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 교육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표현이 틀린 말인가
#1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에 대해 사회의 들끓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에 상응해 정부는 유례없이 '자기가족'의 징계를 서두르고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겪는 이런 현상은 헌법 위에 있다는 '국민정서법'이 작동할 때 나타난다. '국민정서'를 건드린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어록에서 곁가지를 떼내고 핵심 메시지만 추려보자.
"민중은 개돼지다"
"(이미 굳어진) 1% 대 99%의 신분제 사회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함부로 기어올라올 생각 안하도록) "
"출발선이 다른데 (노력한다고) 어떻게 달라지나, 어차피 다 평등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2
누구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법한 장면을 상상해보자.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모르는 사람과 사소한 일로 다툼이 시작됐다. 처음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서로 상대방에 대해 예의를 잃지않고 시시비비를 따진다. 점점 감정과 함께 언성이 올라간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입에서 '당신'이란 어휘가 튀어나온다. 졸지에 '당신'이 된 사람은 '뭐? 당신? 니가 뭔데!' 하고 대응한다. 이제 '니'가 된 사람은 '뭐? 너?' 하게 된다. 이하 생략. 이 때부터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인격을 박살낼 수 있을까만이 중요할 뿐이다.
무심코 '당신'이라는 말을 내밷은 사람이 나향욱이라면 졸지에 '당신'이 된 사람은 국민이다. 왜 '개돼지'라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의 심기를 건드린 놈을 조져버리면(!) 된다. 하지만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다.
맞아죽을 소린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나 기획관의 발설은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다. 계층의식도 분명해서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1%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다. 개돼지는 99%에 대한 은유일 따름이다. 은유치곤 좀 거친 듯 하지만 99%에 대한 1%의 속내를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정확한 표현이다. 나기획관이 입이 곧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구시화문(口是禍門)'을 모를 리 없다. 다만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에 취해있어 깜박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도 문제이지만 인간의 사회적 가치가 정치경제적 지위에 따라 서열이 있다고 생각하는 윤리의식이 더 큰 문제다. 따라서 나기획관의 발언이 새삼스러울 리도 없다. 다만 국가 교육정책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자리에 있는 고위공무원의 사고방식에 있다. 1%를 위한,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가정책을 끌고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3
국민은 또 왜 분노하는가?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한데 그걸 부정당했으니 그렇다. 하지만 정말 평등한가? 수 많은 무전유죄 유전무죄 사례를 접하면서도 천부인권을 믿는다. 알랭 드 보통은 몇 년 전 내한강연에서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질투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질투심이 생기는 이유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평등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분노할 게 아니라 불평등한 현실을 고착 내지 심화시키려는 경향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불평등한 사실에 대해 분노하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힘든 현실에서 나 자신을 구제하기도 바빠서. 그래서 자업자득이다. (1%의 관점에서) 나는 개돼지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