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했던가요.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아내와 딸아이의 제312차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달리는 차안이라 블럭버스터급 액션은 없었습니다만 이내 유혈사태로 치달았습니다. 갑판장의 개입으로 모녀간의 대전은 휴전을 했습니다만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팥빙수와 떡볶이/복희집, 마산
뒷끝이 작렬하는 모녀를 실은 차는 마산의 창동예술촌에 당도하였습니다. 낯선 곳이 주는 긴장감이 둘 사이를 다시 돈독하게 하길 바랄 뿐입니다. 갑판장도 이 동네는 초행이라 당최 동서남북이 헷갈립니다. 미로처럼 얽힌 수 많은 골목들 중에서 막상 창동예술촌을 찾을라니 머리가 빙빙 돕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40년 전통의 분식집이라는 복희집을 먼저 찾았습니다.
복희집은 1970년대에 좌판으로 시작한 7080년대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분식집입니다. 이 집의 전통팥빙수가 부산의 팥빙수 못지 않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이라 당연히 팥빙수를 주문했습니다. 전통팥빙수라더니 진짜 그런 맛이 납니다. 질력나게 달기만 한 공장제품이 아니라 직접 단팥을 쑤는지 팥의 구수함에 단맛이 얹혀진 맛입니다. 겨울이라면 전통단팥죽을 한 그릇 비웠을 겁니다. 떡볶이는 아내의 선택입니다.
이정표/창동예술촌, 마산
옛마산의 명동이라 불리던 창동이 신흥상권에 밀려 끝모를 쇄락의 길을 걷던 중에 지자체의 관심과 문화예술인들의 참여, 상인들의 호응에 힘입어 2012년부터 도시재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예술촌을 조성하고 있답니다. 해당 지자체에서도 성공사례로 적극 홍보를 할뿐더러 타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수시로 찾는답니다. 겉모습은 제법 그럴 듯 한데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간의 욕망의 충돌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들도 불거진 상태랍니다. 행여 예술과 문화는 자취를 감추고 욕망만 넘실대는 뻔한 곳으로 변질될까 두렵습니다. 지난 5월에는 창동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촛불문화제'를 상인회의 일부가 저지를 하는 사건도 있었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마산은 이승만정권이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이를 규탄하기 위해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던 3.15의거의 역사적 현장입니다. 또 서슬이 시퍼렇던 유신체제 하에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유신철폐를 외치며 민주화투쟁에 나섰던 부마민주항쟁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영록서점/창동예술촌, 마산
'100만권의 장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실감이 나는 초대형 헌책방인 영록서점이 마산의 창동예술촌 골목 안에 있습니다. 이런 규모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쥔장의 뚝심이 놀랍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숨을 쉽니다만 운영비용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부림시장 창작공예촌/마산
구경보다는 체험을, 아이쇼핑보다는 쇼핑을 좋아라 하는 딸아이를 위해 부림시장 창작공예촌에 찾아 갔건만 아쉽게도 하계휴가중입니다. 도데체 이번 여행에선 제대로 되는 게 별로 없습니다...만 플랜 B를 진행하면 되고, 그도 안 되면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즐기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라고 마인드 컨트롤중입니다. 흙
단술(감주, 식혜)/부림시장, 마산
부림시장을 떠돌던 중에 딸아이가 식혜를 사달라기에 노점에서 한 잔 사줬는데 곁에 계시던 손님曰 '여기 무지 오래 된 집입니다. 마산에 올 때마다 일부러 들려 단술을 사갑니다.'랍니다. 이 말씀에 쥔할매曰 '죽을 때까지 해야지'랍니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집에서 만들어 주시던 딱 그 맛입니다.
복희집의 단팥이나 부림시장 노점할머니의 단술은 특별한 맛은 아닙니다만 여행을 마친 후에도 계속 여운이 남습니다. 잔기교를 부리지 않고 예전에 하던대로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들어 평양냉면, 곰탕, 탕수육, 짬뽕, 제빵 등을 취급하는 전문업소들중에서도 대중들에게 대단한 맛집으로 각광을 받는 집들이 있습니다. 그 집들이 추구하는 맛과 마산에서 맛 본 단팥과 식혜의 맛이 서로 맥락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옆자리에 강구막회도 낑기고 싶습니다.
부림시장/마산
하여간 시장에선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는 딸아이입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한 나들이에선 뭐래도 하나 득템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방어를 잘해서 허튼 지출을 막았습니다.
창동예술촌/마산
'괜히 따라왔어.'란 말이 여행내내 딸아이의 입에 붙어 있습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사회성 및 독립성 함양을 위해 초등학교 6학년 때 1년간 강원도 양양의 산골마을에서 유학을 보냈더니만 독립심이 지나치게 함양된 듯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여름방학 때 한 달간 해외캠프에 참여 시켰었는데 거기서도 아주 잘 지내다 왔다니 넉살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중에도 매일같이 등교를 하고 있습니다. 연극반에서 공연연습을 한다나요. 덕분에 엄마, 아빠가 숨돌릴 틈을 얻었습니다. 연극부장과 지도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 주시길 앙망하나이다.
Mool Glass/창동예술촌, 마산
딸아이는 기어코 공방체험에 나섰습니다. 이번에 체험할 종목은 유리소재의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랍니다. 유치원생부터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체험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는데 "딸아, 너무 신중한 거 아니니?"
카페/창동예술촌
이어지는 코스는 아내의 카페체험입니다. 여유로운 휴식이 필요하다니 충분히 누리게 해드려야지요. 암요. 오전에 이미 진하게 내린 커피('부산의 아침'편 참조)를 마셨던 갑판장은 민트차나 마실 수밖에요. 갑판장은 카페인에 매우 취약하거든요. 오바를 하면 두근두근 쿵쿵...양떼를 헤아리며 하얀 밤을 지샐 수도 있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2박3일간의 여행이 참 깁니다. 오전 일찍 서울을 탈출하여 밀양에서 아침을 먹은 덕분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메쯤 있는지, 아직도 하룻밤과 그 다음 날 아침, 낮이 남았습니다. 어쩌면 저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