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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선우 휘
저쪽 거울이 찌그러져 있다구요? 네, 벌써부터 갈아 끼우려고 하면서두 워낙 값이 비싸고 보니 선뜻 손이 안 나가는군요. 그런데 이상하거든요. 손님에 따라서는 일부러 저 거울 앞에만 가서 앉으니 말입니다. 자기 얼굴에 역정이 나는 모양이라구요? 원 그래두 어디 그럴 수야 있습니까. 잘생겼든 못생겼든 자기 얼굴인 걸요. 역정이 난들 또 별도리가 있겠습니까? 타고난 제 얼굴인걸. 듣기엔 돈만 들이면 병원에 가서 멋쟁이 얼굴을 만들 수 있다구는 합디다만 그것두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요. 어제두 코를 갈아 넣은 젊은 손님이 오셨는데, 세수를 할 때 보니까 몹시 조심스럽게 약손가락 끝으로 코언저리에 물을 찍어 바르고 있던데요. 거 어디 보겠던가요. 빌어먹기조차 바쁜 세상에 코 생김새까지 걱정 한다니 퍽도 속 편한 양반들이죠.
아까, 손님께서 자기 얼굴에 역정이 나는 모양이라구 하셨는데, 어떤 손님을 보면 의자에 앉기가 바쁘게 눈을 막 감아버리고는 의자에서 내릴 때까지 까딱도 않는 분이 있죠. 그런가 하면 마른 솔잎처럼 눈 속으로 잔 머리칼이 날아들 지경인데 두 눈을 딱 뜨고는 종시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에서 눈길을 안 돌리는 양반도 계서죠. 자신이 있는 모양이라구요? 글쎄올시다. 제가 보기엔 태반의 손님은 자기 얼굴에 자신이 없어 뵈더군요. 저 말씀입니까? 저야 보시다시피 이 모양 요 꼴입니다만 그저 그런대루 참아나가죠.
깔끔하게 생긴 양반들을 보면 제 얼굴에 역정도 납니다만 저보다 못한 손님도 있고 보면 그리 섭섭할 것도 없죠. 그런데 자기 상통이란 이상한 겁니다. 밤낮 거울 앞에서 사는 신세라 싫어도 하루에 백 번은 자기 얼굴을 보게 되죠. 그런 탓인지 이러니 저러니 해야 제게는 제 얼굴이 제일이죠. 제일 낯이 익으니까요. 네? 재미있는 얘기를 한다구요? 이런 밥벌이를 하게 되면 잔뜩 입만 까져서 하고 보면 실없는 얘기죠.
옆머리를 어떻게 올려 칠까요? 높이 올려치라구요, 그렇습니다. 손님 얼굴에는 이렇게 치는 게 알맞죠. 저같이 이십 년 가까이 이런 짓을 해오고 보면 배운 건 없습니다만 손님들의 얼굴이나 머리 생김새를 보고 어떻게 머리를 가르고 쳐 올려야 하는지 대강 짐작이 가죠. 그런데 손님에 따라선 자기 생김새엔 아예 당치도 않은 머리를 고집하거든요. 딱한 일이죠. 젊은 분 중에는 양놈 사진을 가져와선 꼭 요 모양으로 만들어달라고 분부하는 분도 있죠. 물론 그대루 해드리죠. 얘길해 봤댔자 되려 역정만 쓸걸요. 손님처럼 자기 얼굴을 잘 알고 계시는 분도 드물죠. 비행기를 태우지 말라구요?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이죠.
이 정도면 되겠죠. 네 알겠습니다. 손님 머리는 숱이 좋으십니다. 좀 흰 머리칼이 섞였습니다만 되려 점잖아 뵈죠. 사실입니다. 나이 잡순 분들의 눈같이 하얀 머리칼을 보면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죠. 한 번 어루만질 것두 두 번 세 번 손이 가게 되죠. 대머리 말입니까? 깎기가 헐할 게라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일전에두 어떤 손님이 우스갯소리로 반값을 하라구 하십디다. 한데 되려 어렵죠. 아예 뒷머리에만 몇 대 남은 양반 같으면 또 몰라도, 성글성글 빠진 양반들 건 어떻게 깎기가 조심스러운지 모르죠. 잘못 한 가위가 가는 날이면 대번에 희끗 자국이 나서 질색이죠. 그럴라치면 굉장히 골을 내는 양반이 있죠. 노발, 뭐라구요? 성난 머리칼이 하늘을 찌를 거라구요? 찌를 나위의 머리칼이나 있을라구요, 하하하.
