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나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나요?
명문대 졸업, 미 유학파, 젠(Zen) 센터의 경험으로 출가한 ‘엄친 딸’ 상욱 행자!
어린 시절, 절에 버려져 ‘동진 출가’의 업을 지닌 선우 스님!
‘신세대형’ 비구니, 인터넷 검색으로 ‘절’에 왔다는 민재 행자!
37년간 수행의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영운 스님!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이 머리를 자를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
그곳에서 비구니와 함께한 300일 간의 템플스테이가 공개된다!
*비구니(比丘尼) : 출가(出家)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구족계를 받은 여승
*구족계(具足戒) :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 비구에게는 250계, 비구니에게는 348계가 있다.
가리워진 길, 비구니를 찾아서...
몇 년 전 위빠사나 수행처인 <호두마을>에서 몇 주간 남방불교선인 위파사나 수행을 했다. 예순은 넘은 직한 비구니 노승이 맨 앞줄에 앉아 스무 명 남짓한 일반수행자들과 함께 수행을 했다. 선승으로 평생을 전통불교수행인 화두선을 하신 노스님은, 말년에 새로운 수행법에 도전하시는 듯 했다. 헌데 법회나 참선에 들어가면 오분도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졸기 시작했다. 때론 코까지 골 만큼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 노스님은 슬며시 자리를 물리시곤 했다.
집도 절도 없이란 말이 있다. 하루는 총무실에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러 갔다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당신 핸드폰이 충전을 해도 두 세 시간도 못 간다며 봐달라고 하셨다. 보니 10년은 넘은 모델이다. 나는 스님께 공짜 폰 있다며 오랫동안 설득을 하여 핸드폰을 교환하기 위해 읍내로 내려가다 스님의 사연을 들었다. 노스님은 출가 후 평생을 집도 절도 없이 안거철마다 선방에서 선방으로 옮겨 다니시며 깨달음을 구하시다 이곳 호두마을까지 흘러와 잡무를 도와 숙식을 해결하며 남은 여생을 또 다른 수행에 바치고 있단다.
나는 노스님에게서 깊은 인간적 고뇌와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이제 양로원에 갈 연세가 되었음에도 저토록 매달리게 하는 진리란 게 있을까? 그 진리는 진정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전여신설(轉女身說) ‘비구니는 남자로 환생해서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는 벽을 마주 보고도 끊임없는 정진을 하게 하는 마음의 뿌리는 무엇일까?
불교의 변방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창재 감독 연출노트 中-
[ ABOUT MOVIE ]
신도 아닌, 인간도 아닌 ‘무당의 생소한 삶’을 그린
2006년 화제의 흥행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이창재 감독!
7년 만의 신작 <길위에서>로 ‘숨겨진 비구니’ 세계를 벗기다!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백흥암! 그 곳은 일반인의 출입도, 촬영도 엄격히 통제된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길위에서>는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출가하여 백흥암에서 수행중인 ‘비구니’들의 생활을 국내 최초로 이창재 감독이 카메라에 담아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창재 감독은 2006년 <사이에서>를 통해 ‘무당’이라는 낯선 소재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 해,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다큐멘터리 흥행의 시초가 된 영화 <사이에서>는 그리스 테살로니카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04년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 는 뉴욕현대미술관 30대 다큐멘터리로 선정되며 상영된 데 이어, 덴버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다수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으며 일관된 다큐멘터리 작업을 고수해 온 이창재 감독은, <사이에서>에 이어 7년 만에 신작 <길위에서>를 완성했다. <길위에서>는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본선 진출, 제38회 서울 독립영화제 초청, 제6회 CINDI 영화제 ‘버터플라이’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영화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금남(禁男)의 집, 그 곳에서
한 올 남김없이 머리를 민 여자 비구니를 만난다!
이창재 감독은 전작 <사이에서>를 통해 ‘무당’의 삶을, 이번 작품 <길위에서>를 통해서는 ‘비구니’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왜 그는 여성 종교인에게 집중하는 것일까? 감독에게 물었다. ‘비구’가 아닌 ‘비구니’여야만 했던 이유를..
