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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백) 주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주님 성탄 대축일에 모든 사제는 세 대의 미사를 거행하거나 공동 집전할 수 있다. 다만 제때에 그 미사를 드려야 한다.>
참으로 기쁜 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의 군대와 함께 기뻐하며 노래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한 아기의 탄생으로 어둠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빛을 보게 된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음을 상기시킨다(제2독서). 마리아가 해산 날이 되어 아들을 낳자, 주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 아기는 구원자라 전하며 수많은 하늘의 군대와 함께 하느님께 찬미드린다(복음).
제1독서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9,1-6
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2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3 정녕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4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
5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6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공정과 정의로 그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켜 가리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2,11-14
사랑하는 그대여,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12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13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서 전체의 요약이라 하겠습니다. ‘로고스 찬가’로 알려진 이 서문은 창조 이전의 “한처음”(1,1.2)에서 시작하여 창조를 거쳐(1,3 참조) 여러 세기에 걸쳐 준비된 말씀의 육화 사건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4)라는 구절은 이 찬가의 핵심으로, 그리스 말을 그대로 옮기면 “말씀이 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살’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자 피조물로서의 특성을 가리키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교리에는 익숙하지만, 그분의 몸이 우리의 몸처럼 피로를 느끼고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죽을 몸이요 냄새가 날 수도 있고 더러워지기도 하는 살이라는 사실에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육화의 진실입니다.
육화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긍정이요 사랑 고백이라고 신학자 칼 라너는 말합니다. “‘영원이신 분’이 ‘시간’이 되셨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현실에 대한 마지막 설명이신 분이 육신이 되셨다. ……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지막 말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깊은 말씀을 세상에 보내셨다. …… 바로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오시면서 하시는 말씀, ‘세상아, 너를 사랑한다, 사람아, 너를 사랑한다. 바오로야, 데레사야,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하기에 너와 같이 되었다. 네가 되었다. 너의 그 비참함, …… 너의 죽을 운명까지도 나의 것으로 삼아 너와 일치되고 싶었다’”(『소 전례력, 기도의 길』, 15-16). 이는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을 담으면 성탄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한 형제가 산타복을 입고 나와 아이들을 위해 캐롤송도 불러주고, 작은 성탄 선물도 나눠주고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 가운데에는 한 살도 채 안 된 갓난아기도 있었는데, 따뜻하신 어머니 원장님께서 집중 마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포대기 위에 누워있었는데, 우리 형제의 재롱 잔치를 보고서는, 누워서 깔깔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다시 한번 하느님의 크신 자기 낮춤, 육화강생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는데, 백마를 탄 왕의 모습이라든지, 전지전능한 해결사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머리도 돌릴 힘도 없는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왕권은 힘이나 권력, 총이나 칼이 아니라 작음과 겸손, 희생과 헌신으로 완성될 것임을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에게 명명백백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성탄 미사를 드리러 온 아이들을 보면서 제 어린 시절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서울 근교 산 중턱 판자촌에 살았었는데, 함박눈을 맞으며, 어머니 손을 잡고 십리 길을 조심조심 걸어 성탄 밤미사를 드리러 가곤 했습니다.
성당은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니라 군용 천막이었습니다. 미사 시간 내내 너무나도 추워 코끝까지 다 시렸지만, 선교사 신부님의 미소와 넓은 품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끝나고 나면 선진국에서 보내준 구호품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꼬마입장에서는 꽤 벅찬 성탄 미사를 다녀오는 조건으로, 직장 일이 끝난 아버지는 양손 가득 성탄 선물로, 당시로서는 어린이들에게 최상의 선물이었던, 큼지막한 ‘오리온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오셨습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밤새 이 과자 저 과자 맛보면서 그렇게 성탄절을 만끽했습니다.
은총과 축복의 성탄 전야에 성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성탄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각자에게 건네시는 종합선물세트!’
