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치한을 조심해야 한다.
아니나다를까?
뒤에서 남자가 몸을 밀착했다.
역물스러웠다.
내 엉덩이에 대고 부볐다.
몸을 피해도 남자는 계속 따라와서 그짓을 했다.
너무나 화가 나서 뒤를 돌아 남자를 노려봤다.
올라왔다.
20년 전에 먹은 엄마젖이 올라왔다.
어떻게 그렇게 생길 수가 있을까?
조각턱, 광활한 미간, 완전 역삼각형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생각났다.
난 계속해서 째려봤다.
양심은 있는지 고개를 돌려 피했다.
부제 2: 남자의 일기
지난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첫 미팅.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버스 안은 빽빽했다.
중간에 서 있던 난 미는 사람들로 인해 앞에 서 있는 여자와
몸이 붙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려해도 밀어대는 무리의 세력을 이
겨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내 몸은 본의 아니게 앞에 있는 여자의 몸에 붙어버렸
다.
여자는 짜증난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올라왔다.
아침에 먹은 된장국이 기도를 타고 올라왔다.
커다란 얼굴에 좁게 몰려 있는 눈, 코, 입.왕만두가 생각났다.
어떻게 그렇게 막 생길 수가 있을까?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이 자유추구에 있다고 하지만 자유추
구가 지나친
계엄령 상태의 얼굴이었다.
난 고개를 돌렸다.
마주보기에는 내 비위가 약했다.
부제 1: 여자의 일기
튀김과 여자는 튀겨야 한다는 옛말을 잊지 않는다.
벌렁벌렁한 가슴을 안고 늦게 미팅 장소에 도착했다.
가슴이 발라당 뒤집혀졌다.
수학책이었다.
도형의 방정식 파트였다.
사다리꼴처럼 생긴 남자, 마름모처럼 생긴 남자,
더욱이 아까 버스에서 만난 역삼각형이 끼어 있었다.
오호통재! 오마이갓! 선옵비치!
어느 파트너가 선택되든 간에 최악이었다.
단지 버스에서 마주친 역삼각형만 걸리지 않기를 바랬다.
장미 꽃무늬가 그려진 우아한 손수건을 집는 사람이
내 파트너였다.
역삼각형은 게슴츠레한 시선을 유지하며 관찰했다.
설마 손수건을 선택하지는 않겠지.
설마가 날 잡았다.
역삼각형이 손수건을 집는 순간!
내 인생은 끝이었다.
부제 2: 남자의 일기
여자는 약속에서도 튀긴다.
미팅 장소에서 여자들을 기다렸다.
가슴이 쿵당쿵당 뛰었다.
그러나 여자들이 오자마자 설레임은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분식집이었다.
라면같이 오톨도톨하게 생긴 여자, 찐빵처럼 얼굴형이 넓고
평평한 여자,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아까 버스에서 만난 왕만두가 끼어 있었다.
설상가상, 사면초가, 이판사판이었다.
어느 파트너를 선택하든 간에 최악의 선택이었다.
단지 버스에서 마주친 왕만두만 걸리지 않기를 바랬다.
여자들은 소지품을 건넸다.
난 그윽한 시선을 유지하며 장미 꽃무늬가 예쁜 손수건을 집었다.
제기랄!
왕만두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우아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절망이었다.
완벽한 절망이었다.
부제 1: 여자의 일기
역삼각형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랴!
오늘 하루는 포기했다.
소외된 사람을 돌보아주라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오늘은 소외된 역삼각형을 돌봐주기로 결심했다.
보기 싫은 사람과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더욱이 영화마저 재미없다면?
영화는 정말 재미없었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는지 졸음이 밀려왔다.
아무리 참으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도 금세 꺼졌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결에 가끔 머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정수리 부분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에 맞은 듯한 아픔.
눈을 떠보니 역삼각형이 입을 움직이며 턱을 맞추고 있었다.
부제 2: 남자의 일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양지 바른 곳으로 인도한다는
종교적인 입장에서 하루를 봉사하기로 다짐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을 것이었다.
왕만두를 이끌고 영화관에 데리고 갔다.
보기 싫은 사람과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하지만 종교적인 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왕만두는 영화가 중반부에 이르자 슬며시 몸을 내쪽으로 기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싫은 건 싫다. 왕만두의 스킨쉽에 오싹오싹하다.
오른 손으로 밀어버렸다.
그러나 잠시 후 왕만두의 머리는 다시 내 어깨에 얹혀졌다.
무거웠다.
머리가 크면 당연히 무게도 많이 나간다.
이번에는 힘껏 밀었다.
오뚜기처럼 왕만두는 다시 내 어깨에 기댔다.
정말 끈질기다.
할 수 없이 턱으로 왕만두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그제서야 왕만두는 내 몸에 붙지 않았다.
부제 1: 여자의 일기.
한숨 자고 나니 배가 고팠다.
식당에 갔다.
역삼각형은 눈으로 음식을 먹었다.
음식이 입게 닿는 순간 눈을 감고 씹었다.
