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 현존하는 족보는 오직 안동 권씨의 성화보가 전하고 있어 당시의 족보체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체계적인 족보 형태의 최초 족보
1476년(조선 성종7년)의『안동 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이후 1565년(조선 명종20년)에는『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 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의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 하자가 없었다.
△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기록하여 간행된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의적인 수식이 가하여 졌음은 물론이며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 두어 기자(기원전 1122년 우리나라에 왔다고 함)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거나,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조상이라고 하는 식으로 족보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중화사상에 물들은 일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자신의 가문의 격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 족보 수록 방법
1700년 이전과 이후의 수록방법에는 많은 다른 점이 있는바,
1700년 이전에는 첫째 남녀 구별 없이 출생 순으로 기록했다는 것과,
두 번째로는 외손의 5대손 까지를 기록하여 본종과 외손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동등하게 수록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한 성씨의 족보라기보다는 만성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1700년 이후에는 출생 순이 아닌 남선여후로 바뀌고,
외손의 기록을 생략하고 사위까지만 기록하여 본종 위주로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자(程夫子)가 이르기를 수종족 후풍속 수시계보(收宗族厚風俗須是系譜)라 하였다.
즉 '종족의 계보를 밝혀 *원근친소와 위계질서를 세워 풍속을 두터이 하는 데는 모름지기 족보만한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따라서 선조들께서는 *수보에 성의를 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명문벌족의 상징물처럼 왜곡되고 반상을 구별하는 척도처럼 악용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족보란 한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여 *열선조의 *관직 행장을 알 수 있고 *세계와 소목을 밝힐 수 있도록 하는 기록이다.
따라서 이는 나라에는 국사가 있어 성군의 치적과 폭군의 *난정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족보의 명칭
15세기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족보의 명칭을 상고해보면 원칙도 기준도 없이 나름대로 명칭을 부여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게되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족보의 명칭은 앞에 성씨를 붙여 “족보(族譜)”. “세계보(世系譜)”. “대동보(大同譜)" . "파보(派譜)" . "문중보(門中譜)" .
"가승보(家乘譜)" 등 6종으로 국한되어야 하고 그 외의 명칭은 사용할 필요도, 사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 족보와 세보의 차이
가장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족보(族譜)와 세보(世譜)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혼동되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족보라고 하는 것은 흔히 횡간 6단으로 하여 *방주에 생졸. 관직. 배위. 묘소 등을 기록하는 자손록을 일러 족보라 하고,
문헌편 2권은 세계도편, 3권 이하는 자손록편으로 하여 한 질로 *편철한 것을 통칭 족보라고 하는 것이며
이를 세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편철된 족보의 수록된 범위에 따라 대동보. 파보. 문중보로 명명하게 되는 것이다.
세보(世譜)란 세계도보(世系圖譜)의 준말로 세계도(世系圖)만 수록한 것을 일러 세보(世譜)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친의 수가 많아 자손록을 포함하는 족보를 발행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세계도보만을 따로 발행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일러“세보(世譜)”.“세계보(世系譜)”또는“대동세보” 라고 명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보(世譜)와 족보(族譜)와는 엄연하게 구별이 되는 것이므로 족보를 세보로 명명하는 경우가 없어야 할 것이다.
△ 분파도 작성과 파명 부여
또 한 가지 잘못 적용되고 있는 것은 분파도의 작성과 파명의 부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분파라고 하는 것은 상계에서의 분파가 한번만 이루어지고 그 이하에서는 각각의 문중으로 명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족보를 편찬 할 때 5대손마다 새로운 파명을 부여하여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분파도를 작성함에 있어서도 시조로부터 분파조까지만 기록하고 파조이하는 점선으로 표시하고
그 하단에 파명을 기록하는 것이 분파도 작성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파조 이하의 자손들을 4, 5대 등 일정한 세대까지 기록하고
그 아래에 묶음표로 하여 파명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족보에 대한 관심은 많으나
족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족보의 발행주기가 30년 이상이기 때문에 개선의 기회가 부족하여
전철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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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士大夫)- 대체로 송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때 귀족 외의 높은 벼슬아치나 문벌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였고,
그 가문을 사대부 집안, 그 가족을 사족이라 해서 일반인과 구별하였다.
고려 말에 정치 정상에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낸 사대부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주로 현·전직의 관리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지식계급을 지칭하게 되었다.
*정부자(程夫子)- 정호(程顥). 중국 북송의 유학자(1032~1085).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
아우 정이(程臣+頁)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불리며, 도덕설을 주장하여 우주의 본성과 사람의 성(性)이 본래 동일하다고 보았다.
저서에 《정성서(定性書)》, 《식인편(識仁篇)》 따위가 있다.
*원근친소(遠近親疏)- 관계의 멀고 가까움과 촌수의 가깝고 멈
*수보(修譜)- 족보의 미진한 부분을 손질하여 고침
*열선조(列先祖)- 윗대부터의 여러 선조.
*관직 행장(官職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벼슬명과 행적을 적은 글.
제자나 친구·동료·아들 등이 죽은 이의 세계(世系)·성명·자호·관작·관향(貫鄕)·생몰연월·자손·언행 등을 기록한다.
*세계(世系)-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
*난정(亂政)- 어지러운 정치
*방주- 족보의 횡간 6단 중의 1단에 해당 인물에 대한 행적과 생졸. 관직. 배위. 묘소 등을 기록하는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