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 100년사
(40회)
1. 입시 제도의 변화
40회 동문들이 경복고에 입학한 것은 1962년이었다. 이 해부터 공공 연호가 단기에서 서기로 전환이 되었으며, 교육제도 역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종전 신학기는 일본식 교육제도의 영향으로 항상 4월 1일부터였는데, 3월 1일로 바뀌었다.
또 고교 입시도 변환을 가져왔는데, 종전에 중고 동계진학이 허용되었다가, 1962학년도 고교입시에서는 전체 자율경쟁으로 전환되었다. 경복중은 1개 학년 7개 반 420명이 정원이고, 경복고는 8개 반 480명이 정원이었다. 종전에는 경복중 졸업생 420명은 그대로 경복고로 진학하고, 1개 반 60명만 타 중학교 출신으로 충원을 하였는데, 이런 진학 제도가 폐지되면서 경복중 출신과 타 중학교 출신들이 한데 섞여 입학시험을 치러서 경복고에 진학하는 제도로 변경이 된 것이다.
새로운 입시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경남중, 부산중, 경북중, 대전중, 광주서중 등 지방 명문 중학교의 졸업생들과 청운중, 양정중, 중앙중, 보성중, 중동중, 동성중, 대광중 등 서울의 사립 명문 중학교 졸업생들이 대거 경복고에 응시했다. 이에 반해 아예 자신이 없는 경복중 졸업생들 중 상당수가 용산고, 휘문고, 경동고, 배재고, 중동고 등으로 진학 방향을 바꾸었다.
경복고 입시 경쟁률은 2.2:1이 조금 넘었는데, 전국 수재들의 경쟁인지라 합격이 쉽지 않았다. 합격자 수는 경복중과 타 중학교 출신이 서로 비슷하였다. 입시 결과 경복고는 경기고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높은 커트라인을 나타내어 명문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전교 수석은 경복중 출신의 박승빈이 차지했다. 1962년 3월 6일 경복고 40회 신입생 480명의 입학식이 대운동장에서 거행되었다.
2. 정치적 혼란과 학창시절
1962년은 경제 개발의 초석을 놓은 해였다. 1월 13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2월 1일에는 울산공업지구 계획이 발표되었으며, 8월 27일 부평에서 새나라 자동차 공장 준공식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 정책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은 6월 20일에 실시된 제2차 통화개혁이었다. 통화개혁은 기존 ‘환’ 명칭의 화폐를 ‘원’으로 고침과 동시에 종래 10환이 1원으로 교환되었다.
그리고 이해 창경원과 남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었고, 9월에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이 개장되었다. 경복고는 서울시 고교 야구대회에 출전하여 선전, 결승전에 진출하여 경동고와 싸웠으나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여름방학에는 농구부가 진명여고와 동반하여 한일 고교 농구 교환경기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스기나미고 등 일본의 여러 강팀과 대결하여 7전 전승을 하고 개선하였다. 우리 동창 중 일본 원정에 출전한 선수는 이원표, 이진국, 구자동 등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1962년은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다. 3월 22일에 윤보선 대통령이 사임하고, 27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했다. 7월 10일에는 김현철 내각이 출범하였고, 11월 5일에는 제5차 헌법 개정안이 국가재건최고회의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는데, 12월 17일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85.3% 투표, 78.8%로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로써 대통령 직선제, 국회 단원제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6월 20일 주민등록법이 법률 1067호로 발효되었다. 12월 5일 5.16 구데타로 말미암아 선포되었던 비상계엄령이 해제되었다.
10월 9일 비원에서 교내백일장이 개최되어 당시 1학년생이던 김재훈이 수필부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2학년으로 진급되던 1963년은 제3공화국이 시작되는 해여서 전국이 정치적 소용돌이 와중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그동안 계엄령으로 묶어 두었던 정치 활동이 재개되었다. 7월 18일에 민주당이 창당대회를 열었는가 하면 8월 31일에는 민주공화당이 창당되어 총재에는 전날 대장으로 예편한 박정희 장군이 총재로 취임하였다. 10월 15일 대통령 직접선거가 있었는데,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국무총리에는 최두선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11월 26일에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전체 175석 중 민주공화당이 110석을 차지하였다. 박 대통령은 11월 24일 미국에 건너가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12월 17일 국회가 개원되어 국회의장에 이효상이 선출되었다.
