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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5
이렇게 준비하라 / 고신일 목사
<목회기도>
생명주신 하나님!
우리를 살게 하신 것만도 감사한 데 예수 믿게 하시고
기둥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허물, 이런 저런 더러움을 지닌 채 왔습니다. 회개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세상에 살며 지친 채 왔습니다. 새 힘을 주시옵소서.
이런 저런 일로 상한 마음 가지고 왔습니다. 위로와 평안을 주시옵소서.
의심과 불평이 속 깊은 곳에 있습니다.
확신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변화되기 원합니다.
차가운 세상에 따뜻함을 주며 살기 원하고, 어두운 세상에 밝음을 주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꺼져 가는 불도 끄지 않으심 믿습니다.
우리의 불이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군대, 객지, 외국에 있는 성도들, 병상의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들도 하루 속히 우리와 함께 기쁨과 감사로 이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을 세우신 하나님, 붙드시기 원합니다.
능력의 말씀, 치료의 말씀 전하게 하셔서
변화되고 치료받는 성도들의 간증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모이는 시설에 계신 분들 중에 우리 기둥교회 예배실황에 인터넷으로 접속하여 환우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실황을 다운받아서 예배드리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도서 9장 4절에 "…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살아 있다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죽고 싶다는 소리, 함부로 하지 마세요.
살려주셨으니 감사입니다. 살았으니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두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져야 하는 무거운 짐, 내가 흘리는 땀, 내가 내쉬는 한 숨…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찬양할 때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라고 찬양만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계신 지 알 수 없을 때도 하나님의 뜻 안에 내가 있음을 믿는다면 평안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마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살이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세상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 중에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초라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고 한심해 보이고 더 심해지면 추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언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일까요?
돈 없을 때? / 배고플 때? / 실패했을 때? 아플 때? / 힘없을 때(허약할 때)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볼품 없을 때, 초라해 보일 때는 기도하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하여 감사하지 못하며 불평하고 원망하고…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적인 힘이 발산되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면 마귀도 우습게 보고 갖고 놀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마귀가 안심하고 틈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역사하면 돈 없어도, 힘없어도, 권세나 명예가 없어도… 마귀가 감히 틈타지 못합니다.
적들도 무서워 벌벌 떨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마귀가 틈타지 않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상식 속에 갇혀 계시지 않는 분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의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상식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상식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상식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머리로 이해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머리에 집어넣을 만큼 작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머리로 이해되고, 머리로 판단되고, 가슴으로 품을 정도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정도라면 왜 믿습니까! 그냥 사귀면 되고 친구하면 되지요.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려하지 말고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이 시대에/상황에 우리들의 삶에 맞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상식에 벗어나는 것 같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믿는다면 다 해결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는 말씀을 믿으십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계십니까?
우리가 매 주일 고백하는 신앙의 표현 [사도신경]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입니다.
이 고백이 분명하다면 모든 성경 말씀,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다 믿는 다는 것이고,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못 믿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이집트에서 나와 40년 만에 요단강을 건너 길갈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식을 초월한 체험을 한 사람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맥(밀과 보리)을 거두는 추수 때 요단강 물이 많아 넘칠 때(수3:15)…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단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흐르는 요단강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강에 들어서자 40년 전에 홍해가 갈라지듯이 물이 갈라져 길을 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신기한 댐을 요단강에 만드셨습니다.
요단강이 갈라진 것은, 부모를 통해 귀로만 전해 듣던 이스라엘 신세대들이 홍해가 어떻게 갈라졌을 지를 상상하게/이해하게 했습니다.
출애굽해서 태어난 사람들, 나이 40정도 된 사람들까지는 홍해의 기적을 부모를 통해서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요단강을 건넘으로 부모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바다가 갈라진 뒤에 물에 들어갔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는 물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들어서면 물이 갈라질 줄을 믿고 들어섰습니다.
바다 물이 갈라져 벽을 이루고 있는 사이를 들어서 건너는 것도 모험이라 믿음이 필요한 것이지만, 물이 많아 둑에 넘칠 만큼 흐르는 강물이 갈라질 줄 믿고 물이 멈추게 될 줄 믿고… 들어서는 것은 더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입으로 표현되고 가슴에 담긴 믿음의 확신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 그것이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신앙에는/신앙생활에는 세상적인 표현으로 '저지르는 모험'이 요구됩니다.
들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어리석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철저하게 믿고 순종하면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세요. 가나안 땅의 왕들과 군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건넌 사건을 듣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1절 말씀에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더라" (수5:1) 했습니다.
1절 말씀대로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그곳을 정복해야 하는 이스라엘은 무기들을 점검하고 군사들의 전열을 정비해서 바로 공격하면 쉽게 이기고 약속의 땅을 점령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할례를 행하라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또 한번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수5:2)
- 부싯돌은 석영(石英)이라고 말하며 차돌의 일종입니다.
단단하여 강철로 치면 불이 잘 일어나는 돌입니다.
부싯돌이 잘려진 표면은 칼날처럼 날카롭습니다.
- 할례는 남성 성기 끝의 포피/껍질 끝을 잘라 버리는 의식을 말합니다.(창17:11)
요즘 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포경수술'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선택되어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약속의 상징이었습니다(창17:10~14).
