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선행을 보고
2003년 6월1일 수원 아주대학 병원
내가 제자들로부터 연락 받기는 5월 31일 오후 경북 청도 대현초등학교 15회 동기생들이 지방에서 무리지어 수원으로 온다기에 서울에 사는 그들의 동기생들과 함께 수원으로 내려갔다. 부산 대구에서 온 제자 10여명과 찜질방으로 옮겨 내일 일을 의논하였다.
대현초등학교 15회 졸업생들은 내가 꿈을 펼칠 좋은 농장를 찾아다니던 시기, 1970년에 1년 동안 근무하며 그들이 6학년 때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다. 하여 그들의 대현초등학교 동기생 중 고인이 된 석장구(당년 46세)가 아주대학 병원에서 운명(殞命)을 해 장례를 치르기 위한 모임이란다. 그것도 가족들은 없고 친구들만 모여 친구의 장례를 치러야만 되는 기구한 사연은 이러했다.
고인은 내 제자들과는 4학년 까지만 학교에 같이 다니고 이사와 동시에 전학을 가서 영영 만날 수가 없다가 1999년, 31년 만에 당시 속초에 살던 고인을 설악산 등산길에 오른 동기생 석태곤 이태호와 우연히 만나 석장구라는 친구의 소식이 동기생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친구가 2003년 5월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을 앞두고 친구를 찾았다. 고향 떠난 수 십 년 만에 설악산에서 만났던 친구에게 남편이 위독하다고, 아무데도 연락 할 곳이 없어서 연락한다고 부인이 전화를 했다.
위독한 친구의 소식에, 그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들도 다투어 병문안에 동참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도 가난해 병원비가 없어서 가족들이 잠적해 버렸다. 병원에서는 일가친척도 연락이 되지않고 해서 고민하던 중 소지품을 조사하다가 친구들의 전화 번호를 발견하고 병원 측에서 고인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고인의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는 딱한 사연은 동기생 사이에 순식간에 퍼지고 이 소식을 들은 동기생 중 정태숙은 장례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선언하며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고인 시신이 있는 수원 아주대학 병원으로 달려 온 것이다. 3월 29일부터 5월 23일까지 병원비 미납분 600만원을 병원 측과 협의 하여 정태숙이가 지불하고 영안실에 있는 시신을 눈을 감은 지 9일 만에 받아 내어 수원 연하장으로 운구해 화장하였다.
한편 어린 딸과, 딸의 이모부가 나타났으나 경제력이 없어 결국 정태숙 제자가 병원비와, 화장하는데 든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한줌의 재를 고인의 어린 딸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내가 직접 가르치지는 않은 한생명이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을 밝게 보낸 내가 가르친 제자들의 감동적인 선행을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는 옛 선생은 벅찬 감동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너무도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진작 알았으면 신문기자를 대동해 와 이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알려 많은 사람들이 본을 볼 수 있게 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때 함께 자라고 4학년 때까지 함께 공부한, 잊었던 석장구라는 동기생을 위해 바쁘고 어려운 시간을 내어 먼 길을 달려와서 좋은 일을 하고 돌아가는 제자들의 뒷모습은 정말로 의젓하게 보였고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나’라면 그들과 같이 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할 것이다. 분명한 자답이다. 혼자 잠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제자들 마음보다 못하다니’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내 주위에서도 그런 모습을 잘 보지를 못했다. 남을 가르쳐 본 사람으로서 나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하였다.
