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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 |저승 이야기 ③] |
염라왕을 누가 감히 잡아온단 말인가 |
함정에 빠진 강림도령 엇대답 앞길 캄캄 … 강림 큰각시 나서 저승 가는 길 만반의 준비 |
큰각시 신녀. |
“개 같은 김치원아, 봉고파직하고 이 마을을 떠나거라!” 오늘도 성문에 올라가서 외치는 과양상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가고 김치원의 간은 갈수록 콩알만하게 오그라든다. 봉고파직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김치원. “저런 더러운 년한테 저 입살을 듣고 내가 원을 살아 무엇할꼬?” 문을 잡고 드러누워 죽기로 작정한 김치원이 아침상도 아니 받고 점심상도 아니 받는다. 부아가 난 김치원의 부인이 한 소리를 하네. “이게 무슨 꼴입니까? 과양상이를 징치하든지, 그도 아니면 저승의 염라왕이라도 잡아와서 해결을 해야지요.” 문 밖에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던 사령들 가운데서 도사령이 뛰쳐나온다. 옳다구나! 무릎을 치며, “맞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면 죽은 자의 입을 열어야 합니다. 염라왕을 이승으로 불러와서 삼형제의 입을 열어야 죽은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염라왕 상대 에라, 이판사판 그렇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입을 열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은가? 저승의 염라왕! 에라, 이판사판이다. 저 죽음과 두려움의 상징인 염라왕을 이승으로 불러오는 수밖에! 김치원이 마음속으로 작정을 하고는 묻는다. “그런데, 염라왕을 누가 잡아온단 말이오?”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뒤집어지면서 새롭게 전개된다. 과양상이의 난데없는 소지를 이승의 원이 염라왕을 잡아온다는 기가 막힌 해법으로 풀어낸 것이다. 신의 위엄과 권위를 생각해볼 때 참으로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신화에서는 신들의 지배가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을 잡아온다는 관념은 우리 신화에서 인간의 현실세계가 더욱 주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신화에서 저승을 다스리는 신 하데스를 누가 감히 잡아온다고 하였던가. 아무도 없다. 제우스 신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갔던 죽음의 신이 아니었던가! 자, 드디어 우리 저승 이야기의 주인공 강림도령이 등장할 차례다. 도사령이 하는 말, “우리 사령들 중에 다른 사령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 힘 좋고 담대한 강림이란 자가 있습니다. 강림이는 문 밖에도 아홉 각시 문 안에도 아홉 각시를 첩으로 두고 살 정도로 힘이 좋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사람이 있단 말이지? 김치원이 너무나 반가워한다. 아니, 저승에 가서 염라왕을 잡아올 수 있는 자가 있단 말이지? 놀랍고도 놀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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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승길이 구만리 라는말이 있는데 호미곶에 있는 마을 이름이 구만리가 있지요!
감사히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