옆에서 보기가 가엾을 정도로 한 오리를 아끼는 손님이 있죠. 그런 분들의 머리를 허투루 건드렸다간 큰일이죠. 가만가만 빗질을 하고 살금살금 가위질을 하죠. 저 건너편 가게 주인 양반은 꼭대기에 몇 대밖에 없으면서 고것을 길게 늘여서 기름을 발라 살짝 옆 이마에다 붙여놓는데 볼만하죠. 아예 싹 깎아버리면 시언시언할 텐데 한 오라기를 아끼거든요. 어디 자식이나 돈도 그렇게까지 아낄라구요. 그런데 사람이란 이상하거든요. 제 머리 한 오라기를 그렇게 아끼는 그 양반도 부부 싸움을 할라치면 마누라의 머리칼을 한줌이나 뽑아내고도 거뜬하니 말입니다.
이젠 누우시죠. 면도를 하겠습니다. 비누를 푸는 게 재미죠. 보드랍고 하얀 것이 무언지 모르게 좋거든요. 더운 물수건을 얹겠습니다. 조금 따거우시죠? 개운하시 다구요. 구레나룻이 좋으시군요. 기르면 대단하시겠습니다. 졸리면 주무시죠. 이젠 저도 입을 닥치겠습니다. 듣고 있을 테니 계속하라구요? 손님 같은 분을 만나면 얘기하기가 신이 나죠.
맨날 이 놀음에 싫증이 안 나는가구요? 나죠. 때론 몹시 싫증이 나고 팔자를 탓해볼 때도 있죠. 그렇지만 손님들이야 돈만 내시고 누워서 깎고 가시면 그만이지만 저희들은 돈을 받았으니 깎아드리면 그만이란 그런 것만도 아니죠. 헝클어진 머리를 쳐서 다듬고, 지저분히 내돋은 수염을 깎는 데는 별난 재미도 있죠. 이렇게 면도질을 하고 한 손으로 깎은 자리를 어루만지면 매끈해진 살결이 손가락 끝에 간지러운 맛이란 별미죠. 한 오리 남김없이 매끈히 다듬어놓고 보면, 아주 새로운 얼굴을 자기 손으로 빚어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죠. 한 가지 예술이라구요? 예술이 무언지 몰라도 그렇더군요.
잠깐 숨을 죽이시죠. 코밑을 깎겠습니다. 네, 됐습니다. 졸리신 모양인데 주무시죠. 괜찮다구요. 주무시는 분이 많으시죠. 마음을 푹 놓으시는 모양이죠. 그렇게 마음 놓으시고 주무시는 걸 보면 때때로 이상한 생각도 들죠. 칼 밑에서 주무시니 말씀입니다. 아뇨. 놀라시게 하려구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려구 한 것은 그렇게 손님들이 모두 저희들을 믿어주신단 말씀입니다. 제 조카 녀석이 재미있죠. 그 녀석은 밤낮 하는 소리가 세상엔 도시 믿을 것이 없다는 거죠. 대학교에 다니면서 무슨 어려운 공부를 한다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괴상하죠. 교회에 다니는 형수를 몹시 괴롭히죠. 철학 아닌가구요? 뭐 그렇든가 보더군요. 머리도 잘 안 깎는 녀석 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돌아서 여길 찾아들게 되˙면, 녀석은 반드시 저 찌그러진 거울 앞 의자에 펄쩍 나자빠져선 잔뜩 목을 내어밀고 곧잘 자죠. 녀석이 때로는 코까지 골죠. 하하, 우습죠? 그걸 보면 결국 녀석도 믿는 거죠. 더욱 칼 쥔 사람을 말입니다. 다 되었습니다. 저쪽에서 머리를 빠시고 얼굴을 씻으시죠.
팔이 아프냐구요? 네, 왼쪽 팔굽이 잘 안 돌죠. 병신이죠. 뭐, 이렇게 문지르면 괜찮습니다. 이리 앉으시죠. 거기 한번 앉으시겠다구요? 손님은 원체 숱이 많으셔서 한참 말리셔야겠습니다.
