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선보인 작가 은희경의 장편소설이다. 이전 작품들이 경쾌함과 발랄함으로 다가왔다면, 이 소설은 산고의 무게 이상으로 무겁고 깊게 다가온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공들인 문장과, 그 문장들 사이의 긴장, 그리고 행간의 밀도 역시 깊고 치열해보인다. 작품은 작게는 영준과 영우 형제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이며, 확장하면 두 형제와 아버지 정정욱의 이야기이며, 다시 넓어져 아버지 정욱과 할아버지 정성일, 또다시 정씨 집안과 최씨 집안의 이야기이고, 다시 K읍의 이야기이고, 그리고 작가 은희경의 이야기이다.
작품을 읽다가 문득, ‘이게 은희경 소설 맞아’, 하는 느낌이 들 만큼 독자는 작가가 또다른 소설세계로 진입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기만 한 건 아니다. 은희경 작품의 특징이라 꼽혀온 생에 대한 직관과 통찰력은 더욱 세밀하게 벼려져서 내장되어 있다.
이 소설은 인물들의 성격과 의미들이 훨씬 생생하고 극적으로 살아나는데다가, 허구의 인물들 이야기에 맞물려, 사이사이 구체적인 연대기적 사건 사실들이 다양하게 들어가는데, 거기에 이음새랄까 재봉선 같은 게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자연스럽고 능숙한 배합 때문에 단순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품격이랄까, 중량감이 배가되었다. 무척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또한 굉장히 유려하고 섬세한 문체 안에는 마치 철삿줄 같은 낭창낭창하고 질긴 특유의 힘이 숨어 있다.--임철우(소설가,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누구에게나 삶은 불완전한 문장으로 남는다. 완전한 문장은 결국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저마다 상상의 삶을 꿈꾸며, 하지만 그 삶에서 소외된 채 살아갈 수밖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난 세기의 어느 지방 소도시다.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회고된 문장 속에서 이 소도시는 서서히 굳게 입을 다물며 죽어간다. 그리하여 소설이 끝날 즈음이면 우리는 한 세계가 끝이 났음을 깨닫게 된다. 어쩐지 그 세계를 추억하는 일은, 낙원에서 추방된 이방인의 몫인 듯한 느낌이 든다. 명명백백한 모든 것들이 이윽고 비밀이 되고 삶은 약간 불완전해진다. 이 사실을 이해한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가 된다. 거미줄처럼 정교하면서도 금방 부서질 듯 섬세한 소설이다.--김연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