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의 원리
2024년 9월 8일 갈 6:7-10
1. 추수의 원리
도시에 살던 사람이 뿌연 하늘과 막히는 길, 자동차 소음에 진력이 났습니다. 그래서 살던 아파트를 팔고 시골에 농장이 딸린 아름다운 집을 샀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한적한 농촌에서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래! 이런 게 사는 거야!” 하면서 흡족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그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십리 정도 떨어진 곳, 그나마 가장 가까이 사는 이웃 농부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차 들렀습니다.” 하면서 어깨에서 낡은 자루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마땅히 드릴 것도 없고 해서…” 그리고는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고 돌아갔습니다. 그가 떠난 후, 주인이 자루를 열어보니 마른 옥수수와 밀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포장지에 싼 선물만 받아보던 도시인은 “별 이상한 선물도 다 있군.” 하면서 창고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닭들에게 사료로 주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 이 도시인은 이웃 농부 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름다운,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밀밭에는 밀이 자라서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황금빛 비단의 물결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른 키 정도로 자란 옥수수 줄기에, 팔뚝만한 옥수수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보고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농부에게 “아! 정말 좋네요. 저도 이런 농장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 농장에는 지금 잡초밖에 없거든요.” 그 말을 듣고 농부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아니, 잡초라니요? 제가 지난번에 드렸던 그 씨앗은 다 어떻게 하고요?” “어, 씨앗이라고요? 그것이 씨였습니까? 사료인줄 알고 닭 모이로 주고 말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그러자 어이가 없다는 듯 그 농부가 그 도시 사람을 바라보더니, 급기야 파안대소했습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진 농부가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사료인줄 알고 모이로 줬단 말입니까? 내가 농사지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씨앗만을 뽑아서 선물로 드린 건데요. 도시에서 이사 오셨다고 해서 잘 심으라고요.” 잠시 후 겸연쩍어 하며 돌아서는 그에게 농부가 얘기합니다. “선생님, 농부가 되시려면 한 가지는 꼭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거두기 위해서는 심어야 한다는 겁니다.”
거두기 위해서는 심어야 한다! 이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지요.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관계없이 이 교훈은 우리의 모든 삶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경제의 원리도 그렇지요. 우리가 투자하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지요. 교육도 그렇지요.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 후에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거두기를 원한다면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2. 갈라디아서 6:7-10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의 교인들에게 중요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1) 심은 대로 거둔다.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원리는 바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감자꽃>이라는 동시를 아시나요? 노래로도 만들어졌지요.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이런 노래입니다. 이처럼 단순명쾌한 진리가 있을까요?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 추수가 결정되는 겁니다. 심지 않은 밭에서 거둘 수는 없는 법입니다. 수박을 심은 곳에서 수박을 거두고, 땅콩을 심은 곳에서 땅콩을 거두고, 감자를 심은 밭에서 감자를 추수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농사만이 아니라,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은 그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우리가 만일 정직과 깨끗함을 심는다면, 나중에 아름다운 인격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심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교만과 부정직과 성냄과 무절제의 씨를 마음대로 뿌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쓰디쓴 열매를 거두기 시작할 때, 그들은 무척이나 당황해 합니다. 동업 관계가 깨지고, 고소장이 날아들고, 친구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고, 자녀들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그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하늘도 무심하시지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입니다.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죠. 자신이 심은 것을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8절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육체와 성령은 비유입니다. 실제로 육체는 악한 것, 성령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지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나쁜 것의 표현으로 육체, 좋은 것의 표현으로 성령이란 단어를 쓴 것뿐입니다. 육체가 나쁜 것이라면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영지주의자들의 오류에 도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왜 썩을 것을 거둡니까? 왜 파탄된 가정을 거둡니까? 왜 외면하는 자녀를 거둡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육체에다 심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두려고 하면, 그런 심보와 행위는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육을 통하여 잘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를 아시지요?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얘기하며,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유니게의 믿음을 얘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5에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의 믿음이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디모데의 어머니가 그의 마음 밭에 어려서부터 믿음을 심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자녀들의 마음 밭에 잘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잘 심어야 합니다.
(2) 오랜 시간 후에 거둔다.
추수의 원리 가운데 또 하나는 심은 다음 오랜 시간 후에 거둔다는 겁니다. 9절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선한 일을 행한 후 그 결과가 금방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런 마술 같은 씨앗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씨앗도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는 법은 없습니다. 하물며 영적인 씨앗이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수소문하고 수소문하여 잃어버렸던 교회를 18년 만에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사랑의 씨앗이 소녀에게 심어졌는데 씩씩한 언니로 열매 맺어집니다. 그런 법입니다. 농부들은 이 원리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봄에 심고 다른 계절에 거둡니다. 봄에 심고 봄에 거두려는 농부는 없습니다. 봄에 심고 가을에 거두기 때문에 그 사이에 여름이 존재합니다. 여름에는 가뭄이, 때로는 홍수가 찾아옵니다. 수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인내가 없는 농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내가 없는 사람은 결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와 쟁기에서 우리의 손을 뗄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하냐? 손에 굳은살 박히게 일한다고 뭐가 나오냐?” 여러분! 우리의 밭을 보십시오. 때로 우리가 심는 씨앗은 싹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유혹에 빠집니다. 하지만 바울의 권면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하여 추수의 원리를 묵상하였습니다. 추수를 말했습니다만 이것이 농사에 관한 가르침은 아닙니다. 우리네 인생에 관한 가르침이지요. 모든 것에 심어야 합니다. 심어야 합니까? 심어야 합니다. 가족에게도 심어야 합니까? 가족에게도 심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네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있지요.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는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이라서, 가족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심지 않고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죠. 아닙니다. 심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 없습니다. 무엇을 심어야 하나요? 말할 것도 없지요.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열매가 나옵니다. 무관심을 심어 놓고, 심지어 미움의 씨앗을 심어놓고 사랑의 열매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어떨까요? 오늘 본문의 표현에 따르면 그런 분들은 자기를 속이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씨앗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말입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옵니다. 가족들을 만나게 되겠지요. 좋은 씨앗으로 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씨앗으로 심으시기 바랍니다.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그런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의기소침했던 친척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일가친척들을 만날 때, 무슨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고 퍼붓는 이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당했던 일들, 섭섭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되살려 복수하는 거지요. 정말 딱한 노릇이 아닙니까? 이렇게 살다 언제 하늘샘교회의 교인이 되겠습니까? 아니 언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까?
추석을 맞이하여 추수의 원리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 이 땅 위의 생을 사는 동안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만들어 선한 것으로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것으로 심되, 그 열매가 쉬 보이지 않는다 하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시편126:6의 말씀으로 제 설교를 마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