고 딱한발짝 띠었는디
아이구야 이일을 어째야 쓰까나 술동이 안은채로 뒤로 그냥 미끄러져 벌렁 누워 버렸으니
술동이는 내 머리에 와서 박살이 나불고 엄니 아부지는 무슨 날린고 싶어서 나오시드마
엄니는 맨발로 뛰어나오시다 말고 그냥 서 계시고
아부지는 아무말씀없이 대문쪽으로 가시드마 대문부터 꽁꽁 잠그시드라고
난 그때 까지도 왜 대문을 잠그는지 모르고 술도 묵었것다 그냥 있었지머
대문 다 잠그신 아부지가 지게 작대기를 들고 와서 지게 작대기를
꼭 콩 타작할때 도리깨질 하듯이 휘두르시는디
야, 그때서야 아부지가 대문잠근 깊을뜻을 알겠드라고
그래 도망은 생각도 못하고 술도 묵었겄다
그냥 대가리만 안깨지면 살것지머 하고선
추운 겨울날 갱아지 새끼 주둥이 지 뱃속으로 처 넣듯이
두손으로 머리만 감싸고 진눈 깨비 내린 질퍽 허연한 마당을 때굴 때굴
굴러 다니면서 작신 맞다가 여기 저기 가릴것 없이 휘두르는 아부지의 도리깨질식 매질에
그래도 살려고 감쌌던 머리가 깨지고서야 아부지에 매질은 끝이 났거든
그래 난 그때도 차라리 첫 방에 대가리를 맞아 불걸
다른데 둬지게 맞다가 대가리 깨진께 그것도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고.
어째거나 엄니는 내 깨진 머리를 보고선 숟가락 들고서 된장독으로 가시더니
보리 섞인 된장 한숟가락 푹 퍼와서 내 깨진 머리에다 척 발라서
막둥이놈 기저귀 쓰던 광목 쫘악 찢어서 머리 칭칭 감아주고 들어가시더만
들어가시면서 또 한말씀 하시는디 올맹얼은 셋째놈이 다 자셨그만 쯔쯔쯔 하시면서
저런 썩바리를 호랭이는 머한지 모르겠어 하고선 들어가시고
난 혼자 마당에 멍하니 서있다가 내방으로 들어오니까
아까그 아쉬워서 떠내놓은 막걸리 한사발이 덩그러니 남아 날 반기데
여지껏 뜨근한 아랫묵에 있던 막걸리 사발을 끌어 않고 얼마나 있다가
이술한잔으로 천당이건 지옥이건 가버렸은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으로
쭈욱 드리마신 막걸리 맛은....
또 마시고 난 툭시발을 토방 댓돌에다 부러 힘껏 내리처 박살을 내불고
그냥 날잡아 잡수셔 하고선 내몰라라 떨어져 불때
난 잘은 못하는 술이지만 여지껏 그때에 술맛은 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고
술 한잔이 그렇게도 반가와 본적도 없드라고
그러나 저러나 이놈에 것을 언재 끝을내 보리쌀 야그를 해야하는디
보릿살
왜 살이냐고
그것은 다우리들에 살아온 인심아니던가
우리집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는 것이 있을땐 울타리 너머로 나눠주고
나눠받는 우리네 정서말이여 그래두개나 되는 ㅅ을앞집에 하나 나눠 줬네 왜
그러면 안되는가?
그런것 있지않은가 우리집도 못살았지만 우리이웃도 거기서 거기였거든
그래 우리 옆집 아주머니가 저녁 찬 거리가 시원치않을땐
울타리 너머로 장떡을 찾아 불러
"우리집 아저씨가 장떡집 김치가 맛있다하네"하면서
작은 보세기 하나 건네주면 우리어머니는 아무말없이 그걸 받아서
우리집에 더 큰 툭시발에다 맛이야 있건 없건 수북히 담아 받았던 작은사발
위에덮어서 말없이 건네주던 그런 인심 말이여
어느때던가 난 물레 마루에 걸터앉아 두다리 흔들흔들 하면서
어머니에 이런 모습보면서 철없는 마음에도 혼자 좋아 혼자웃어보는때도 있었거든 허허허..
