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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9시.
자이푸르로 이동하기 위해 올드 델리 역으로 가는 길, 안내책자에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고 나왔지만 이곳의 교통사정을 믿을 수 없는 지라
두 시간 정도 넉넉하게 출발을 했다. 허술하게 보이는 외국 여행자들에게는
사정없이 바가지를 씌워버리는 릭샤왈라들과(릭샤운전사) 지루한 실갱이 끝에
두 배로 값을 치르고 겨우 출발한 길, 러시아워도 아니건만 세상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한데 뒤엉켜 도로는 간데없고 피난행렬만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 나라에는 자동차 시동과 함께 경적도 울려야 되나보다, 천지를 뒤흔드는 경적굉음과
함께 뭉게뭉게 피어나는 매연연기,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한 뼘도 안 되게 딱 붙어서
걸어가는 것 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결코 우리는 기차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네 명이 정원인 릭샤 한 대에 여섯명이나 끼어 타고 짐까지 구겨 넣으니 바깥으로 밀려난 내 오른쪽 팔꿈치는 옆에서 바짝 붙어 굴러 가는 거대한 고물 트럭 바퀴에 닿아서 함께 굴러 갔다. 비명을 지르는 나에게 베스트 드라이브(?) 소누는 노 프라블럼! 을 외쳤고
정말 기적처럼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2시간 걸려서 출발 10분 전에 우리는
올드델리 역에 도착했다. 나도 배운 대로 외쳤다. 앗 차 지!! very good!!
올드델리 스태이션!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짐을 이고 지고 그 많은 가족들을 다 데리고
어디로들 가는 걸까? 우리나라 공중전화 박스만한 크기의 태산같은 짐을
머리에 이고, 뼈와 가죽밖에 없는 작고 여윈 몸의 까만 포트왈라(짐꾼)들이
기차를 향해 죽기 살기로 뛰어가고, 작은 손가방까지 포트 목에 걸어주고 배가
남산만한 부자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그 뒤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불 보퉁이만한 짐을 머리에 이고 세간들을 넣은 가방은 오른손에, 남은 왼손에는
온통 눈밖에 안 보이는 팔뚝만한 아이까지 꿰차고도 비호처럼 달리는 인도아줌마,
어딜 가나 아줌마의 힘은 초인적이다. 발 디딜 틈 없는 그 바닥에서 보자기 하나
깔아놓고 멀쩡하게 잘 차려 입은 풍채 좋은 인도 부인은 아이까지 품에 안고
곯아 떨어져있다. 누가 머리카락을 밟고 가든 말든... 바로 옆에는 열살쯤 되보이는
귀엽게 생긴 소년이 마치 안방 침대인양 엎드려서 손가락까지 빨며 잠들어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은 모두 너무나 아무렇지 않고 평화로워 보였다.
pm 11:10 (TAN 9106) 열차에 승차하다. 침대차다, 널짝만한 판때기를 선반처럼 3층으로 천정 바로 밑까지 촘촘하게 올려진, 하여튼 침대차다, 하기야 한번타면 며칠씩 걸리기가
예사니만큼 그런 침대라도 없으면 뭔 수로 버티겠는가, 내 침대는 천정에 붙은 3층이다.
배낭은 쇠사슬로 침대 안전대에 칭칭 감아놓고 여권과 돈은 복대에 돌돌 말아 뱃속 깊숙이 야무지게 차고, 작은 가방은 누가 뺏을 새라 꽉 끌어안고 겨우 기어들어가 누웠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옛날 완행열차 타고 터널을 지날때 맡았던 바로 그 매케한
냄새와 눈에 보이는 자욱한 먼지, 몸을 익힐 것처럼 화끈거리는 열기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덮쳐왔다. 좀 지나니까 얼굴에 감각이 없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엎드려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웅크려 앉아도 봤지만 나는 기가 질렸다,
내일 아침까지 이렇게 가야한단다, 절대로 제시간에 움직이는 법이 없는 인도열차를
타고 말이다. 아무래도 미쳤지! 어쩌자고 내가 여기를 왜 왔던가!