더 얘기를 하라구요. 이거 오늘은 제가 너무 입을 놀리는 것 같습니다. 딴 손님도 안 계시고 한가한 판이니 더 지껄이죠. 손님께서 원하시니 말입니다. 저 거울을 보면 때때로 이상한 생각이 들죠. 물론 반듯한 거울에 비친 것이 옳은 얼굴이시겠죠. 눈으로 보는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같은 건 아니죠. 바른쪽과 왼쪽이 서로 바뀌니까 말입니다. 그저 비슷하죠. 절대루 같지는 않지요. 아주 다르다구 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저 찌그러진 것과 무어 별반 다를 것이 없죠. 반듯한 데 비친 것이 더 틀릴지도 모르죠. 눈에 뵈는 실물과 비슷하다고 그것이 진짜라 할 수는 없죠. 찌그러진 것이 진짤는지 모르죠. 도시 눈을 믿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아니 이건 제 얘기가 아닙니다. 조카 녀석이 그러죠. 무슨 군소리를 하는가 물으면 녀석은 퉁명스럽게 사람이란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더군요. 하여튼 이상한 녀석입니다. 그 녀석 얘기를 듣고부터 저도 저 거울을 보면 이상하게 무엇을 생각하게 되죠.
사실은 그 뒤에 제가 한번 단단히 겪었죠. 작년 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지죠. 아차 하면 큰일 날 뻔했죠.
그날두 오늘처럼 손님이 없던 날이었습니다. 밖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잘랑잘랑 끓는 날씬데, 저는 혼자 건들거리고 있었죠. 그때 삐걱 문을 열고 들어은 손님이 있었죠. 눈을 비비며 의자에 손님을 앉히고 머리기계 (바리캉)를 가져오려구 거울 앞으로 갔죠. 바루 이 자리죠. 그때 거울에 비친 이그러진 얼굴을 봤으나 그 손님이 누군질 몰랐죠. 돌아서서 손님한테로 가까이 가면서두 얼른 누군질 알아보지 못했죠. 머리를 흔들어 졸음을 걷고 얼핏 그 손님의 얼굴을 보자 저는 그만 흠칫 놀랐죠. 가슴에 칵! 오는 것이 있었거든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그 얼굴에서 눈을 떼었죠. 왜 그런지 다시는 눈이 안 가더군요. 머리칼만 들여다봤죠. 흰 오리가 검은 오리보다 많은 것이 잿빛으로 뵈더군요. 한참 있다 살그미 눈을 들어 거울 속에 비친 이그러진 얼굴을 건너봤죠. 알 듯하면서 잘 생각이 안 나더군요. 누구를 잘 못 본 모양인가 망설였죠. 많은 분들을 대하게 되면 가끔 잘못 볼 때도 있죠.
그렇게 해서 머리를 쳐 올리고 뒷덜미의 면도를 끝낸 다음에 손님을 뉘었죠. 비누를 푸는데 여느 때는 하얗던 거품이 어쩐지 노래 뵈더군요. 그때 문득 조카 녀석 얘기가 생각났죠. 같은 눈으로 봤는데 비누 색깔이 갑자기 달라져 됐으니 말입니다. 거품을 담은 붓솔을 들어 손님 얼굴에 가져갔죠. 그때야 똑똑히 그 얼굴을 봤죠. 아차 하면 붓솔을 그 얼굴에 떨굴 뻔했죠. 몸에서 확 불이 일고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더군요. 원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구나!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죠. 외나무다리가 아니고 이발소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놈! 하고 튀어나오려는 소리를 간신히 입 속에서 굴려버리고는 면도칼을 들어 이마빡에다 그 퍼런 날을 갖다댔죠.
그가 누군가구요? 참 그것부터 얘기해야죠. 제가 열아홉 살 때, 그러니까 꼭 이십 년 전 얘기죠. 네, 금년 서른아홉입니다. 그때 저는 이발소에서 조수 노릇을 하고 있었죠. 금교죠. 네? 가보신 일이 계세요? 그저 지나간 일이 계시다구요. 뭐 별난 곳은 아니죠, 조그만 거리죠. 바루 38이북이죠.
