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물’ 자주 복용하는 노인, 치매 위험 79% ↑ (연구)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수면제를 자주 복용하는 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알츠하이머병 저널(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발표된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D)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가 1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수면제를 자주 사용하는 백인 노인이 치매에 걸릴 위험이 79%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코메디닷컴
연구진은 ‘자주’ 또는 ‘거의 항상’ 수면보조제를 복용했다고 밝힌 노년층 백인 성인들이 ‘절대’ 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79% 더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연관성은 흑인이 아닌 백인 성인들 사이에서만 보였다.
논문의 제1저자인 유에 렁 UCSF 교수(정신행동과학)는 “수면제 자체가 노인들의 인지에 해로운지 혹은 수면제의 잦은 사용이 치매 위험 증가와 관련된 다른 것의 지표인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논문을 검토한 알츠하이머협회의 과학적 참여 책임자인 퍼시 그리핀도 “관찰 연구는 약물 습관과 같은 수정 가능한 위험 요소“와 치매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시켜줄 뿐 인과관계까지 밝혀낸 것은 아니라며 ”아직은 경종을 울릴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1997년부터 70~79세 노인 약 3000명을 모집해 수면제 사용 패턴과 치매의 연관성을 15년 간 추적 조사했다. 연구에 참가할 당시 치매에 걸린 사람은 없었으며 모두 미국의 멤피스나 피츠버그 거주자로 10명 중 6명은 백인, 4명은 흑인이었다.
연구진은 5년마다 한 번씩 모두 3차례 수면제를 얼마나 자주 먹는지를 물었다. 전혀 먹지 않는다, 드물게(한 달에 한 번), 가끔(한 달에 2~4번), 자주(한 달에 5~15번), 거의 항상(한 달에 16~30번)의 객관식으로 답하게 했다. 또 참가자들은 수면의 질에 대한 문의에도 답했다. 자주 잠이 들거나 너무 일찍 일어나는 현상과 얼마나 씨름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일상적인 수면 시간도 기록됐다.
수면 보조제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과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을 모두 포함했다. 처방전 없이 구입가능한 수면제로는 항히스타민제, 멜라토닌, 발레리안이 있다. 처방약으로는 항우울제, 항정신병 약물, 신경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 그리고 졸피뎀과 조피클론 같은 소위 Z-약물이 포함됐다.
백인 참가자의 7.7%는 수면제를 자주 또는 거의 항상 복용한다고 말했다. 흑인 참가자는 2.7%만이 비슷한 수준의 일상적인 사용을 보고했다. 백인과 흑인에 관계없이 여성들, 우울증 환자,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수면제를 많이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벤조디아제핀, 트리아졸람, 플루라제팜, 테마제팜 같은 만성 불면증에 대한 신경안정제사용이 흑인노인보다 백인노인에게서 2배나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백인 노인은 또 Z-약물을 복용할 가능성이 7배 높았고, 항우울제 트라조돈을 복용할 가능성은 10배나 높았다.
15년간의 추적조사에서 약 5분의 1이 치매에 걸렸다. 수면제를 자주 사용하는 백인 노인이 치매에 걸릴 위험이 79% 더 높았다. 반면 흑인 노인의 수면제 복용과 치매 간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렁 교수는 이런 인종적 차이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종전 연구는 흑인이 일반적으로 백인보다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더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수면제를 사용할 수 있는 흑인 노인은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가진 선택된 그룹이라는 것”이라고 렁 교수는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결과를 근거로 백인 노인에 대해서도 “수면제가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높인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면제 때문이 아니라 수면의 질이 떨어져 치매가 발병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선 추가연구가 필요하다는 데 렁 교수와 그리핀 박사는 의견이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