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1회
그는 석중이의 말을 들으면서 아직 죽을 때는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깊이 빨아 들였다.
석중이도 그제야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어떻게 죽었는데?”
“약 처먹었어, 저 새끼가”
석중의 목소리에 서운한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약이라니?”
“내가 아냐!”
석중의 말로는 그 녀석이 작년 여름부터인가 전곡 읍의 한 주점에서 주인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 여자도
혼자 된 지 오래 되었고, 어찌어찌해서 그 여자에게 살림을 합치기를 바랬지 만 여자가 응하지 않았고, 그 때
부터 녀석이 조금씩 돌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신 새끼, 진짜 병신노릇 한 새끼야! 지가 지를 알아야지, 언감생심 어느 여자가 저하고 한 살림 차리겠냐?
괜히 지 혼자 차 떼고 포 떼고 지랄하다가 되진 거지.”
“설마 녀석이 그런 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일 외에 다른 일이 녀석에게 없거든”
그는 담배 끝이 다 타도록 피웠고, 그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그는 곁에서 그가 정리되지 않은 수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담배를 던지고 발끝으로 비빈 후
“들어가자, 애들이 몇이나 왔는지......”
6
사진 속의 그 녀석은 웃고 있었다. 상주도 없이 혼자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웃는 얼굴은 한 쪽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왼 눈은 웃느라 반쯤 감긴 채였지만 오른 눈은 크게
뜨고 있는 인조 눈알이었다. 진철은 그의 모습을 기억해낸다. 오른 손이 세 손가락 왼 손이 두 손가락 왼 팔
이 큰 흉터가 있었고 왼 다리가 움푹 파여 있던, 그래서 걸을 때마다 조금씩 휘청거리며 걷던 녀석, 화투놀
이를 할 때면 화투짝을 눈 가까이 대고서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던 녀석, 병신 녀석이 병신같이 그렇
게 죽고 만 것이다.
“사회복지과 놈들은 뭐하는 놈들인지 몰라.”
석중이 그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진철 곁에서 한 마디 내지른다.
진철이 석중의 옆얼굴을 보는데
“저 새끼, 우리가 돌본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사회복지과에서 한 달에 몇 번 들러서 살펴보고 쌀하고 반찬
도 들여 주고 그랬다는데, 하긴, 군에서도 할 만큼은 했지, 저 녀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가 몇 년이야?
아마 한 이십 년은 될 걸, 사십 줄에 접어들면서 저 새끼는 혼자서 뭐를 할 수 없었거든 겨우 제 몸 하나 지
탱하고 드나드는 것 외에는, 군 사회복지과에서 아프다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오고, 뭐 그랬는데,”
“그럼?”
진철은 그런 녀석이 어떻게 여자를? 이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여름에 친구들 몇이 저 새끼 더울 텐데 하릴 없이 빈둥대고 있다 싶어 데리고 읍에 나가 술 한 잔 한
적이 있거든. 그때 그 주인 여자가 저 새끼 측은하다고 하면서 잘 대해 주었는데 그 새끼는 그것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어쩌면 실연의 아픔이 그를 죽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 저 새끼는 혼자 한 번씩 택시타고 주점을 갔었나봐, 하지만 어디 자기 생각대로 되던가? 지 혼자
짝사랑이었지.”
그는 어쩌면 그 사랑이 그 녀석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끼, 돈이라고는 군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단데, 그 돈 그런 곳도 서너 번 가면 다 떨어지는 정도지, 거기다
지 담배 사 피워야지, 쌀이야 군에서도 나오고 주변에서도 돌봐주고 친구들도 한 번씩 들여다보니까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어도”
그는 그렇게라도, 짝사랑이라도 한 번 해보고 죽은 것도 그 녀석의 복이라고 생각을 한다.
첫댓글 수한은
짝사랑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글쎄요, 아직 왜 죽었는지 밝여지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