그날은 주인이 친척집엘 갔고, 손님도 없어서, 혼자 저런 찌그러진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면서 늘고 있었죠. 덜컹 문이 열려서 쳐다보니 어떤 허름한 차림을 한, 얼굴이 몹시 새하얀 젊은 사람이 들어오더군요. 무섭게 볼이 패인 얼굴인데 움푹 들어가 박힌 눈알만이 이글거리는 양반이었죠. 아무렇게나 깎아도 좋으니 빨리만 하라더군요. 손님은 자꾸 재촉을 했죠. 그래서 대강대강 밀어버렸더니 돈을 던져주고 달아나듯이 나가버리더군요. 그저 그것뿐이죠.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저는 그날 저녁 경찰에 끌려갔죠. 다짜고짜 그 손님 간 데를 대라는 거예요. 딱한 노릇이더군요. 저야 손님 머리 깎아주었다 뿐이지, 그 사람이 누군지 어딜 갔는지 어떻게 알 리가 있겠어요. 모르니 모른다고 했죠. 안 통하더군요. 이놈 맛을 봐야 한다구 하면서 마구 쇠몽둥이루 치구 의자에 뉘어놓고 코에다 물을 부어대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전 그저 덮어놓고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구만 했죠.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죠. 그땐 나이가 나이 아닙니까. 그 맞던 얘기 그만 하죠. 네? 아시겠다구요? 손님도 겪어보셨다구요? 그렇습니까, 몹쓸 녀석들이죠. 그때 이 팔이 상했죠. 사흘 뒤에 나오긴 했지만 상한 팔이 굳어져서 결국 이런 병신이 되구 말았죠. 일본놈한테 당했냐구요? 아뇨. 같은 조선놈한테 당했죠. 그러니 더욱 기가 막혔죠. 그 다음부터 순사만 보면 치가 떨리더군요. 실은, 그땐 남의 머리를 깎아 먹는다는 데 싫증이 나기 시작했구 갈치 같은 칼을 허리에 늘인 순사가 몹시 부러워서 순사 시험이나 한번 쳐보려던 때였죠. 그렇게 되니 시험이 다 됩니까. 진절머리가 난 데다가 팔 병신까지 되고 보니 별수 없이 이 노릇을 더 해먹게 된 거죠. 팔잔가 보죠. 일제 땐 병신 탓에 징용은 안 갔죠.
그 손님이 대체 누군가구요. 아차, 그걸 잊었군요. 바루 그때 내 팔을 분지른 형사란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외나무다리가 분명하죠.
이마빡부터 밀어가기 시작했는데, 손이 떨리고 습이 가빠지더군요. 머릿속에선 그때 당하던 가지가지 일이 엉켜 돌아가면서 벌집이 터진 것처럼 윙윙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군요. 몇 번이나 밀어가던 면도날을 멈춰서 그대로 엎눌러버릴 생각도 했죠. 그런데 한 가지 딱 걸리는 게 있더군요. 여느 손님처럼 마음을 푹 놓고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말입니다. 저를 찾아온 손님이란 게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 그 얼굴을 뜯어보았죠. 이마엔 여러 줄기 깊은 주름이 잡히고 얼굴엔 기름기 없이 생기가 안 돌고 있는데, 아무리 해도 거기서 그의 이십 년 전의 사납고 늠름하던 모습을 찾아낼 수는 없더군요. 늙었구나 하는 생각에서 어쩐지 기우는 마음을 느꼈죠.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하고 일부러 마음을 사납게 먹으려고 했죠. 미움을 돋우려고 뚫어질 듯이 그
얼굴을 노려봤죠. 흥! 바로 보따리를 바꿔 쥐었다는 게 이런 것을 두고 말한 게로구나, 눕힌 자리와 선 자리가 바뀌어 있었겠다, 그때 네 손엔 물을 가득 담은 주전자가 들려 있었지, 지금의 내 손엔 칼이란 말야, 요눔! 하고 턱 밑에 칼날을 세우려던 저는 그만 얼핏 손을 멈추었죠. 번쩍 하면서 밖에서부터 한 줄기 빛이 거울을 휙 스쳐갔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르게 밖을 내다보았죠. 그런데 밖에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움직이고 있는 물건 하나도 안 보였죠. 이상한 일이라구 생각하면서 다시 칼날을 세우려고 할 때 또 한 번 휙 그 빛이 스쳐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 얼핏 밖을 내다보았죠. 여전했습니다. 이번에 이상하다는 생각보다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쭉 끼치는 기분이 들더군요. 칼을 들고 있는 손이 잔가락으로 떨고 있는 걸 느꼈죠. 마음을 걷잡기도 전에 그 빛은 또 한 번 휙 지나갔죠. 이번엔 밖을 보지 않고 빛이 스쳐간 거울을 쳐다보았죠. 하마터면 칼을 마루에 떨어뜨리고 악 소리를 칠 뻔했습니다. 그 얼굴이 말입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 말입니다.