완성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미완성인 우리들, 완벽을 추구하지만 늘 결핍된 존재인 우리들, 충족함과 충만함을 갈구하지만 늘 뭔가 허전하고 허탈한 우리들의 그 부족함과 한계를 가득 채워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값지고 정성스런 선물이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세상 가장 작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육화강생에 담긴 그 큰 은혜와 감동, 우리를 향한 큰 사랑과 깊은 의미를 침묵 속에 천천히 되새기는 이번 성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을 담으면 성탄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 내면에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주님 사랑의 기운이 있다면, 우리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정화될 때 성탄의 참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납니다. 매일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환하고 해맑게 웃으면, 우리 안에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한없이 겸손하신 하느님을 따라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갈 때, 우리는 거기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뵙게 될 것입니다.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신 아기 예수님을 따라 우리 매일의 삶 속에서 겸손의 향기가 풍겨날 때, 우리의 얼굴은 성탄의 은총으로 빛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봅니다.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먼저 자막으로 나오고, 조연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보조 출연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다음에는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와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조명, 미술, 의상, 카메라, 대본, 투자 기업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의 이름이 나옵니다. 한 송이 국화가 피기까지 소쩍새가 여름 내내 울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신축에도 많은 분이 함께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성당 마당의 보도블록에 함께 했던 분들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많은 분의 땀과 눈물이 모여서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에도 본당에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드러나 보이지만, 사목회와 많은 봉사자가 함께했기에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서는 성탄이 우연히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준비된 구원의 역사임을 보여 줍니다. 그 준비의 중심에는 이사야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 탄생 500년 전에 이미 임마누엘의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그 사자는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은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했습니다. 겸손과 순명의 길을 걸어 성탄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거닐 것이다.” 이는 자연 현상의 예언이 아니라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 참된 평등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상징적 메시지였습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언덕은 낮아지고, 굽은 길은 곧게 펴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오시는 세상에는 차별이 사라지고, 약한 이들이 높아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성탄의 길을 이어 준비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즈카리야에게 나타나 늙은 엘리사벳이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그 아이는 주님의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이 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도 나타나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고백하며 완전한 순명의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하려다가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선택했습니다. 예언이 있었고, 천사의 메시지가 있었으며, 마리아와 요셉의 순명이 있었습니다. 그 순명의 구유 위에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깨어서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고통과 절망, 아픔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깨달을 것입니다. “형제에게 한 일이 곧 하느님께 한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빛으로, 구원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깊고 길어도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믿음과 희망이 담겨 있는 성탄입니다. 그분께서 내 마음에 진리의 빛으로 머물러 계신다면, 그분께서 내 마음에 구원의 빛으로 오신다면 매일 매일이 바로 성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둠 속에 있다면, 내가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 1년 내내 12월 25일이라 해도 성탄은 그냥 지나가는 하루 일뿐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며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제자들의 체험입니다.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였고, 그들이 체험한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셨음을 말과 행동으로 증언하는 분들을 보곤 합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 친구가 오리를 가자고 하는데 십리를 가주는 사람,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 현실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분들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그분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말없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들이 이 땅에 다시금 찾아오는 동방박사들이고,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였던 목동들입니다.
