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시장으로 나갈 일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봄 도달이 회를 먹자면서 오동동 횟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때 어시장을 지나다 ‘서북산플라워’라는 꽃집을 보았다. 아마도 주인이 서북산 아래쯤 살았던 사람이든가, 아니면 서북산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지 싶었다. 서북산은 마산 진북 영동마을 뒤에 있는 산이다. 옛날 진해현 관아에서 서북쪽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지 싶다.
지난겨울 의림사에 들렸을 때 서북산 허리를 지나 내려온 적 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가락문학 정기모임을 서북산 아래 금산마을에서 가졌다. 회원 가운데 마산시청에서 정년을 마친 분이 은퇴 후 그림 같은 집에서 전원생활을 했다. 그는 서각과 시작에 솜씨가 있는 예인이었다. 그날 마당에 피어나던 야생화를 보면서 며칠 주저앉아 머물고 싶은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두 번째 찾은 서북산 아래였는데 아쉬움이 좀 남았다. 금산마을 사는 회원의 안내로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북산 기슭 편백나무 숲으로 갔더랬다. 회원 일행과 함께 숲 들머리 닿았을 때 마침 비를 만나 바로 되돌아 내려왔다. 나는 그때 언제 틈내어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바로 한 주 뒤 창원에서 신마산으로 갔다. 마산시청 앞에서 서북산 가는 버스를 환승했다.
버스에는 손님이 제법 되었다. 승객은 주로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었다. 시장을 보아 돌아가는 사람과 빈 배낭을 맨 사람들이었다. 댓거리에서도 몇몇 아주머니들이 탔다. 이들도 서북산 아래 종점까지 가는 사람들이었다. 종점은 영동마을로 모두 쑥을 캐러 가는 아낙들이었다. 창원 시내를 지나올 때 차창 밖 개나리가 화사하고 벚꽃망울이 도톰했었다. 바야흐로 봄이 한창인가 싶었다.
버스는 진동과 진북면사무소 앞을 지나 서북산 아래로 갔다. 버스는 학동을 지나 영동마을이 종점이었다. 나는 종점에서 쑥을 캘 아주머니들보다 먼저 내렸다. 내가 내린 곳은 금산마을 회관 앞이었다. 동아리 회원한테 내가 가까이 왔다고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갈 참이었다. 나는 금산 아랫마을을 에둘러 편백나무 숲으로 올랐다. 어느 독림가가 가꾸는 편백나무 숲은 아주 넓었다.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더 많이 나온다고 했다. 현대의학에서도 자연치유의 한 방법으로 피톤치드가 있다. 숲에서 나온 음이온은 아토피까지 달래준다고 했다. 중년이후 찾아오는 불청객 마음의 감기에도 피톤치드가 효험 있다고 들었다. 밭둑에 심겨진 매실나무 꽃은 절정이 지나고 있었다. 편백나무 숲 들머리 절간이 한 곳이었다. 계곡에는 찰찰거린 물소리가 들렸다.
볕바른 자리 진달래가 피어났다. 길섶 비탈에 뾰족한 원추리 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원추리 순을 몇 줌 뜯었다. 봄나물로 밥상에 올린만한 재료였다. 편백나무 황토방에는 누군가 들린 사람이 있는지 자동차가 한 대 보였다. 임도 따라 숲을 오르니 백발성성한 노부부가 내려오고 있었다. 삼림욕을 하려고 가끔 들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동선을 길게 잡아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편백나무 숲에서 두 시간 넘게 머물렀다. 봉화산에서 서북산으로 향하는 능선에 오르니 함안 여항마을이 보였다. 멀리 진동 앞 광암 바다도 눈에 들어왔다. 학동저수지와 종점 영동마을도 발 아래였다. 서북산을 올라 계속되는 임도 따라 걸었다. 떡갈나무 숲 아래 얼룩무늬 새순이 지천으로 돋고 있었다. 얼레지가 군락으로 자라는 곳이었다. 열흘 쯤 지나면 꽃대가 올라오지 싶었다.
부재골을 내려가니 진전면 미천마을이었다. 평암저수지를 지나 대정까지 걸었다. 버스를 기다릴 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문회 배구대회를 마친 회식자리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한참 뒤 우리 아파트 상가에서 둘이 만났다. 올봄 마산시내 초등학교 교감으로 나간 친구였다. 우리는 명태전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세상사 얘기를 나누다 골목이 어둑할 때 헤어졌다. 10.03.27
첫댓글 정말 부지런 하시군요. 저도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점찍어 두었는데 쉽지가 않네요. 혼자하는 여행도 맛 들이면 달짝지근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