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엮음『국어시간에 시읽기』나라말 200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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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은 알고 보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전북 임실의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에게 동시집은 썩 잘 어울리는 짝 같다.
사실, 그의 시는 이미 동시의 세계와 별로 구분되지 않는 어떤 영역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소설가 이병천의 지적처럼 추사 선생이 완성의 경지에 이르러 동자체(童子體) 글씨를 선보이게 된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동서고금의 숱한 대가들이 걸어갔던 그 경지를 우리는 탈속이라 부른다.
"감꽃 피면 감꽃 냄새/ 밤꽃 피면 밤꽃 냄새/ 누가 누가 방귀 뀌었나/ 방귀 냄새"(〈우리교실〉) 같은 시나
"병태 발가락이/ 양말을 뚫고 쏘옥 나왔네/ 어, 추워/ 어, 추워/ 병태 엄지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양말 속을
찾지만/
병태 발가락/ 들어갈 곳이 없네"(〈병태양말〉) 같은 구절들을 보라.
이 시들은 순진하면서도 원숙하고, 소박하면서도 현란하다.
이 시들 속에 삶이, 희망이, 슬픔이, 그 모든 파토스가 다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동시와 어른시를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콩타작 마당에서 벌어진 일을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 시도 마찬가지다.
별 것 아닌 농촌의 일상을 한바탕 축제로 승화시키는 아이들의 삶에 대한 낙관, 그 활력에 가득 찬 명랑성은 이
시를 돋보이게 하는 주요 요소다.
콩은 '콩콩' 뛰어나와서 '또르르또르르' 굴러가고 그 콩을 잡으러 달려가는 시골 아이들의 목소리는
와글와글 시끌시끌 '어, 어' 낭자하다.
그러다가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콩, 더 이상 잡아올 수 없는 콩의 '안전한' 피신과 함께 사건은 갑자기 올
스톱! 되고,
이 느닷없는 정지화면 앞에서 한 아이가 내뱉는다.
흥, (쥐구멍에 들어갔으니),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의 동시들은 시의 궁극이란 무릇 어린아이의 무심에 가깝다는 것을 불현듯 상기시킨다.
그것은 "무지무지 심심합니다/ 하도 심심해서/ 강가에 가보면/ 강물만 멀리멀리 흐르고/
텃밭에 가보면/ 도라지꽃만 피어 있습니다"(〈심심한 하루〉)라고 할 때의 그 '심심함'과 닮아있는 듯도 하다.
'산다는 것은…', 그 다음에 무슨 말을 덧붙이랴.
그의 시는 이 침묵에 속한다.
올해로 환갑에 이른 1948년생 '건국동이'의 시적 혜안이 소중한 이유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첫댓글 인간, 네게 먹히는 것보다 낫지롱
대지가 잡아 먹고 푸른 잎사귀를 피워올리겠네요. ㅎㅎ 우리모두 동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