내일 아침까지 살 수는 있을까, 눈이 쓰라려서 얼굴을 만져보니 콜타르를 바른 것처럼
찐득거리고 버석하다. 나는 그 화탕지옥에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바로 앞에 빤히 보이는
건너편 3층 칸의 외국청년은 코까지 골며 너무나 편하게 자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아무도 죽지않고 또랑또랑 살아서 웃고 떠들고 즐겁게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사람인데! 그렇다면 문제는 참을성 없는 내가 아닌가! 참 희안한 일이었다,
그 순간 화탕지옥이 서서히 물러가고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던
고통도 무감각해져 버리고 잠이 쏟아졌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내 감각을 지배하는 일체 모든 것들은 바로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그렇게 가부좌를 틀고 무릎관절을 혹사 시키면서도 깨닿지 못한 진리가
기냥 한방에 내 속으로 들어온 느낌! 아, 이거 괜찮다, 괜히 감격스러워 지려고 하면서
내가 뭐 된것 같은 느낌! 스승께서 보셨다면 또 욕을 바가지로 먹었겠지만...
드디어 날이 밝았다, 아침 8시 20분, 자이푸르 정션역 도착, 다시 길고 긴 행열을
넘고 넘어 역 광장에서 또 다시 릭샤 흥정 치르고 도착한 hotel 갤럭시, 프론트부터가
이상하게 깨끗하고 널찍하다, 2층 26호, 이게 왠 일일까! 넓고 깨끗한 침대, 욕실,
TV와 탁자, 유리컵도 있네. 고진감래라더니, 이런걸 두고 감동이라는 거구나!
완전 탈진, 완전 거지꼴이 된 나와 친구들은 그냥 욕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뻗었다.
5/(몇일인지도모르겠다) 여행 중 가장 비싸게 치른 숙박료, 또 언제 이런 호텔에서
호사를 누릴지 몰라 오전 내내 씻고 딍굴며 처음으로 푹 잤다. 짜이 한잔에 오이,
식빵 한쪽으로 점심 때우고 우리는 인도 영화를 보자고 합의를 봤다. 시장에서 300루삐
한도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이쁜 인도 옷들을 사서 한껏 멋을 내고 라지만드르 극장으로
가서 갱스트란 제목의 뮤직컬도 아닌 액션도 아닌, 맬로도 아닌 말도 뜻도, 장르도
알 수 없는 세 시간짜리 영화를 봐 내면서(?) 인도가 내게 요구하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심을 배우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신기했던 점은 그 영화가 서울에서
촬영되었다는거! 장면 중에 종로학원 건물이 나오고 건물 옥상에서 갱들이 격투를 벌리는데 그 옆에 참이슬 소주병이 나딍굴고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네용은 제쳐두고
우리는 그 장면 하나 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그 영화를 보려고 장장 두 시간을
줄서서 기다렸는데, 한 번 눈이 마주치면 절대로 포기하는 법없이 끝까지 뚫으져라 쳐다
보는 인도사람들, 우리도 외국인이라고 뭔 구경꺼리가 되는지 하나하나 모여 빤히
쳐다보기 시작하더니 좀 지나니까 아예 소대 중대쯤 되는 인파가 우리를 싸고 있었다.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데도 참 난감한 상황, 할 수없이 나도 그들 앞으로 가서 같이
빤히 마주 보니까 이제 말을 붙인다. 대화 할 용의야 얼마든지 있지만 서로 뭔 말인지
알아야제! 그들은 대부분 힌두어로 말하는데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뭔 수로..
피차 모르니 맘은 편하더만ㅋㅋㅋ
말은 서로 통하지 않지만 만국 공통어 웃음, 친절한 마음, 대충 그것이면 통했다.
나중에는 같이 사진 촬영도하고 같이 영화관에 들어갔다.
5/ 오전 8시 하와마할(바람의 궁전) 암베르 포트, (짬블게이트) 시장,
자이푸르 상징인 바람의 궁전, 바자르의 큰 거리와 마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테라스를 장식한 핑크색의 궁전! 이 도시는 1728년에 이 지방에서 세력을 떨친 왕
자이 싱 2세에 의해 세워졌기에 자이푸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이 시가지는 모든 집들과 건축물들이 핑크색으로 통일 되어있어서 시각적으로 화려해 보였다. 그림 같은 궁전의
동쪽은 바자르의 큰 거리와 마주하고 있다. 옛날 궁정의 여인들은 여기에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고한다.
맞은편 건물에서 구경하고 내려와 시장거리에서 옛날식 흑백사진 한판 찍었는데 영락없이 인도의 네루 수상처럼 멋있게 나왔다. 시장에서 망고와 미네랄워터를 사가지고 배낭에
넣고 암베르 산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다.