그나 보리쌀 야그나 해보자고
우리집엔 형제가 7남매나되 항상 아침이면 물레 마루끝엔 도시락이 서너개씩 담아져 있었거든
그래 하루날 아침에는 도시락 반찬을 보니 전에 관악산갈때 마눌이 싸준 시에 꼬부라진 김장 김치보다
조금더 심한 팍 삭은 실가리 되기전에 담아놓은 우거지 비슷한것을 도시락에 담아 놨드라고
그래 그것을 말없이 들고가 꾸정물이 절반쯤 차있는
도구통에다 탁 털어불고 그냥 학교에 갔지머
학교 갔다 온께 집에는 아무도 없지 배는 고프지
그래 여기 저기 설강 구석지 선반위에 솥단지속 아무리 찾아도 묵을것한개 없는거라
그래 보니 처마끝에 걸려있는 보리쌀 삶아놓은 바구니가 보이드라고 그래 그것이나 먹어볼까
하고선 꼰지발 서서 목아지 쭈욱 빼고 내리려는디 아니 그게 달락 말락 달락 말락 하다가
마당에다 그냥 업어처 부렀네 이걸 어째야 쓰까나 하고 있는디
엄니 아부지 들에갔다 들어오시드마 엄니는 네손 잡고 부엌으로 들어가시고
정재문고리 숟가락으로 꼽아 잠가 놓고 절반쯤 닳은 정재 빗지락 으로 작신 두들겨 맞고 나오니까
아부지가 아침에 내가 도구통에 털어버린 그 도시락밥을
꾸정물 속에서 그대로 건저 놓은셨드라고 그래 그걸 두말 할것없이 묵으라 하시드마
그래 그놈 다묵고 실컷 울다가 서럼에 지처 정재방에서 살짝 잠이들었는디
어디서 서럽게 우는 울음소리에 잠이 깨서 부엌문 빼곰이 열고 부엌을 보니
어머니께서 부엌바닥에 앉아서 슬피 울고 게시드라고
울음끝에 한마디씩 내 뱉은 말은
못 입히고 못먹여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시면서
앞치마로 눈물닦아 우시드라고
에이, 더는 못쓰겠네
추신
친구들,
난 그냥 글은 잘 몰라
글에대한 지식도 없어
아니 글이라고 할것도 없지
철자가 맞는지 맞춤법이 맞는지 그것조차도 몰라
앞에서 이말했다 끝에선 저말로 끝을내는 앞도 뒤도 잘 몰라
그냥 노가대일 뿐이야
여기 우리 카페 동창방엔 너무나 좋은글
정말 가슴에 와닿는글 너무도 많아
더 좋은글 올릴수 있는 친구들 그냥 조용히 있을뿐이란 것도 알지
다 알면서도 몇자 야그로 올려보는것은
흠은 흠데로 웃어주고 흉은 흉데로 미소지어줄
바로 너 친구 있기때문이고
그냥 엇 비슷하게 살아온 우리들에 어린시절 회상하며
친구에 혼자웃는 쓴 미소 생각하면서 주절거려 보는거여 ㅋㅋ
아~이제는 그 좋다는 고향에말도 다 떨어지고 무엇으로 한마디 말을 해볼끄나
ㅡ한밭에서 썩바리같은 엉아가 ㅡ
첫댓글 울 남편이 중학 까페에 올린글 시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글이기에 ...
저도 시골 농부의 1남 5녀의 딸이기에...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새삼 떠오르네요.
선배님 ~~~~~넘 멋진글이예요~~~~구수한 숭륭같은~~~~~지난날 그런 시절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만남도 없었을걸요~~~~그 덕에 아름다웠던 추억이 아스란히 자리잡았구요~~~~추억을 살려준 아름다움~~~~감사합니다
전 시골서 자잤진 안았지만,공감도되고 정말 멋있어요..조은글 고맙구요.항상 건강하세요 선배님~~
선배님 글읽으며 그옛날에 아버지께서 보리이삭 주워모으면 수발 사주시마던 말씀을 떠올려보고갑니다....언제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