지금 저 속에 뵈는 이그러진 저것쯤은 되려 애교가 있죠. 그때 그 얼굴은 말이 아니더군요. 사납게 이그러진 제 얼굴을 보고 놀란 거죠. 색깔도 달랐죠. 저게 날까? 분명 그것은 나였죠. 손님이야 의자에 누워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군 내 진짜 얼굴이 바로 저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더군요. 조카 녀석 얘기가 생각나서 말입니다. 저는 구석으로 가서 가죽띠에다 면도날을 문지르기 시작했죠. 손님은 푹 잠이 든 모양이더군요. 그것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뭐라고 할까요. 그……. 네? 사람이란 그렇게 어리석은 것이라구요? 그런 처지에서 모르고 사는 것이 사람이라구요? 글쎄올시다. 그런 생각이죠. 기름을 바르시겠습니까? 안 바르신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 이쪽에 머리칼이 한 오리, 네 다 되었습니다. 이쪽에서 한 대 피시죠.
네? 그리구 어떻게 됐냐구요. 손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저도 한 대 피면서 얘기하죠.
그때 문이 열리면서 일곱 살가량 된 사내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구 누워 있는 영감을 보더니 아버지 하고 부르더군요. 어쩐지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누워 있던 영감은 으응 하면서 깨어나더니 힐끗 애를 치보고는 왔냐 하면서 반겨하더군요. 저는 야릇한 마음으로 손님의 턱 밑을 깎기 시작했죠. 몇 째신가요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영감은 원래 느지막에 생긴 둘쨋놈인데 큰애가 이번 전쟁에 전사를 했으니 저 애가 결국 큰놈인 셈이라 하더군요. 저두 이번 전쟁에 동생을 잃은 탓인지 영감의 얘기에 가슴이 짚였죠. 영감은 한숨을 내어쉬더니 그 애 하나만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는데 그만 먼저 가버리고 말았다고 하면서 나 같은 죄 많은 늙은 것이 안 죽고 되려 죄 없는 아들이 죽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내 저지른 죄가 무섭다고 하더군요. 묻지도 않는데 이렇게 얘길 하더군요. 늙은 탓이겠조.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죠. 이십 년 후 그 형사의 입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세상은 참 넓고도 좁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들끓고 있던 제 마음이 차차 물처럼 조용히 머무는 것 같았죠. 무엇을 하셨길래 그러십니까고 물었죠. 영감은 잠깐 있더니 한마디 아편장사 같은 거죠, 하고 뚝 그치더군요. 뜻밖의 대답에 전 아편장사요? 하고 되물었죠. 영감은 한참 묵묵히 거울에 비친 이그러진 자기 얼굴을 괴로운 듯이 건너보고 있더니, 말하자면 그런 따위 좋찮은 일이라는 거죠, 하더군요. 차마 형사를 지냈다고는 말하기가 거북했던 게죠. 한참 후 영감은 젊었을 땐, 하고 얘기를 시작하더군요.
