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백야공원(白冶公園)
백야공원은 2007년 김좌진 장군 생가지 뒤편에 조성된 공원으로
장군의 유년시절부터 독립군 활동을 묘사한 동상과 "백야 김좌진장군 추념비"가 세워져 있다.
김좌진 장군비(金佐鎭 將軍 碑)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좌진 장군(1889~1930)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1949년 대한청년단 홍성군 단원들의 성금으로 홍성 홍주읍성 내에 세웠는데 2007년 12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비에는 김자진 장군의 생애와 나라 안팎에서 했던 항일 독립운동의 실적과 자취가 기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_ 김좌진장군비 (金佐鎭將軍碑)
김좌진(1889∼1930) 장군은 홍성에서 태어나 15세에 집안의 노비를 풀어주고 그들에게 농사지어 먹고 살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들어갔으며, 1907년 고향에 돌아와 호명학교를 세우고 90여칸의 자기집을 학교건물로 쓰게 했다.
광복단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하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3.1 독립선언에 전주곡이 되는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민족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그 후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고,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큰 공을 세웠다.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자택 근처에서 순국하였다.
백야공원 게시판에 게재된 김좌진 장군 일대기
장군의 성장과 애국계몽운동
애국의 삶을 살다간 탁월한 리더십 김좌진 장군
항일무장투쟁
청산리 독립전쟁
김좌진 장군의 대한 독립활동
민족의 위대한 별이 지다 ......
백야공원 쉼터
백야 공원에는 김좌진 장군의 어린 시절, 청년시절, 성년시절, 또한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시절의 모습 등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 등 김좌진 장군 일대기 5기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첫번째 동상 ‘유년의 꿈
1889년 홍성 출신,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전쟁놀이와 말 타기를 즐겼다.
두번째 동상 ‘해방의 실천’
1905년 집안의 노비 30여 명을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종 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세번째 동상 ‘일깨움’
1907년 호명학교를 세우고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 운영에 충당하게 하였으며 90여 칸의 자기 집을 학교 교사로 제공하였다.
네번째 동상 ‘진격’
1916년 광복단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18년 무오독립선언서에 민족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고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대부대 3,300여 명을 살상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다섯번째 동상 ‘광복의 아침’
임시정부가 국무위원으로 임명하였으나 취임하지 않고 독립군 양성에만 전념하던 중
1930년 1월 29일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