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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레위기는 레위인들에 관한 책이다. 레위기를 히) "레비티쿠스"라고 부른다.
뜻은? "레위인에게 속한"
즉 레위기는 레위인들에게 속한 일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레위인들에게 속한 주된 임무가 제사를 수행하는 일이다.
이들 레위인들은 절기마다 시행되는 정기적인 제사뿐 아니라, 요청받은 개인적인 제사들까지 수행해야 했다.
그래서 레위기에는 각종 제사들이 소개된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5대 제사로 통칭되는 5가지의 제사형식이 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래서 레위기에서는 레위인들이 제사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규칙들을 소개한다.
오늘은 이 중 "소제"라는 제사 형식을 묵상한다.
소제라는 제사 형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본다.
1. 소제?(개념)
히) "민하"? "선물" "조공"이라는 의미.
조공? 종속국이 종주국에게 때에 맞춰 예물을 바치는 일을 말한다.
창 32:13) 야곱이 형 에서가 군사 400명을 이끌고 자신을 만나러 오는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그는 형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선물을 준비한다.
준비했던 선물이 "민하"였다.
"예물을 택하니"
1) 소제는 사람이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때마다 바치는 제사이다.
저는 우리가 우리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소제 같은 예배를 자주 드리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2) 곡식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 유일한 무혈제사이다(?)
다른 제사들은 짐승의 피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소제에는 피가 필요 없다.
"피 없이 드리는 제사"
그래서 소제를 하얀 제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제> "소" <하얀 소>이다.
예) "소복"? "하얗게 차려입은 옷"
곡식을 빻으면 곡식가루 색깔이 하얗다. 밀이나 쌀을 빻으면 가루색이 하얀색이 된다.
소제는 하얀 제사이다.
그리고 빻은 곡식가루를 감람기름으로 반죽한다. 다음으로 향을 주입한다(1)
곡식가루에 기름과 향이 첨가해서 소제의 제물로 만든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예배에도 기름이 들어가야 한다. 기름이란? "성령"을 상징한다.
성령이 활동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에게 성령이 움직이는 예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에도 향이 필요하다. 냄새가 나야 한다. 그리고 그 냄새가 향수처럼 퍼져야 한다.
우리 예배가 하나님의 냄새가 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한다.
2. 소제는 드리는 방식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편의상, 음식에 비유해서 설명을 드린다.
1) 밀 반죽을 화덕에 굽는다(4)
한국에서 화덕피자가 유행하고 있다. 요리사가 피자반죽을 화덕에 넣고 구워서 손님상에 내 보낸다.
인도 음식점에 가면 "난"이라는 밀가루 전병을 먹을 수 있다.
"난"은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서 구워낸 얇고 커다란 전병을 말한다.
<난>에 카레를 넣어 쌈을 싸서 먹거나 <난>을 카레에 찍어서 먹을 수 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다.
<난>과 아주 흡사한 전병이 바로 화덕에 구운 소제물이다.
2) 밀 반죽을 프라이팬에 굽는다(5)
겨울 대표 간식 중에 호떡이 있다.
기름 바른 철판에 밀가루 반죽을 구워서 만든 음식이다.
호떡 안에는 설탕이나 씨앗이 들어간다. 맛이 달콤하다.
이와 유사하다. 단지 다른 점은?
소제 제물안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설탕이 없는 호떡이 바로 프라이팬에 구운 소제물이다.
3) 밀 반죽을 냄비에 삶는다(7)
수제비를 연상하면 된다. 수제비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별미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을 준비한다.
그리고 냄비에 멸치와 야채로 만든 육수를 준비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서 끊는 냄비에 던져 넣는다.
아주 맛있는 수제비가 만들어진다.
수제비와 아주 흡사한 음식이 바로 냄비에 삶은 소제물이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조리도구에 따라 3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서 소제를 드릴 수 있었다.
형편과 처지에 맞추어 각자의 방식대로 소제를 드리면 된다.
화덕을 준비한 사람은 소제물을 화덕에 구웠고, 프라이팬이 있으면 프라이팬에 소제물을 구워도 된다.
그리고 냄비가 편한 사람은 냄비를 이용해서 소제를 준비해도 된다.
다양한 방식대로 각자가 받은 형편에 따라 제사를 드리면 된다.
우리도 그렇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면 된다.
물질이 풍성한 사람은 물질로, 시간이 있는 사람은 시간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육체가 있는 사람은 육체로 하나님께 헌신하면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질과 시간과 육체를 아끼지 마시라.
각자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성실하게 풍성하게 섬겨야 한다.
3.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 있다(11-13) 두 가지이다.
1) 밀 반죽에 누룩과 꿀을 넣으면 안 된다(11)
이유는? 누룩과 꿀은 반죽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누룩은 반죽 모양을 부풀게 만든다. 모양을 변질시킨다.
복어라는 바다고기가 적을 만나면 자신의 몸을 크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만든다. 크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꿀은 당분이기에 반죽의 성분을 발효시킨다. 발효는 일종의 부패 현상이다.