“여성이며 종교인들을 두 번에 걸쳐 다루었다. 아마 다음 작품도 같은 범주에 들 듯하다. 나는 종교인이나 신자는 아님에도 정신적, 영적 여행에 대해 관심이 있다. 그것도 단순히 아이템의 하나로 혹은 이슈로만 생각하지 않고 온몸으로 뛰어들어 느끼길 원한다. 종교인들은 자신을 특정한 삶의 굴레에 온몸으로 뛰어드는 강렬한 열정이 있다. 그런 강렬함이 내게 인상적이다. 이를 올곧이 드러내주는 차원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내게는 보다 흥미롭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내적 변화와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이창재 감독)
영화 <길위에서>에는 여성성을 버리고, 민 머리에 맨 얼굴인 비구니들의 모습이 백흥암의 아름다운 영상과 겹쳐지며, 가슴 한 켠을 아련하게 한다. 출가 전에 지닌 여성성이 그들에게선 완전히 사라졌을까? 영화 속에 표현되는 ‘민재 행자’의 삭발식 장면에서 공감되는 서러움은 비구니의 내적 갈등을 표현해 낸다. ‘비구’가 아닌 ‘비구니’이기에 더 많은 것을 내려 놓은 사람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비구니’에게서 느껴지는 처연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백흥암에 스며든 사계(四季)
가공되지 않은 자연 속 비구니를 고즈넉한 영상미로 담아내다!
베일에 가려진 공간, 그 곳은 금기(禁忌)의 공간이다.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 영화 <길위에서>는 국내 최초로 ‘백흥암’에서 수행 중인 비구니의 모습을 영상 속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제작비 투자 유치 과정 보다 더욱 지난한 과정을 거친 사찰 섭외, 그러나 촬영과정은 지금껏 경험한 모든 작업에서 받은 고난을 합친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 이창재 감독은 말한다.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왔는데 왜 감독님과 촬영을 해야 하나요?’라는 비구니 스님들의 촬영 거부 사태, 촬영이 진행되는 300여 일 동안 그는 총 4회에 걸쳐 백흥암에서 ‘추방’되었으며, 마지막 ‘추방’이 결국 크랭크업이 되었다.
새벽 3시 예불 참여로 시작되어 밤 9시 취침으로 마무리되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선 제작진도 함께 수행해야 했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하루에 10분의 촬영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내가 비구니 스님을 보여줄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하는 이창재 감독은, 직접 일 년간 사찰에 머물며 백흥암의 아름다운 사계 속에 감춰졌던 비구니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직 비구니만 허락하는 금남의 공간 백흥암, 그 곳에서 300일 동안의 기록으로 담아낸 수려하고 고즈넉한 영상미는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영상을 써 내려가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해탈과 참선이 아닌
템플스테이 하듯, 현대인들의 휴식 갈증에 평온을 꿈꾸게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 지난 해를 사로잡은 키워드 ‘힐링(Healing)’, 스마트한 세상 속에서 스마트하게 살아남기 위한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홍수 속에 점점 피로해져 가고 있다. 일명 ‘피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영화 <길위에서>는 ‘당신도 혹시 나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 동안 휴식하며 사색할 시간을 제공한다.
<길위에서>는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창재 감독은, 그간 선인들의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불교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수행’보다는 ‘사람’에 집중한다. 다소 신화화되고 객체화 되어 ‘남의 일’ 처럼 느껴졌던 수행의 삶이라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그들’ 삶 속의 번민과 갈등을 통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추앙 받아야 할 종교적인 인물이 아닌 불가에 처음 발을 디딘 ‘행자’의 시선으로 관객들과 함께 절에 오르는 경험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 해탈과 참선을 결심한 선인들만이 아닌, 현실 속 휴식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나를 찾아나선 한 인간의 성장기로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 매력을 지닌 영화 <길위에서>.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템플스테이 경험을 통한 휴식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고통스런 종교의 깨달음이 아닌 힐링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제3자가 아닌,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관찰자 내레이션!
“다큐멘터리는 일차적으로 출연자 자신의 이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차적으로는 관객들에게 향하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가장 멋진 경우, 감독 자신을 향하는 거울이 된다.” (이창재 감독) 처음에는 인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에서 출발하지만 일 이년 간의 긴 여행을 마칠 무렵에는 그들 속에서 내가 보일 때가 있다며 다큐멘터리 작업에 집중하는 이유를 밝힌 이창재 감독.
그는 전작 <사이에서>에 이어 이번 작품 <길위에서> 역시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참여 이유를 제작비 절감 차원이라고 밝히지만, 그의 내레이션은 평범하고 나약한 우리들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로서의 공감도를 높이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어쩌면 무모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라는 자조 섞인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 <길위에서>. 300여일 동안 이창재 감독이 비구니들과 함께 수행하고 생활하며 경험한 백흥암 스님들에 관한 탐구는 내레이션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영화가 끝날 무렵, “큰 스님이 그 동안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했다”라는 감독의 솔직한 생각을 담아낸 내레이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며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