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마다의 추억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듯
추억에 남는 영화가 꼭 명작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1984년 개봉된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처럼.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Streets Of Fire)>
감독 월터 힐
주연 다이안 레인, 마이클 파레
국내 개봉 1984년 12월 15일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0년대의 버지니아에서 록그룹 리드보컬로 있는 엘렌(다이안 레인)이 공연 도중 광팬 폭주족 두목(윌렘 다포)에게 납치를 당하고, 엘렌의 옛 남자(마이클 파레)가 괴짜 동료 멕코이(에이미 마디간)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구출하고, 두 남자의 결투가 벌어지고, 할 일을 마친 남자가 홀연히 떠나고... 끝이다.
이 간단한 줄거리의 복잡하지 않고 복선도 없는 심플한 영화가 오래토록 기억에 남은 것은 ‘애비는 종이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가 아니고 9할이 여자 주인공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강렬한 선홍빛 스키니를 입고 무대로 뛰어 나오는 여주. 쫄쫄이로 드러날 수줍은 여체의 곡선을 일부 감추려는 듯 대각선으로 검정 덧옷을 걸치고, 검정 토시&장갑을 장착했지만 더욱 도드라지는 섹시-미.
출렁이는 금발의 풋풋 19세. 아~ 그녀의 이름은 다이안 레인.
65년생, 나와 동갑이다. 영화가 개봉된 1984년 막 고딩 딱지를 뗀 내가 강의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어쭙잖은 대학생 역할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금발을 찰랑거리며 오만 놈팡이의 연인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치명적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이크를 때려 부수고 싶을 만큼.
“달링~ 달링~ 목적 없이 가는 게 나쁜 건 아냐. 하지만 좀 더 빨리 가야 해...”
파워풀한 보이스의 미녀 보컬이 악당 어깨만큼 벌린 쩍벌 자세로 허벅지 떨기 스웩까지 시전하면, 영화 안팎의 오만 놈팡이가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OST의 제목은 ‘Nowhere Fast’.
https://www.youtube.com/watch?v=ClnN_s2VGV0
스타인먼(Jim Steinman)이 작곡했고, 그룹 Fire Inc가 불렀다. 영화 속 노래의 실제 목소리는 리드보컬 Laurie Sargent.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폭주족 악당들이 등장하고, 남주의 장총이 불을 뿜고, 오토바이가 화염에 휩싸이고, 남주와 악당 두목 간의 결투가 진행되고... 교차 편집이 열일을 한다.
김우빈 삼촌을 닮은 악당 두목이 쓰러지고, 마지막 키스 후 남주가 공연장을 떠나면 여주는 등 파인 올-레드 드레스 차림으로 다시 노랠 부른다.
“I've got a dream 'bout an angel on the beach and the perfect waves are starting to come. His hair is flying out in ribbons of gold and his touch has got the power to stun...”
여주의 노래 ‘Tonight Is What It Means to be Young’을 배경으로 전우(?) 멕코이의 차에 오른 남주가 멀어져 가면 엔딩 자막이 올라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ISlwbueDJ58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지랄탄이 터지던 1984년.
그해 겨울에 만난 다이안 레인은 팍팍한 가슴에 (비록 93분이나마) 모든 걸 잊고 노래에,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게 해주었다. 비록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난도질을 당했지만, 그 당시 받았던 짧은 망각의 위로만으로도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는 내게 추억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