이렇게 누룩과 꿀은 반죽의 모양과 성분을 변질시킨다.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 밀반죽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우리도 누룩과 꿀을 버려야 한다.
예배의 본질을 부패시키는 습관이나 행위를 폐기해야만 한다.
누룩은? 허풍이나 과시하려는 습관을 상징한다.
꿀은? 달콤한 유혹을 상징한다.
성도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크게 보이기 위해서 허풍쟁이로 살아서는 안된다. "뻥 치지 마라"
그리고 과시해서도 안된다.
열등감을 가진 자들이 허풍이나 과시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반면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형편에 만족한다.
열등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큰 교회 거대한 장소를 선호한다.
자존감이 높은 성도들은 자신의 교회와 소유와 자신의 사람들을 자랑스러워한다.
성도는 자신의 누룩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꿀을 버려야 한다. 꿀은 달콤한 것을 상징하는 물질이다.
항상 유혹은 달콤하다.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식물 중에 <네페데스>라는 아름다운 식물이 있다.
조롱박처럼 특이하게 생긴 식물인데, 주로 곤충을 먹잇감으로 삼는 식충식물이라고 한다.
꽃의 입구 부분에 달콤한 꿀과 유사한 성분이 있답니다.
여기서 달콤한 냄새가 난답니다.
이 냄새를 맡고 곤충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곤충들이 그 꿀을 먹는 순간 꿀 속에 있는 마취성분으로 인해 곤충들이 기절을 한다고 한다.
이때 꽃잎은 입구를 닫아 버리고 독한 소화액을 내뿜어 곤충들을 녹여버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많은 곤충들이 냄새를 맡고는 꽃잎 입구에 쓰러져 있는 데도 다른 곤충들이 또 모여든다.
자신들은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명언 하나를 소개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라는 기독교 저술가의 말이다.
"다른 사람이 유혹을 받아 쓰러진 곳이면 당신도 그 자리에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우리로 쓰러지게 만드는 유혹들이 우리 주변애 허다하다.
그곳에 수많은 자들이 쓰러져 있다.
그런데도 또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자신은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우리에게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유혹의 장소를 무조건 피해야 한다.
예) 비싼 외제차, 주식, 가상화폐, 마약, 음란등..
그리고 누룩은 멋을 위한 것이고, 꿀은 맛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멋을 위하여 맛을 위하여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멋을 추구하고 맛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지 마라.
우리 인생의 목적이 멋있게 사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멋과 맛이 아니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부패해진다.
우리 인생에서 누룩과 꿀을 버려야 한다.
2) 반드시 소제물에는 소금을 넣어라(13)
소금은 반죽의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물질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소금은 꼭 필요한 물질이었다.
누룩과 꿀은 우리의 삶의 신선도를 변질시키지만,
소금은 우리의 삶의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우리의 가족과 자녀들이 소금 같은 존재들이 되기를 바란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소금이 되셔야 한다.
<화룡점정>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용을 그린 다음에 마지막으로 용의 눈을 그린다는 뜻을 가리키는 사자성어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처리하여 일을 끝내는 경우에 사용된다.
오늘 본문의 화룡점정 같은 말씀이 바로 13절이다. 다 같이 읽자.
하나님께서 용의 그림을 그리신 후 이제 용의 눈을 그리신다.
13절이다.
소제의 마지막 단계가 소금을 치는 것이다.(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소제에서 소금을 빼면 안 된다"
소금은 무엇을 상징하는 단어인가? "언약"을 상징. "언약의 소금"
성경에 총 3번 나온다. 레 2:13, 민 18:19, 대하 13:5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때 치는 소금"(공동번역본)
소금언약? 영원한 언약, 결코 파기될 수 없는 언약을 상징하는 용어이다.
고대 유목민들이 쌍방 간의 계약을 맺을 때 약속의 표시로 소금을 찍어 먹었다.
유목민들은 종이를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계약의 내용을 문서에 기록하지 못했다.
대신에 구두로 약속을 하고서는 계약 당사자 쌍방이 소금종지에 집게손가락을 넣고는 소금을 찍어 먹으므로 계약이 완성되었다고 알려던 것이다.
소금은 일종의 도장이나 사인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이 맺은 약속을 소금언약으로 표현했다.
소금의 항구성에 비견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소금 언약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약속을 의미.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론이다.
"우리 모든 인생에 소금을 쳐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소금이 필요하다.
소금이 필요 없는 인생은 없다.
소금이 필요 없는 영역도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소금이 필요하다.
그 소금이란? 하나님의 약속 즉 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의 인생에 소금을 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약속이 영원해진다.
설교시간은 우리 인생에 소금을 치는 시간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바치는 헌신에 소금을 뿌려야 한다.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 소금을 뿌려라.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소금을 뿌려라.
하나님은 미준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인생에 소금을 뿌릴 것을 부탁하신다.
모든 영역에 소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부부생활에 자녀교육에 직장생활에 소금을 뿌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 전부가 하나님께 바쳐질 만한 소제물이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