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살아 있는 빵/ 요한복음 6: 47-52
시편 90편을 읽고 있으면, 나이 70에 이르고 80에 이르게 되면 우리도 저렇게 지혜로운 시인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20여 년 전 40대일 때 저도 비슷한 생각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70세쯤 되어 가면, 지나온 과거들이 모두 한 눈에 보이면서, 정말로 한바탕 꿈같은 세월이 지나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라고 말입니다. 지나온 나의 인생이 나의 의지의 성취로 점철되었는지, 아니면, 생명이신 예수의 인도하심을 분명히 보면서 살았는지 깨달아 알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로 시작해서,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먹을 빵만 기대하는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을 말씀하시는 예수에 집중합니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육신의 빵만 위하여 살았는지 아니면 생명의 빵도 먹으며 살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깨달음의 깊이가 그다지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족하던 시절보다 조금 더 넉넉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큰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와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정신이 성공과 성취로 왜곡되고, 경건을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 채로 살게 됩니다.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예견하듯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요6:51)
“생명”이란 “죽음”의 반대말입니다. 시나이 광야에서 굶어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 살려주신 하나님은 그래서 생명의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먹는 문제만 집착합니다. 그래서 명령을 어기고 매일 걷어야 하는 만나를 전날 미리 모아 두었다가 썩어서 다 내다 버려야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빵 때문에 예수를 따르던 백성들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반복되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할 생명의 빵 이야기를 하니 그만 예수를 떠나갑니다.
죽음의 길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몸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지 않은 삶 속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준 “살아있는 빵”이 “세상에 생명을 준다.”는 말 속에는 죽음과도 같은 삶에서의 해방을 선언한다는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지난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 10차 부산총회 때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길로 이끄소서.”였는데, 이는 생명은 정의와 평화를 통해서 그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정의화 평화의 편에 서야합니다.
만일 예수가 자주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유대 백성들을 만족시켜 주었더라면 그들은 환호성을 올리면서 예수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지도자를 선호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종교가 옳은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예수가 자신을 살아 있는 빵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가 사람들을 살려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덕분에 절망의 세상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예수 덕분에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평화세상을 꿈꿀 수 있다면, 그리고 예수 덕분에 가난과 굶주림의 세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생명의 빵이시며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빵을 먹는 것입니다.
남자 어른만 세어서 5000명이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먹었는데, 생명의 빵 설교를 듣고 난 후에는 대부분 예수를 떠나갔고 다시는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육신의 빵은 받아먹었지만, 살아 있는 빵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적은 숫자라도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빵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상을 살리는 예수 정신이 그 적은 소수에 의해서라도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평화목 예배당 작은 설교강단에 걸린 강단보는 나무가 자라고 나뭇잎을 닮은 새가 날아오르는 10차 부산총회의 로고를 형상화해주신 교우의 멋진 작품입니다. 이것을 바라 볼 때마다, 어둠의 세상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희망찬 날갯짓을 하는 평화목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하시길 빕니다.
2025년 1월 26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