자이푸르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빨간 부겐빌리아가 양 옆으로 활짝 핀 아름다운 길을
버스로 달려 암베르 포트에 왔다. 주변의 도시들을 압도하듯 서 있는 언덕 위의 거대하고 장엄한 성, 건축 당시 16세기에는 이곳이 왕국의 수도였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알현광장 diwan Am이 나오고 본전은 그 오른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궁전의 내부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승리의문(mandri) 벽면과, 통로로 연결된 궁전의 건물마다 각기 다른 장식과
가하하적인 문양의 보석과 거울 장식들이 말 할 수 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본전을 지나 성곽 쪽의 미로 같은 길을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화려한 장식을 한 코끼리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너무 덥고 힘들어서 나도 타고
싶었지만 요금이 비싸서 그만 두었다.
타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과 대리석바닥이 뿜어내는 지열에 전신이 익는 듯 했지만
델리에서 구입한 빨간색 사리로 온몸을 휘두르고 그 높은 성 전체를 타는 갈증과 현기증을 견디며 알뜰하게 다 돌아보았다, 내 평생에 언제 다시 와보겠는가,
오후에 다시 하와마할로 나와 환전도하고, 모슬램이 한다는 유명하고 소문난 탄두리치킨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시켰는데 또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너무나 허기가 져서
인내심의 한계가 드러나 욕이 나올려고 할 때쯤에야 우리가 시킨 탄두리치킨이 나왔다.
아! 나도 이렇게 동물적인 식욕으로 음식을 먹는구나, 너무나 적나라한 내 모습에
놀라워하면서 닭 한 마리와 단백하고 고소한 로띠(흙벽에구운밀떡)두 접시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아쉬운 것은 너무 정신없이 먹느라고 미처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한 마리 더 먹을 수도 있었는데 젊은 애들 보기 창피해서 그만 두었다,
닭 한마리래야 겨우 약 병아리 만해서 먹을 것도 없더만, 전투적인(?)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 과일 시장에서 열대과일 몇 가지 사서 호텔로 돌아와서 또 목욕하고 모여서
과일을 먹었는데 망고를 제외한 모든 과일 맛이 뭐랄까! 뭔가 2프로 부족한 것 같은
그야말로 좀 우유부단한 맛이다. 달고 시원한 우리 수박, 참외 자두 포도 사과...끝없이
떠오르는 먹고 싶은 우리과일들.........
인도에 와서 가장 많이 먹는 건 단연 미네럴워터와 라시,(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요플레)
하루 최소 여섯 병 이상 생수와 음료수를 마셔대도 소변이 안 나온다.
온 몸의 수분은 전부 땀과 열로 다 빠져나가나 보다, 그리고 정말 맛있고 영양 많은 라시와 짜이, 특히 짜이는 우유와 버터로 끓인 차인데 값싸고 정감 있는 맛으로 인도인들이 종일 입에 달고 사는 차다, 어딜 가나 짜이! 짜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5/ 잔다라 만다라(천문대) 씨리 펠리스, 라지만드르 거리, 맥도날드, 유명한 라시집,
정말 맛있었다. 한 번에 네 컵이나 사먹었다.
히말라야 화장품 (썬크림 스킨, 로션등 히말라야 화장품은 값싸고 품질이 좋아서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음)
지출: 호텔비/430Rs(세명나누어서) 식사 및 생수/250Rs
입장료/60Rs(잔다라만다라천문대)
화장품/242Rs 교통비/150Rs 과일/50Rs
total/1082Rs 잔액/323Rs
환전:100불/4430Rs 총잔액:44653Rs
오전에 다 돌아보고 마두라스 카페에서 야채버거와 콜라 한 병으로 점심을 먹고
자이푸르 정션역으로 이동, 오후 2시30분 아그라행 열차에 오르다, 다행히 좌석을
잡아 친구들 모두 앉기는 했지만 곧바로 무차별적으로 가격해오는 지독한 열기와
작은 틈만 보여도 엉덩이를 들이 밀고 비집고 앉는 인도사람들, 한 역에 도착만 하면
도대체 출발할 생각을 않는 죽이고 싶은(?) 기차와 창 밖에 한번 붙었다하면 기차가
속력을 낼 때까지 딱 달라붙어 떨어 질줄 모르는 어린 거지아이들,
어느 역에서 모르고 한 아이에게 10루피짜리 하나를 주었는데 1분도 안돼서 일개
소대가 몰려와서 와글와글 들어붙는데 어~메 어째야 쓰 까!! 가도 가도 끝없이
메마른 풍경, 사막이 가까워선지 간혹 낙타 떼와 너무 말라서 갈비뼈가 키타 줄처럼
드러난 소들과 염소들, 토기로 만든 물동이를 이고 어디론가 물을 길러 가는
여인들의 긴 행렬이 그나마 눈에 보이는 풍경이다.