주님의 성탄입니다. 지금 내가 고통 중에 있다면 그것을 주님께 봉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기쁨 중에 있다면 그것도 주님께 봉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성탄입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고, 부끄러움도 있고, 또 가슴 뿌듯한 일도 많을 겁니다. 주님의 성탄을 맞이해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을 마음 모아 축하하고, 그분의 삶을 본받도록 합시다.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s”
<아기 예수님께서 밥그릇에 누우시네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밥을 먹어야 살 텐데
밥이 있어야 먹지요
밥을 찾는 이 많아도
밥이 되려는 이 없어
텅 빈 밥그릇에
오늘밤
아기 예수님께서
포대기에 싸여
누우시네요
서른 세 해
믿음으로 뜸들어
믿음밥으로 먹히실
아기 예수님께서
서른 세 해
희망으로 뜸들어
희망밥으로 먹히실
아기 예수님께서
서른 세 해
사랑으로 뜸들어
사랑밥으로 먹히실
아기 예수님께서
애써 밥을 찾기보다
기꺼이 밥이 되려는
당신 닮은 사람들
자그마한 품에
누우시네요
믿는 벗님들께
희망하는 벗님들께
사랑하는 벗님들께
너무 기쁜 오늘이기를
너무 벅찬 오늘이기를
오늘의 성인
성녀 에우제니아(Eugenia)
활동년도 : +257년경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에우게니아
로마 순교록에는 분명하게 성녀 에우게니아(또는 에우제니아)가 기록되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불확실하고 로맨틱한 전설이 되어 전해온다. 이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의 백작 성 필리푸스(Philippus, 9월 13일)의 딸로 그녀의 부친은 로마 황제 콤모두스(Commodus)의 치하 때 이집트의 총독으로 활약하였다. 그녀는 남장을 하고 부친의 집을 빠져 나와서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주교이던 헬레누스(Helenus)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성녀 에우게니아는 그 이후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때까지도 남장을 하였기 때문에 수도원장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병을 간호하던 여인으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의 재판관이 바로 그녀의 부친이었다. 재판 중에 그녀는 자신이 여자이며 바로 재판관의 딸이란 사실을 밝혔다. 이때 그녀의 부친이 감동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성녀 에우게니아는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어머니인 클라우디아(Claudia)도 포함된다. 그 후 어머니를 따라 로마를 방문하였다가 그리스도인임을 공인하여 칼을 맞고 순교하였다.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
신분 :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 시르미움(Sirmium)
활동연도 : +340년경
같은이름 : 아나스따시아
판노니아(Pannonia) 시르미움(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 태생으로 알려진 성녀 아나스타시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아퀼레이아(Aquileia) 에서 시르미움으로 갔다가 붙잡혀 같은 해 12월 25일 팔마리아(Palmaria) 섬에서 참수당했고, 유해는 훗날 성당으로 바뀐 아폴로니아(Apollonia) 의 집에 안장되었다.
전설적인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 귀족 프로텍사투스(Praetexatus) 의 딸로서 이방인이던 푸빌리우스(Pubilius) 와 결혼 하였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페르시아 선교여행을 떠나 아퀼레아까지 갔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그녀 역시 체포되었다.
그녀는 배에 실려서 팔마리아 섬으로 끌려갔는데, 그 배에는 죄수들이 가득하여 괴롭힘을 당하다가 성녀 테오도타(Theodota) 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구출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5세기부터 로마에서 공경을 받고 있으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은 근거가 희박하다.
복자 야고포네 (Jacopone)
활동년도 : 1230-1306년
신분 : 수사, 시인
지역 : 토디(Todi).
같은 이름 : 야고뽀네, 자코포네
야고포네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토디의 베네데티(Benedetti) 가문에서 태어나 볼로냐(Bologna)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다. 1267년경에 그는 바나 디 귀도네(Vanna di Guidone)와 결혼하였으나 아내가 곧 타계하여 그들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 뜻하지 않은 이런 죽음이 그의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어 드러나는 통회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1278년에 토디에 있는 산포르투나토(San Fortunato) 수도원에 평수사로 입회하였는데, 그의 뛰어난 겸손이 크게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재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신앙적인 시와 찬미가를 썼는데, 몇 편은 라틴어이나 그 대부분은 움브리아 방언으로 서술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서민들 사이에서 널리 애송되었다. 또 수도원에서는 작은 형제회의 영적 형제들 그룹에 들었는데,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5세(Coelestinus V)는 이들에게 독립된 공동체 생활을 허용하고 또 초기의 엄격한 규율을 그대로 지키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이 영적 형제들 문제가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 결과 그는 거의 5년 동안이나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에 참으로 아름다운 시들을 썼다. 그의 대표작은 “십자가 곁에 서 계시는 고통의 성모”(Stabat Mater Dolorosa)이다. 1303년에 그가 석방되자 이번에는 오르비에토(Orvieto) 근교에서 은수자로 생활하다가, 콜라초네(Collazzone)에 있던 클라라 수도원으로 갔다. 그는 중세의 가장 이름 있던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진실한 의미에서 바보가 된 사람이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