“배운 것은 짧은 놈이 마음만은 살아서 한번 세상에 나서볼까 했죠. 남도 하는 일이니 내가 해서 안 될 것이 뭐냐는 생각이었죠. 무엇이 옳고 그르고는 접어놓고 그저 그때는 서두르기에 바빴죠. 그때 저의 어리석은 생각엔 상부의 명령이……아니 돈만이 하늘 같았죠. 그것을 얻기엔 물불을 가리지 않았죠. 어리석었죠. 어리석었죠. 마다는 친구들을 보면 되려 그놈이 답답하다고 생각되었지 나 자신을 뉘우치는 일은 조금도 없었죠. 맞는 놈이야 아나, 맞는 놈이야 어찌 되든 나만 좋으면 그만이란 생각이었죠. 지금 보면 나만 좋은 것도 아니었죠. 좋을 수가 없었죠. 여러 사람이 내 손에…… 아니 내 약 땜에 상했겠죠. 가끔 꿈에 뵈죠. 결국 내가 그 사람들을 친 셈이죠. 매질을 한 거죠……. 그때 남을 치던 매를 지금 늙어서 제가 맞고 있는 거죠. 큰애가 죽었을 때 더욱 생각나는 것은 옛날 저지른 자기 죄죠. 벌을 받으려면 이 늙은 것이 받아야 할 텐데 대신 아들 녀석이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야 내가 죽은 것보다 더한 벌이죠. 훌륭한 전사가 왜 벌이냐구요? 그건 이 늙은 것을 두고 하는 얘기죠. 큰애를 두고 그렇게 생각하기는 싫소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맥없이 중얼거리는 늙은이의 푸념을 듣고 있으니까 제 마음까지 이상해지더군요.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퀭 비어지는 것 같았죠. 그리고 그 빛이 생각나더군요. 거울을 휙 세 번 스쳐갔다는 그 빛 말입니다. 어디서 애들이 거울 조각을 가지고 장난친 빛인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어떻든 그 빛은 참 고마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 영감이 몰라보던가구요. 끝까지 몰라보더군요. 저두 이십 년 동안에 몹시 변한 모양이죠. 잘됐었죠. 알아보았다면 좋을 게 뭡니까. 모르고 지내는 게 차라리 낫죠. 사람은 속아 사는 것이라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안다는 건 되려 괴로울지 모르죠.
영감은 어린 놈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놈 하나 커가는 걸 보는 게 한 가지 남은 낙이라구 하더군요.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아들의 손을 잡고 나란히 저쪽으로 걸어가는 두 그림자를 저는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서서 창에 끼어진 유리 너머로 보고 있었죠. 남의 일 같지 않더군요. 제게도 여섯 살 난 사내놈이 있죠. 한참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더군요. 저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앞에 가로놓인 창에 낀 유리가 제 얼굴을 비치는 거울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오싹했죠.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요. 유리가 아니고 거울이다. 저 부자(父子)의 모습은 곧 거울에 비친 나와 내 아들과의 그것이다. 네? 뭐라구요? 깜짝 놀랐습니다. 빨리 얘기를 하라구요? 유리거든요. 거울인데 그것이 유리거든요. 사방 유리뿐이죠. 빤히 뵈긴 하는데 무슨 소리를 치든 유리 때문에 안 들리거든요. 유리가 아니죠. 그것은 거울이죠. 그러니 뵈는 건 남이 아니고 나죠. 나죠. 분명히 나죠. 걸어가는 건 나죠. 때리는 건 나죠. 맞는 것도 나죠. 죽는 건 나죠. 죽이는 것도 나죠. 우는 건 나죠. 울리는 것도 나죠. 거울이거든요. 유리는 없죠. 모두 거울이죠. 네? 그저 좀 머리가 어지러울 뿐입니다. 이십 년 동안을 하루같이 거울과 맞서고 있으면 때때로 이렇게 현기증이 나죠. 감동하셨다구요? 원! 그런 말씀을. 네? 그때 금교서 머리를 깎아준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는가구요. 건 모르죠. 알 리가 없죠. 네? 틀림없이 잘 있을 것이라구요? 고맙게 생각하구 있을 것이라구요? 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결요. 네? 손님이 그 사람이면 그럴 거라구요? 항상 생각하구 있을 거라구요. 글쎄올시다. 건 또 뭡니까? 아뇨. 이런 돈을. 약주나 먹으라구요. 그런데 이건 너무. 손님이 바로 저니까라구요? 원 농담 말씀을.
저어 선생님 성함은? 김선생님이시라구요. 전 이죠. 무슨 사업을 하시죠? 글을 쓰신다구요? 네에, 소설을 쓰신다구요. 소설 나부랭이라뇨? 원 그런 말씀을. 제 얘기를 쓰시겠다구요? 어디 그게 얘기가 됩니까. 일어나시렵니까? 오늘은 너무 혀를 날름거려 죄송합니다. 종종 오십쇼. ‘철인 이발관’ 이라구 고치라구요? 철인요? 무슨 뜻인데요? 네? 원 선생님도 별말씀을 다. 유리창 밖으로 나가시는 게 아니라 거울 속으로 들어가신다구요? 농담 말씀을. 그럼, 안녕히 가세요.
-끝-
2016년 5월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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