그들의 가난하고 피폐한 생활은 뒤로하고라도 원색의 사리를 날리며 열을 지어
걸어가는 여인들의 그 풍경은 애잔하고 아름다웠다. 간간히 작대기 몇 개 세워놓고
넝마 같은 누더기로 얼기설기 씌어놓은 폐허처럼 보이는 마을에 배고픈 아이들이
앉아 있고 그 뒤로 붉은 해가 모래사막을 넘어가고 있었다. 옛날 우리나라 완행열차같은
로컬 기차는 좌석이 나무의자처럼 딱딱하고 세 명씩 앉는 자리인데 인도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들어 갈 틈만 보여도 그냥 궁댕이를 디밀고 앉는다. 좌석 값을 치르고 앉은
우리 자리에도 룻따라는 아자씨가 처음에는 눈치를 좀 보면서 조심스럽게 살찐 히프를
살짝 걸치더니 나중에는 아예 우리 팔걸이를 다 차지하고 자기가 자리 주인인양
온갖 질문에 온갖 간섭, 찐득이처럼 딱 달라붙어 인도사람 특유의 호기심을
다 충족시키면서 거의 10시간을 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싫은 내색도 소용없고
자는 척 하다 눈을 뜨면 기다렸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또 시작 하는 것이다.
말문을 열기 무섭게 옆에 빽빽하게 서있는 인도 사람들이 다 우리자리로 모여서
함께 떠들어댄다. 나는 울고 싶은 차원을 넘어 거의 죽고 싶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우리들은 그 고문의 현장을 벗어 날수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도착해서 내릴 준비하는데
자기들도 아끼는 달디단 과자와 꼬질한 과일들을 기어이 손에 쥐어 주는 게 아닌가,
정말 못 말리는 다정이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은 그 징그러운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섭섭했다는 것이다. 3시 20분에 도착한 아그라 포트역, 미처 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컥! 하고 숨이 막히는 열기와 릭샤왈라들과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르고 그야말로 반은
녹아서 찾아온 게스트하우스는 정전이었다.
잠시 조는 사이에 나는 내 땀에 빠져 죽는 악몽을 꾸면서 괴롭게 눈을 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상하게 기록 노트를 다시 읽어보니
그 곳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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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막내아우님 덕분에 인도 관광을 지디로 허요! 어찌 그리 상황묘사며 표현이 뛰어날까?
오늘의 단어" 노 프라블럼"
기록노트를 다시 꺼내서 읽어보니 훨씬 더 제 감정상태가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많이 순화를 시켰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눈알이 빠져도 그만하기 다행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 곳 사람들이 그렇더라구요.
어떤 문제도 "노 프라블럼!" ^^ㅋㅋㅋㅋㅋ
산자야님 다음에 뵈면 인도이야길 육성으로 듣고 싶네요. 주님을 모시며...^^ 너무나 감사해요.
난 언제나 인도에 갈 용기가 날까나?^^
까이꺼 대~충 뭐 뱅기표 끊어갔꼬 영어 하나도 못하는 산자야도 갔다왔는데 뭐~~
마리님이 모시는 주님이 그 주님이겠죠! 제가 바로 프로급 제조상궁이잖아요!ㅎㅎㅎㅎㅎㅎ
우와! 어떻게 읽었는지도 모르게 읽어버렸네요. 마치 제가 간 것 같은 기분이... 땀에 빠져죽는 꿈! ㅎㅎㅎ 넘 잼있었습니다.
이렇게 읽으니까 그냥 재미있는것 같은데 그때는 참 중간에 올 수도 없고 그런 생고생이 없었죠.
와! 이런 코너가 있었군요
감사!
근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올리시는것 같아 좀 숨이 찹니다 ^^
좋은 글 천천히,자근자근,오래오래 읽고 싶습니다. ㅎㅎ
ㅎㅎㅎ그렇기도 하군요. 좀 줄여 올리겠습니다.