1년에 한 번씩 치르는 동기회에 초대를 받아 몇 번 참석 한 적이 있다. 동기생 숫자는 적지만 30여명이 참석한 모임이 단결된 모습에 감동하였고, 총동창회에서는 무엇이든 1등이었다. 특히 정태숙은 사회 출발은 어렵게 시작했지만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부산에 모(母 )기업을 두고, 해외로 진출한 단단한 회사의 대표이사다. 동기회모임과 동기생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좋은 심성을 가졌으며 동기생 누구나 인정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잘 산다고, 나를 나타내기 위함이라면 친구들도 마음을 절대로 주지를 않을 것이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회사 운영도 그와 같이 좋은 심성으로 사원들과의 사이를 돈독히 해 사업을 잘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크고 탄탄한 기업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혼자 짐작해본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실행에 옮기고 일상 생활속에서 큰 기쁨을 만들어 낸 대현초등학교 15회 동기생들!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들 모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덧붙여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과,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크다는 말, 다시 한번 생각해 게 한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는 ‘자선이라는 덕성은 이중으로 축복받는 것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받는 것이니 미덕중에 최고의 미덕‘ 이라고 칭송했다. 남을 위한 조그마한 정성이 결국은 타인뿐 아닌 본인의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파지(破紙) 줍는 팔순 할머니 천만원의 “아름다운 기부”, 고귀한 천만원”을 생활보호자 87세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내놓고, “지금 생각해도 남 주기를 잘했어 남은 것도 다 주고 가야지” 하는 젓갈 할머니,
대학 교수들이 제자들의 장학금으로 내면서, 돈이 주는 “불편함 정리 했죠” “내가 잠시 관리했던 돈일 뿐” 라고, 말한 그 의젓한 모습들, 정말 존경 해본다. 많은 기업인들의 많은 돈으로 기부하는 기사를 볼 때 마다. 나는 큰 감동을 받고 박수를 보낸다.
나는 선행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고 존경한다. 잘살건 못살건 자기 나름대로의 행하는 진심어린 선행 말이다.
자랑하고 또 자랑해도 모자람으로 돌아오는 굳게 뭉쳐 선행을 하고 돌아간,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에게 백번 천 번이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댓글 '스승은 제자의 거울'이라 했지. 스승을 보고 제자는 자라니까. '스승이 훌륭해야 제자가 훌륭하다 ' 우리가 교직에 있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어 온 말일세. 자네의 훌륭한 교육과 지침을 받아 그런 훌륭한 제가가 태어난 거지. 새삼 자넬 존경하네!!!
스승과 門人, 한 해 가르쳐서 문인이 된다는 그 자체만도 자랑스럽거니와 70년 대그 어려운 새마을 시대의 사제지간의 끊어지지 않은 사연만도 평생 교단을 더럽힌 류진상이 또 한번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안동 영양 남씨의 선비정신이 남동완대에 와서 또한번 드러나는 듯합니다. 안동의 빛이요, 우리 안사11회 동기의 덕망이 드러남이리라.아름다운 삶의 드러남이라.자랑스럽도다.
감탄스러운 제자들 훌륭한 스승의 얼을 본 받은 것 정말 보기 어려운 선행 내 마음 뭉클함을 느끼고 칭찬의 박수 또 박수...... 미담으로만 묻어 둘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본다 권준현
대머리님, 돈키호테님, 준현님, 한해동안 과분한 격려의 말씀 준것 잘 간직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제자들에게 배우는 점은 말로표현 할 수없을 정도로 내 마음을 뜨겁게 할 때가 많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 더 많지요. 우리 이제는 건강이 제일입니다. 몇일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일주일 후에 나오는 결과를 기다리면서 초조해 집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없어서 5일동안 5~6시간씩 매일 산에만 다녔지요. 그러면 좀 마음이 안정되니까요. 의사 말 한마디에 우리들의 운명이 결졍되니까요. 다행이 좋다는 말을 듣고는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새해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의 마음 주고 받읍시다. 동몽이 드립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역시 스승이 훌륭하니 휼륭한 제자가 있는 것 아닌가? 부럽네
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글로 읽으니 더욱 실감이 나네. 그 선생에 그제자가 아닌가. 산 사나이 동몽을 예전에는 내가 미처 몰랐지. 만나고 볼수록 진국이야! 너무 산에 미치지 말게. 특히 겨울 산행은 조심해야해. 집도 가까운데 가끔 들려 차도 같이하고 그러세. 좋은 글도 계속 올려 주시게. 새해 더욱 알차고 보람되기를 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