참으로 괴상한 놈이다.
꼴 값 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역삼각형 역시 생긴 꼴대로 하는 짓도 똑같다.
식사가 끝나자 역삼각형은 신발 끈을 맸다.
난 화장을 고쳤다.
얼굴이 커서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역삼각형은 신발이 큰 지 끈을 매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화장을 다 끝내는 데 종업원이 역삼각형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왜 신발 끈을 풀렀다맸다 그러세요?"
역삼각형이 신발 끈을 풀렀다맨 모양이었다.
난 역삼각형을 봤다.
종업원의 질문에 답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역삼각형은 아무 말 없이 계산서를 들고 나갔다.
부제 2: 남자의 일기
영화관을 나오니 배가 고팠다.
영화를 보여줬으니 당연히 왕만두가 저녁을 사주리라 믿었다.
식당에 갔다.
마주보고 음식을 먹으려니 목이 턱턱 막혔다.
최대한 왕만두 얼굴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반찬 집을 때를
제외하고는 눈을 감고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계산서에 눈이 갔다.
난 신발 끈을 풀렀다.
신발 끈을 다시 매면서 왕만두의 눈치를 봤다.
전혀 계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왕만두는 가방을 꺼내더니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열이 받았다.
지루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난 신발끈을 풀렀다 매기를 여러 차례.
갑자기 종업원이 다가왔다.
“아저씨, 왜 신발 끈을 풀렀다맸다 그러세요?”
이 한마디로 식사값을 내가 계산해야 했다.
부제 1: 여자의 일기
역삼각형의 얼굴이 빨갛다.
그러니 빨간 고추 같다.
역삼각형은 술을 먹자고 했다.
오늘은 너의 날이다. 네 맘대로 해라.
어차피 오늘 하루는 소외된 역삼각형을 위한 날이다.
역삼각형은 술을 다양하게 시켰다.
막걸리, 소주, 맥주를 시키고 섞어 먹었다.
무식한 놈은 술 먹을 때도 다르다.
점점 빨간 고추화 되어 가는 역삼각형의 얼굴을 보니 안쓰러웠다.
내가 대신 먹어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역삼각형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길이었다.
역삼각형으로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이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살기를 바랬다.
한참동안이나 술을 먹으니 속이 메스꺼웠다.
오바이트가 쏠렸다.
화장실 변기를 잡고 속을 게워냈다.
좀처럼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여러 차례 오바이트를 하고 나서야 화장실을 나오니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밖에 나오니 역삼각형이 날 보고 땅을 쳤다.
부제 2: 남자의 일기
화가 났다.
왕만두는 고단수다.
전문 여성 미팅 사기단이다.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물증이 없었다.
좋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코에는 코. 함무라비 법전에 의한다.
나에게도 비밀 병기가 있다.
술을 먹고 뻗는 것이었다.
술을 먹고 뻗으면 지가 계산하겠지.
술을 엉망진창으로 먹었다.
막걸리, 소주, 맥주를 섞어 빙빙 돌려가며 먹었다.
취기가 올라왔다.
왕만두의 얼굴을 보니 더욱 술이 덤볐다.
왕만두도 질세라 대응음주를 했다.
술병은 쌓여가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곧 뻗을 것 같았다.
왕만두가 화장실에 갔다오겠다고 자리를 비켰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웠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화장실을 간다던 왕만두가 오질 않았다.
종업원은 문을 닫을 시간이라며 나를 내쫓았다.
당했다.
어쩔 수 없이 또 계산을 치렀다.
부제 1: 여자의 일기
역삼각형이 왜 그럴까?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날 보며 이빨을 갈았다.
화가 나니 턱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졌다.
택시를 같이 탔다.
역삼각형은 택시에 타자마자 잤다.
역삼각형은 여자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도 없다.
집에 바래다 줄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화가 났지만 참았다.
수유리에 도착했다.
여전히 역삼각형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택시 기사는 어디까지 가느냐고 역삼각형을 깨웠다.
역삼각형은 방학동인가, 방화동인가, 방이동인가,
알 수 없는 단어만을 신음을 토하듯 뱉었다.
난 내렸다.
아저씨 편한 대로 하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부제 2: 남자의 일기
왕만두의 얼굴을 보니 염장이 터졌다.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나오다니 참으로 치사하다 아니할 수 없다.
솟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오늘은 완전히 왕만두에게 당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택시라도 얻어타고 집에 가야만 했다.
왕만두는 수유리, 난 방학동이었다.
여기가 도봉동이니 난 중간에 내리면 됐다.
택시에서 뻗었다.
술집에서 뻗어야 되는데 때를 맞추지 못했다.
눈을 뜨니 이상한 곳이었다.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는 방학동은 아니었다.
택시 미터기에 4만 7천원이 넘게 찍혔다.
젠장! 방화동이었다.
왕만두는 끝까지 날 엿먹였다.
불행스럽게도 택시 기사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난 택시 기사의 엉덩이에라도 카드를 긁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