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출근하니 청구가 돈많이 벌겠다며 핀잔을 준다. 다 이게 먹고살기위한
얼굴 디밀기이고, 짤리지 않기위한 대가리 상납이라 생각하니, 참 사는 것이
그렇다....
이런 맑고 청명한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가을길을 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침 저녁으로 다니는 길가엔 고추잠자리들이 하늘에 맴돌고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는 느낌이 확 든다.
아마도 이무렵쯤 될 것같다.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때가.
중학교에 들어가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자전거를 못타는 나는 자전거를 좀 겁낸
것 같다. 집에서 장사를 하는 덕분에 자전거와 일찌감치 친해질 수 있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자전거를 못타고, 그저 핸들잡고 끄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건 아마도 주위에서 쉽게보던 일반자전거가 아닌 짐자전거가 우리집 자전거의
전부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자전거보다 안장이 높고 뒷바퀴위의 짐받이가 굉장히
큰 넘이다보니 어리고 다리가 짧은 내가 타기에는 안장이 너무 높고, 자전거 전
체를 감당하기에도 많이 무거운 것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오늘은 그래저래 못배운 자전거를 느지막히 배운 사연을 올릴까한다.
그러니까 추석무렵이었는데 나는 평상시처럼 집안일을 돕는다고 짐자전거의 뒷칸
에 가벼운 쌀자루(아마 반가마쯤은 된 것같다. 40Kg)를 싣고 쌀배달을 가며 자전
거를 끌고 갔다. 배달을 마치고 오는 길에 평상시에도 자주보던 모습이지만, 그날
따라 유난히도 눈에 들어와 거슬리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한 장면이 눈앞에 연출되
고 있었다.
덕소초등학교 부근인가 생각되는데, 월문리에 사는 상급학년 여학생들이 아주 멋
지게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다가와, 짐자건거를 낑낑거리며 끌고 오는 내앞을 휘
파람을 불면서 지나치는 것이었다. 우와 이거 공연히 속에서 벨이 꼴리기도 하고
부애도 끓고 그러더라.
"기집애들도 타는 자건거를 내가 못타다니...."
"우리집에도 저런 자전거가 있었다면 나도 저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뭐 이런 생각이었지.
그래서 끌고 집으로 가려던 자전거의 핸들을 돌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
혼자서 그 큰 짐자전거를 타볼려고 수도없이 메다꼲으며 옷이 엉망이 되도록
용을 썻지만 단 5미터도 못가고 쳐박기 일수였다.
느지막히 옷이며 얼굴이 엉망이 되어 돌아온 나를 본, 종업원 형이 해거름의 한
가한 시간에 다시 학교운동장으로 데리고 가서는 뒤에서 자전거안장을 잡아주며
곁에서 달리며 뛰며, 손잡이를 잡아주며 애써준 덕분에 운동장 한바퀴를 돌고는
자신감이 생겨 겨우 타게되었다.
이렇게 배운 자전거실력이 제법 늘어갈 무렵, 아버지께서 내게 배달일을 시키시
는 것이었다. 당시 월문리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있는 가게에 소주 한
상자를 배달하라시는 것이었다. 당시 나의 실력으로는 끌고는 갈 수 있지만 그걸
싣고 타고갈 실력은 못되었다. 그야말로 짐배달꾼으로서는 왕초보인 셈이지.
그래도 한번 해보려는 마음 하나로, 자전거에 소주 한상자(그당시에는 나무로된
상자에 40병의 소주가 들어있었고, 상자는 양쪽에 철사조 묶여있었지..)를 싣고
덕소삼거리를 지나 초등학교옆을 잘 지나갔는데.
비포장도로의 길 중간을 가로지르는 작은 또랑과 마주치며 일은 어그러지고 말았
으니, 그것은 아직 서툰 자전거솜씨로 그 작은 또랑을 날렵하게 건너서 박차고
오르지를 못하고는 그 도랑의 홈에 걸려서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만 것이다.
내가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문제는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함께 쳐박아진 소주상자
였던 것이다. 넘어지며 땅에 부딪히는 충격으로 소주는 병끼리 서로 부딪혀 반은
깨져서 소주가 물과 함께 또랑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었다.
겨우겨우 자전거를 일으켜세워 안깨진 소주병을 세어보니 20병도 안되는 것같았다.
이걸 어쩌나 곰곰히 생각하다 아무래도 집으로 가서 새로 한상자를 받아서 배달을
해야겠다고 핸들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니....어머니는 다친데가 없냐고 걱정을 해
주시지만, 아버님은 "그 스무병이라도 배달을 하고 와야지!"하고 되돌아온 날 호되
게 나무라시는 것이었다.
사실 그집은 급하게 소주가 한 열병이 필요해서 한 상자를 배달시킨 것이고, 아버
지는 종업원이 배달 나간 사이니 급한대로 내게 배달일을 시킨 것이데, 배달은 않
고 되돌아왔으니, 꾸지람을 할 수 밖에.
이렇게 시작된 나의 짐자전거타기는 중학교내내 집안일을 거드는 일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장성하여 객지로 밥벌이하러 나오기전까지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나와 마주친 상급생 누나들이 고맙기도 하다. 내게 자전거타기
의 용기, 아니 오기를 불러일으켜주셨으니 말이다.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어린시절 영화 한장면을 보는 느낌. 운동장에서 수도 없이 자전거를 메다꽂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여 안쓰러움이 일어난다. 하지만 칠전팔기로 겨우 자전거를 배운 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을것 같은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소년 권보!! 그때 해낸 그 실력으로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홧팅!!
첫댓글 자전거를 타고 우리집에서 안양천변을 끼고, 선유도를지나 여의도까지갔다가 돌아서 차도마시고 수다도 떨다 오는길에성산대교밑에서 안양천으로 꺾어지면서 갈대밭에 깊이고꾸라져 무릎을 크게다친적이있다 그뒤로는 자전거는 거의 안탄다. 그이후로는 자전거타기가 무섭다.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어린시절 영화 한장면을 보는 느낌. 운동장에서 수도 없이 자전거를 메다꽂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여 안쓰러움이 일어난다. 하지만 칠전팔기로 겨우 자전거를 배운 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을것 같은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소년 권보!! 그때 해낸 그 실력으로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홧팅!!
아주 조끔더 노력하여 수필집 내라. 느낌이 피부에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