안됩니다...안됩니다...저 눈빠집니다...ㅋㅋ
몇년전에 사진하는 동생들이 인도를 간다고 ,저를 같이가자 꼬드겼는데요
갈까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집안에 일이 생겨 못갔는데,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참을성도 마이 부족하고,더위에 취약한 체질이라~~ 참! 대단하십니다 형님!
저는 최고로 더울때 가서 그렇지 겨울에 가면 괜찮답니다.^^
인도는 넓은 나라라 만년설에서 밀림 양탄자가 깔린 상하의 지역까지 상시 공존합니다.
여름에는 카시미리나 히마찰 프레데시주, 레(라다크)를, 겨울에는 고아나 께랄라, 타밀나두주를 여행하시면 됩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심기일전 하여 가봐야겟는걸요~~
리얼감이 당대 최고의 입담 입니다 ^*^__________
산자야님의 멋진 여행기를 읽으며 저 또한 지금은 가물가물한 맨처음 인도여행의 추억이 되살아 나는군요.
제게는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자신도 모르게 사랑으로 변해버린 곳, 그곳이 인도였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 기다립니다.
선생님 앞에서 이런 일기 나부랭이를 올린다는게 영 부끄럽습니다.
그냥 일기장 정리하는 마음으로 꺼적스려보는 것이니까 이해바랍니다.
감히...꿈도 못 꾸어볼...인도여행...(전 정말 자신없습니다....ㅠ.ㅠ)
이렇게 생생하게 글로 읽고 눈으로 보는 인도여행에 밤잠도 안자고 이렇게 빠져있습니다...^^*
오늘밤 꿈엔 인도인들이 제눈앞에 바짝 다가와 괴롭히는 악몽을 꾸게 될지도...ㅎㅎㅎ
넘 생생합니다...^^*
넘 재미있습니다~~
재미로만 보면 안되는데...말이죠/??^^
배울것들은 이담에 뵙는 날이 온다면 하나하나 배우겠습니다...^^*
나은님,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냥 좀처럼 철이 안들어 애들처럼 사고를 잘치는 편인데 그런것들이
남보기에 재미있게도 보이고 별나게 보일뿐입니다. 우리 부모님께는 얼마나 애물단지였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
중 고딩 시절 친구들의 앙케이트 중 가고 싶은 나라는? 질문에 그저 막연히 인도라고 적었던 날들이 생각 나네요.
염색 공부를 하면서 색감 풍부한 그 나라를 더욱 동경하고, 죽을 것 같은 열병에 헤매던날 가방을 꾸리던 날 보시며
니 꼬라지에 그 나라를 어찌 견딜까 하신 어느 선배님의 말씀도 생각나는 아침 입니다.
모두 잠든 새벽 약식 선물 꺼리 준비 해 놓고 들어와 이렇게 생생한 글을 읽으니 그냥 기분이 업 되며 금방 봄이라도 오는듯 가벼워 지는 이 기분... 감사 감사 합니다.
그 고운 손길로 마음으로 그 맛있고 예쁜 약식 선물꾸러미를 만들었단 말이지요.
그려지는군요 이슬비선생님!
70년대 중반 여름철에 한달동안 전국 무전여행을 허고 댕기던 생각이 나네요..
나야 말이 통허고 날씨도 이 정도는 아니었씅깨 상구 술허개 댕기기는 했것제마는 에린 나이에 젺끈 여행은 평생을 살아 가는디 큰 심이 되더만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크기는 허제마는 인자 나설 처지가 아니라서 이 글 봄서 대리만족이라도 해서 반갑네요...
대단허그만요... ^^
그 가난하던 격동기에 무전여행을 하셨군요. 지금은 어림도 없지요.
넘 늦게 들어와 읽은 사실이 미안하고,
글 솜씨에 놀라고,
그 끼와 열정을 어느곳에 쏟아낼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막내아우님~~~~~~
산자야님 꼭 여행기 출판하세요. 다만 100부라도 출판해서 우리까페 사람들한테 팔아도 될것같아요.ㅋㅋ
저는 살래요.
너무 재미있게 글을 잘 쓰시는 거 같아요.
촌철살인(? 뭔 뜻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왠지 산자야님 글에 어울릴 것같아요. ㅋㅋ)이시네요.
너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ㅎㅎㅎㅎ그냥 일기장 같은거예요. 고마워요 재미있게 읽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