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교수의 역사칼럼(72)
권중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二卵棄干城
달걀 두 개 때문에 간성을 버리네요.
나라는 사람에 의하여 움직이니 어떤 사람이 공직을 맡느냐가 바로 그 나라의 흥망성쇠에 관계되는 것은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공직자의 선정(選定)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근래에는 일정한 직위 이상의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되어 있다. 이것은 공직자의 능력을 점검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국회에서는 당연히 공직 후보자가 맡을 일과 그 사람의 능력을 세심히 검토하여야 한다. 그것이 중요해서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를 일반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생중계한다. 생중계되는 공직자에 오를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에게 질문하는 의원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다. 제대로 후보자의 능력을 검증할 질문을 하는지 아니지를 볼 수 있다.
이를 몇 번 보면서 문득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자사(子思)가 위군(衛君)에게 위(衛)나라를 지킬 장군으로 구변(苟變)을 천거했던 고사(故事)가 생각났다. 자사는 공자의 손자이고 학문적으로는 공자, 증자, 자사, 맹자로 이어지는 학통(學統)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국시대는 각국이 서로 먹느냐 먹히느냐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였고 그중에 특히 위(衛)는 나약한 소국(小國)이었으므로 어떤 장군을 채용하는가는 아주 중요하였다.
이 소국이 험한 시대를 견디려면 나라를 적으로부터 막고 지킬 간성(干城) 같은 장수가 필요하였다. 이때 자사가 위군(衛君) 신공(愼公)에게 구변을 추천하며 말하였다. ‘그의 재능은 500량(輛)의 전차를 관장할 수 있습니다.’ 전차(戰車) 5백 대를 지휘할 수 있는 장군이라면 요즈음 말로 하면 사단장을 넘어 군단장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는 말이다.
당연히 고맙다고 해야 하겠지만 위군은 ‘그가 그러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알겠지만 과거에 하급 관리였을 적에 백성의 달걀 두 개를 먹은 일이 있으니 채용할 수 없습니다.’ 위군은 대단히 꼼꼼하게 구변을 검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하급 관리 시절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백성의 달걀 두 개를 먹은 것을 찾아내고 이것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달걀 두 개는 그리 큰 재산은 아니지만 이를 부당하게 먹은 것은 분명 흠집이다. 작은 흠집이라도 없으면서 유능하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게 완벽한 사람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달걀 두 개 먹은 것을 혹 10배로 배상하게 하여 그 흠집을 가려 주고 장군으로 채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요즈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공직 후보자의 작은 흠집을 지적하면서 이런 흠집이 있으니 공직에 임명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을 볼 때 문득 위군 신공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역사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채용되는 것을 시기심으로 없는 흠집도 만들려는 경우도 있었다. 남송대에 있었던 사건이다. 남송이 몽고군에게 압박받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남송을 지탱하게 했던 장수 가운데 명장 조규(趙葵)가 있었다. 조규는 유능한 장군이기는 하지만 조정에 끈을 대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때 가사도(賈似道)가 재상으로 정사를 틀어쥐고 있었다. 사실 가사도도 악주(鄂州)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몽고군과 대치하였던 사람이다. 몽고군이 압박하더니 드디어 가사도가 책임지고 있는 악주를 포위하였다. 위기에 몰린 가사도는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몽고군에 사람을 보내어 많은 세폐를 줄 것을 약속하면서 화의(和議)를 제기하였다. 그런데 이 제의가 진행되기도 전에 운수가 좋았던지 몽고의 헌종이 죽는 바람에 몽고군은 포위를 풀고 떠났다.
남송으로서는 천행(天幸)이었는데, 가사도는 이를 마치 자기가 몽고군을 물리친 것처럼 보고서를 올리었다. 천운을 자기 능력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를 모르는 송의 이종(理宗)은 가사도를 재조(再造)의 공로를 세웠다고 추켜세우고 재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가사도는 속임수로 재상이 된 것이니 자기보다 공로가 많은 사람이면 시기하여 내쫓기 시작했다. 조규도 그 가운데 하나여서 바로 마광조(馬光祖)로 조규 대신하여 책임자로 삼았다.
마광조도 평소에 조규에 대하여 좋지 않은 생각을 가졌던 터라 이를 기회로 삼아 조규를 골탕 먹이려고 무엇인가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동원한 방법이 인수인계과정에서 관물(官物)을 철저히 검사하여 하나라도 잘못한 것을 찾아내려 했다. 그래서 조규의 행적을 이 잡듯 뒤졌지만 별다른 위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가 마지막에는 조규가 연등회 때 연등 비용을 지불한 것을 찾아냈다. 연등 다는 비용은 큰 공익(公益) 행사에 사용한 것이지만 군사용은 아니라는 이유로 문제 삼고, 이를 배상하도록 하였다. 시기가 만든 흠집이었다.
이 일의 처리를 맡은 왕립신(汪立信, 1201~1275)이 “바야흐로 간난(艱難)한 시기에 조공(趙公, 趙葵)은 업무에 다가가서는 근로하였지만, 그러나 공(公)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이를 주워 담으려고 합니다. 공이 어느 날 아침에 여기서 떠나면 뒤에 오는 사람이 다시 공이 한 짓을 본받는다면 좋겠습니까?” 너무 심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시기심에 불탄 마광조는 왕립신은 쫓겨났고, 사방득(謝枋得, 1226~1289)에게 맡겼다. 원래 사방득도 조규와는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사방득은 개인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선무(宣撫, 趙葵)에게 누가 되게 할 수 없다.”라고 자기 돈으로 일부를 메꾸고 모자라는 부분을 할 수 없자 재상인 가사도에게 편지를 썼다. “천금(千金)을 가지고 사목(徙木)할 사람을 모집하여 곧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의(信義)를 얻고 두 개의 달걀 때문에 간성(干城)을 버리는데 어찌 이웃 나라에 소문나게 할 수 있습니까!”
조규의 처리를 두고 전국시대에 상앙(商鞅)이 장대 하나를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기면 천금을 주겠다고 광고하면서 조정이 신뢰를 얻었다는 고사와 앞에서 말한 위군(衛君)이 구변을 채용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러한 엉터리 인사 검증을 경쟁국에서 안다면 얼마나 우리를 얕잡아 보이겠느냐는 말로 끝 내었다.
사방득의 말처럼 지금 우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문회를 이웃 나라가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걀 두 개의 흠집으로 장군감을 버리려는 모습이 중계방송으로 전파되니 그 질문의 수준이 얼굴을 화끈하게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작은 흠집을 찾는 위군과 시기 속에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흠집을 내려는 가사도와 마광조를 보는 듯하였다. 자사는 이런 못난 위군에게 사람을 채용할 때는 그 사람의 장점만 보아야 한다고 조용히 타 일렀고 사방득은 개인적으로 조규를 싫어해도 공정한 입장에서 대신 자기가 책임을 졌다. 국회의원에게 자사의 말을 들려줄 사람은 없는가? 사방득처럼 일을 처리할 사람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