이스라엘 남자는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의식은 아버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창17:23), 경우에 따라서는 어머니도 행했고, 후대에 와서는 의학적인 훈련을 받은 '모헬(Mohel)'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누가복음 2장 21절에 보면 예수님도 이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할례는 선민의 증표인 동시에 민족적 우월감과 자부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사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며 도전해 왔을 때, 다윗은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는 모욕하겠느냐'(삼상17:26)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이 할례도 못 받은 것들아, 너희들이 무엇인데 사시는 하나님의 군사들을 모욕하느냐, 우리는 할례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실 할례는 이스라엘만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이방 민족들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성인의식으로 행하거나 위생상의 이유로 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징하는 특별한 표지(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귀한 의식이라도 나은 지 8일만에 하는 것이 보통인데… 지금껏 광야생활 40여 년 동안 하지 않다가 가나안 정복의 첫 관문인 여리고성 공격을 앞두고 할례를 받지 않은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막 요단강을 건넌 이 사람들은 요즘 말로 하면 이스라엘의 신세대들입니다.
이집트 땅을 탈출했던 구세대들은 한달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약속의 땅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광야생활 40년 동안 다 죽어 갔습니다.
물론 구세대들은 이집트 땅에 살 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들은 할례를 받지 못한 채 가나안 땅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치루게 될텐데…
하나님께서는 전쟁 무기를 점검하거나 전략 전술을 짜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의식을 가지라고 명하셨는데 그 의식이 할례였습니다.
물론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할례를 행하면 회복하는데 최소한 며칠이 걸립니다.
며칠 동안은 행동이 부자유스럽고 힘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행하라니요!
스스로 죽기를 자처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포기하는 것 같은 무모한 행동입니다.
이런 때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군사 훈련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하나님은 군사 훈련보다/전쟁 수행 능력보다 믿음이, 믿음의 순종이 더 귀한 전쟁 준비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무모해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우리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담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상황은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긴 것입니다.
가나안에 살던 사람들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나니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힘이 세고 무서워서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머무를 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더니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키가 큰 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메뚜기처럼 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막에서 먹었던 음식이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먹는 음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작아서인지 아무튼 이스라엘 사람들은 작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덩치가 커서 무서워했겠습니까?
전쟁을 잘 해서 무서워했겠습니까? 왜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신 것을 들었고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신 것을 들었고 요단강을 가르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 요단도 건넜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인생 한 사람 한 사람도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는 것과 순종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수아가 로봇입니까?
입력된 대로,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순종기계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전쟁을 앞두고 철든 남자들이…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할례를 행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사람의 상식과 이해, 비교와 판단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내 경험, 내 상식, 내 지혜, 세상 기준… 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멕시코의 Tzeltal(첼탈)이라는 민족의 언어는 '순종과 믿는 것'/'믿는 것과 순종'이 한 단어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은 우리 신체의 일부인 눈(目)과 겨울에 내리는 눈(雪)이 있고, 밤은 어두운 밤(夜)과 먹는 밤이 있고,
배는 과일의 배와 타는 배(船) …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단어인데 뜻이 다른 '동형이의어'가 있듯이 첼탈 민족의 언어는 '순종과 믿는 것'이 한 단어입니다.
믿으면 순종하게 되고 순종하면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치 않는 것은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헤세드 종합자료 시리즈 V 129p.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물론 요즘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믿는 자의 표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세례가 있습니다.
세례는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들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 세례는 우리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사람이 탄생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갈 2:20)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공개된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받고,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고 받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천국백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라고 드러내는 의식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는 하나님이 우리의/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증거하는 표시를 우리 몸에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받은 사람을 성도(聖徒 - 구별된 백성)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세례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적들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전쟁을 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며칠 동안 거동이 불편해야 할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을 하나님이 내리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살이가 전쟁과 같습니다.
큰 전쟁을 치르고 점령해야 할 여리고성 같은 것들이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신앙생활 중에도… 이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면 상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해 불순종하면 벌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잘라 낼 것을 잘라내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시가, 흔적이 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1974년도에 군대에 갔습니다.
훈련을 다 받고 나니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빡빡 깎았던 머리가 조금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제 좀 사람같이 머리를 깎나했더니 이상한 스타일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앞부분에만 머리를 조금 남기고 나머지는 다 깎는 것인데 그것이 해병대의 '상륙돌격형 머리'입니다.
그런데 요즘 해병대도 그렇게 깎습니다. 그래서 해병대는 사복을 입고 다녀도 표가 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남과 다르게 표가 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구별된 사람이다'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적 전쟁 준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지만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결국은 이기게 하시고 승리를 간증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 드렸지만 제 가슴에 크게 남아 있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2000년도에 암스테르담에 가서 영국인 '클리프 리챠드'(Cliff Ricahrd)라는 가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1960~70년대에 최고의 인기가수였습니다.
이 사람이 간증을 하는데 자기는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변함 없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 삶에 대해서 후회도 없고 너무나도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두 가지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인데 하나는 "give up(포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 시간에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하라고 요청하면 그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 것은 다 돈과 자신의 유익과 연결되어 있었던 일인데, 그런 것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우선권(priority),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우선이었지만 예수 믿고 나니 모든 것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위해서 순서를 정하는 일,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며 어떤 것을 나중에 할 것인지,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지 못해서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라고 인사하고 승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원하는 싸움 앞에서 먼저 할 것은 순종에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가 있어야…, 흔적이 있어야… 드러남이 있어야 합니다.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성을 정복하게 하소서' 하기 전에 싸울 준비를 바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것이라'는 말은 '너는 내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너는 내 것이니 누구도 너를 함부로 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내 것에는 표가 있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과 혼동되지 않도록 표시를 합니다. 이름 붙여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기 때문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사43:1~5)
하나님께서 여리고 점령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내 것이라고 하는 표시를 먼저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지금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명령, 그 명령을 받고 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에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 힘이 들고 어려워도 순종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승리해야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 승리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박수 치는 자가 아니라 내가 되어 내 승리를 간증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구별된 삶을 원하시며 구별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며 명령하셨던 하나님,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니
우리도 순종에 승리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평생의 삶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