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제주 4.3은 '숨은 역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주 4.3이 그 상흔이 가득한 몸체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까지도 제주 4.3은 '풍문'으로 전해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대학에 입학한 우리를 맞이한 게 강의실 앞에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었던 시절, '시위'를 주동하던 선배가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가차없이 짓밟히는 걸 보던 시절, 국가 권력이 '폭력'임을 실감하던 시절에 제주 4.3은 그런 폭력적 역사의 상징으로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고 김대중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게 1998년에 이르러서 였습니다. 1999년 '제주 4.3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2003년에 이르러서야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국가 권려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제주 4.3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사건'이래 반세기가 지나서였습니다.
한 날 한 시 제사를 지내는 이들의 사연
'그 시간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짖는 소리가 밤 하늘로 치솟아 오르곤 했다. 한 날 한 시에 이 집 저 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1978년 제주 4.3을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금서가 된 <순이 삼촌>에서는 한 날 한 시에 '제사'를 지내는 이들의 사연을 그립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꽃할머니>, 5.18을 소재로 삼은 <식스틴> 등 그림책을 통해 현대사의 진실을 전하고자 애쓰는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 역시 '제삿날'로 시작됩니다.
미술을 통해 사회운동을 했던 작가답게 '민중 미술' 작품의 익숙한 구도와 공필화, 불화를 공부한 내공이 고스란히 그림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1945년, 해방을 맞아 외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 제주도로 돌아온다'로 부터 시작해,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이 들어왔어. 바다 건너 제주까지', '관덕정에 총소리가 난 뒤로는 육지 경찰도 들어왔어', '서북청년단도 몰려오고', '무자년 난리가 나고 육지에서 군인들까지 들어왔어'라는 장면은 사람들이 '물로 뱅뱅 둘러싸인' 제주에 몰려오는 장면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해방 후 희망에 부풀었던 제주, 하지만 해방 이후 정국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높은 실업에 콜레라, 그리고 어수선한 정치 상황이 이어지고 '관덕정 발포 사건'에 이은 3.10 총파업, 그리고 무자년 1948년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12개 경찰지서와 우익 단체들을 공격하고 이를 빌미로 경찰이, 군대가, 서북 청년단이 '빨갱이' 색출 작전에 나서며 '양민 학살'의 비극적 역사가 포문을 엽니다.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짖눌렀던 레드 콤플렉스는 '빨갱이'라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이 역사들에서 비롯됩니다. 권윤덕 작가는 그 학살 현장에서 '나무 도장'을 손에 꼭 쥔 채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이 시리에게 경찰 가족이기에 홀로 목숨을 구한 엄마가 사연을 들려주는 식으로 그 비극을 풀어냅니다.
경찰이었던 외삼촌, 경찰과 군인들은 겨우내 산에서 붙잡은 사람들을 길잡이로 내세워 한라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어./ (중략) 작은 동굴을 찾아냈지/ (중략) 군인들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지금 나오는 사람들은 살려준다고 외쳤어./ (중략) 경찰과 군인들은 동굴에서 나온 사람들을 밭담 앞으로 몰고갔어.
그림책 펼침면에 사람들이 나란히 서있는 뒷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번져가는 푸른 물감으로 그려진 사람들의 뒷모습, 한 눈에도 그저 평범한 갑남을녀들입니다. 그 가운데 엄마 치맛자락을 잡은 아이의 손이 보입니다. 어른 키 반 정도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와닥 와닥 와다닥 와다다.......'
11년 전 친어머니의 죽음을 전해들은 시리가 어머니께 묻습니다. '어머니, 그럼 나도 빨갱이예요?'
제주 4.3 사건으로 제주도민 10 명에 1명인 25,000~ 30,000 명이 목숨을 잃고 한라산 중간산 마을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가 해제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제주의 아픈 얼굴
역시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비가 된 소녀들>을 쓴 정란희 작가가 글을 쓰고, <만녀 싸스>의 양상용 작가가 그림을 그린 <무명천 할머니>는 희생당한 주민들의 '실화'를 작품화했습니다. 그림책 표지에는 총에 맞은 턱을 무명천으로 가린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턱이 없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실 때도 흉측해진 얼굴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평생을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진아영 할머니, 말을 할 수 없어 '모로기 할망'(모로기는 언어 장애인의 제주 방언입니다)이라 불렸던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의 아픈 얼굴입니다.
어두운 밤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숨었습니다. 대숲에도, 소낭밭에도, 굴 안에도. 집이 불타도 누구 하나 불을 끄러 달려나가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런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영은 집이 불타는 걸 보고 달려 나갔습니다. 부엌으로 달려가 곡식 항아리를 들고 부모님이 숨어계신 텃밭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탕!
불타는 섬, 피에 젖은 섬, 동굴 속에 숨어든 사람들은 들켜서 죽임을 당하거나, 굴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해 굶어 죽기도 했습니다. 너븐숭이 옴팡밭에는 삼백여 명이 마을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희생되었습니다. 구덩이에 암매장된 백 서른 두 명의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림책은 이 비극의 역사를 무명천 할머니의 이야기를 빌려 그려냅니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을 못간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여행지가 된 제주, 제주의 사월에는 꽃축제가 한창이라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4월 3일 여러 집에서 제사를 지내겠지요. 동족을 광기어린 살해의 대상으로 만든 현대사, 진상과 보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