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소재에 대하여
-노천명
오늘 시에 관하는 과제를 찾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을 줄 안다, 우선 시를 어떻게 쓸 것이냐는 것도 대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여기서 시의 소재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시를 어떻게 좀 다르게 써 볼까, 말을 어떡하면 좀 더 영롱하게 매만져 볼까 하는 것보다도 오늘의 과제를 실로 시의 소재가 아닐까 한다. 즉 무엇을 쓸까, 시인은 과연 무엇을 노래해야 될 것인가?
여기에 앞서 잠깐 밝혀 놓고 지나가야 할 것은 시인이란 직(職)에 대한 일반의 개념의 시정이다. 시인이란 한가한 가운데서 시를 여기(餘技)로 주무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별유천지에 꿈을 꾸는 사람들도 아니다. 당나라의 이태백(李太白)이가 시를 쓰던 시절이나 우리 날에서도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오늘의 시인은 결코 특수 부락에서 호흡하는 별난 사람들도 아니며, 더우기 상아탑 속에서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시란 특수 유식층의 사치품도 아니요, 여기가 아니다. 시인은 마치 기계를 제작해 내는 직공과도 같은 것이며 직조 공장에서 비단을 짜내는 여공과 다름없는 인류 사회에서 시를 지어내는 하나의 직공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쓴다는 일은 결코 여기도, 취미사도 아닌 인생에 대한 준엄한 의무인 것이다.
구두를 닦는 소년이 손이 오리발처럼 얼어 가지고도 영하 15도의 혹한을 극복하며 결사적으로 구두를 닦아 내듯이, 시장기를 참아가며 때로는 가슴이 꽁꽁 얼어 들어오는 고독한 환경에서도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오늘의 시인의 임무며, 또 그래야만 할 줄 안다, 일찍이 시인은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국민의 선두에 서서 횃불을 들어 그 민족의 나갈 바 옳은 방향을 지시해 주는 예언자였던 것이다. 그 나라와 민족이 평화를 누리는 시대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한 민족 위에 어떤 무거운 운명이 드리워지고 시인이 숨을 함께 쉬어야 할 그 주의의 현실이라는 것이 불의와 탁한 기운으로 차 있을 때에는 더구나 시인은 횃불을 높이 들어 주어서 지쳐빠진 군중들로 하여금 발 밑이 어두워서 헛딛는 일이 없도록 해 줄 것이며, 그들의 귀에 희망과 격려를 불어 넣어 주어야 할 것이다.
자연 발생적인 영감이나 시신(詩神)에게서 시를 받아 오던 때는 이미 지났다. 오늘의 시인은 그 소재를 찾기 위해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겠다. 현실로부터 눈을 감고 나비처럼 피해선 안된다, 어디까지나 군중 속으로, 시민 속으로,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다. 그래서 골목 안 아주머니의 하찮은 넋두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악머구리 끓듯 하는 저 자유 시장 상인들의 비명도 들어 보는 게 좋으며, 때로는 정치가의 호화로움 속에 무겁게 자리한 고독한 얘기에도 귀를 빌어 주는 게 좋다. 그래서 그들의 고민과 의욕을 나타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때로 귀족적인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시를 아끼지도 않지만 보다 더 그 시는 서민들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할 줄 안다. 이러한 시의 지방이야말로 녹음이 우거진 시의 새 영토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말, 이 난숙한 근대 문명의 고개 마루에서 인간으로부터 출발한 근대 문명이 이미 인간을 무시할 지경에 이른 이 메카니즘 속에서 시인이 오늘,
간밤에 불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질거다.
아희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고야,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시가 특수한 유식층의 그야말로 하나의 여기로, 또 사치품같이 되어 있던 시대에는 시의 소재를 찾아서 시인이 동자에게 필낭을 메워 가지고 노새 위에 올라 명산대첩을 찾아 떠났던 것이지만, 오늘 한국의 시인은 저 남산 밑 월남 동포들의 판잣집이며 영천산(靈泉山) 꼭대기에 친 천막집 주변으로 가서 시의 소재를 찾아야 할 줄 안다.
우리 나라의 오늘의 현실은 이 나라의 시인들이 구름을 노래하고 꽃이나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대적인 이 격류 속에서도 언제까지나 시인은 가냘픈 내 노래만을 부르며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그보다는 우리의 노래, 이 민족의 노래를 불러 주어야 할 때인 줄 안다. 장편을 쓰는 소설가가 현지 답사를 하는 것처럼, 시인은 오늘 자연(紫煙)이 자욱해 눈을 뜰 수 없는 거리의 다방에서 일어나 나와 새로운 소재를 찾아 현지 답사를 떠나야 할 때다.
밖에서는 여물을 먹고 있는 소 입에 고드름이 달리는 판인데, 방 안에서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바깥이란 핀트가 맞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절박한 현실을 응시하며 풍자하면서 생활의 가능성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다방의 자욱한 연기 가운데 시인이 파묻혀 있는 한, 건전한 아름다운 시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필사하여 자료집에 옮긴글 / 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