사회적인 변화도 많았는데, 1963년 1월 1일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이 되었다. 2월 1일 장충체육관이 개관하여 2월 3일 제1회 박정희 장군배 동남아여자농구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우리나라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4월 25일에는 동아방송(DBS)이 개국되었다. 최초의 민간 방송국이었다. 5월 21일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려 김응용, 박현식, 서정리 등이 주축이 된 우리나라가 일본을 제치고 우승하였다. 6월 20일에 태풍 셜리가 남부지방을 강타하여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10월 1일 서울가정법원이 설치되었으며 10월 31일 영등포 양화교에서 김포까지 4차선 고속도로가 국내 최초로 건설되었다. 11월에는 현역인 육군 중령 일가족 전원을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한 희대의 살인범 고재봉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훗날 고재봉은 사형에 처해졌다. 12월 6일에는 의료보험법이 실시되었다. 12월 22일에는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을 파견하였다.
10월 9일 교내백일장이 창덕궁 비원에서 열려 수필부 장원에 2학년 유재엽, 차상에 김재훈이 각각 입상했다.
3학년에 진급한 1964년은 한일회담 개최와 더불어 이에 대한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로 점철된 해로 기억된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적인 외교 관계 정립을 위한 한일회담 준비를 위한 준비 회담이 3월 23일에 열려 우리의 김종필 대표와 일본의 오히라 외상 사이에 회담 일정이 잡혔다. 이에 한일굴욕회담을 반대하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였는데, 데모의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6월 3일 중앙청 앞에서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경찰을 향한 투석전을 전개 중앙청과 광화문 사이의 중앙분리대에 세워 있던 위인들의 석고상이 모두 부서졌다.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여 시내가 뿌연 최루가스로 뒤덮였다. 급기야 파출소가 피습을 당하고 정부는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대학과 고교의 교문을 닫는 휴교령을 발동했다. 6월 8일에는 동아일보 기사에 불만을 품은 공수단 장교들이 동아일보사에 난입하여 윤전기를 세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7월 29일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1월 16일 제주도 일원의 야간 통금이 해제되었다. 3월 20일 연평도 근해에서 어선 보승호 1호, 보승호 2호 두 척이 납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5월 7일에는 울산정유공장이 준공되었고, 10월 31일에는 베트남에서 전쟁 중인 미국을 돕기 위한 월남 파병이 결정되었다. 12월 5일에 제1회 수출의 날 행사가 열렸다. 연말인 12월 6일 박 대통령이 서독을 국빈 방문하여 뤼브케 대통령과 회담을 열고 파독 간호원과 광부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어냄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이룰 기초를 마련했다.
10월 9일 창덕궁 비원에서 개최된 교내백일장에 입상자를 살펴보면 수필부 장원에 김기수, 차상에 유재엽, 가작에 신근수, 시부 차상에 신용우가 각각 입상했다. 1965년 1월 23일 경복 40회 졸업생 479명에 대한 졸업식이 대강당에서 거행되었다. 대강당 완공 후 첫 졸업식이었다.
3. 졸업 이후의 활동 상황
고등학교 입시에서 공개자율경쟁을 거쳐 진학한 40회의 대학 진학 실적 역시 뛰어났다. 300명에 가까운 졸업생들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결과를 나타냈다. 대학 졸업 후 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학문의 길로 매진하여 대학 교수로 활동한 동창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권오대(포항공대), 권인혁(제주대), 김건호(홍익대), 김내헌(아주대), 김태흥(전북대), 김학철(한동대), 박민식(미 UCLA), 박상윤(울산대), 박성학(가톨릭대), 박재호(영남대), 신용우(단국대), 안승구(서울시립대), 안회영(경희대), 양 모(광주과학기술원), 염성배(홍익대), 오중협(인하대), 유재엽(신구대), 유태호(고려대), 유필문(단국대), 이경행(상지대), 이성택(한국과학기술원), 이창훈(서울대), 이홍진(경북대), 장석균(가톨릭대), 정구현(연세대), 정명희(서울대), 정만조(국민대), 조보연(서울대), 조용원(미 USC), 홍영재(연세대) 등 30여 명에 이른다. 이경행은 상지대 총장을 역임했고, 정명희는 서울대 부총장을 거쳐 가천의과대학 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정계와 관계에서 활동한 동창은, 김영삼 대통령 당시 청와대 수행실장을 지낸 김기수,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 대통령실장을 지낸 이병기가 주목된다. 김기수는 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외교관 출신의 이병기는 국가정보원장, 주일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밖에 조폐공사 사장을 역임한 강희복, 인천항만청장을 지낸 김성규, 부장판사 출신의 신성철, 시흥시장을 지낸 이철규 등이 있다.
재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창으로는 일성무역 대표 김영철, 코스탈파워 대표이사 김의선, 아주약품 대표이사 김중길 외에 키미데이타 회장으로 재직하며 경복 총동창회장을 지낸 이희열, 삼표산업 회장인 정도원, 전 락산엔터프라이즈 회장 박성관, 전 태화산업 회장 신명수, 전 일신산업 회장 이석훈,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 정병철, 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정구현을 들 수 있다. 그밖에도 많은 동창들이 산업 일선에서 중견기업을 이끌고 있다.
종교계 인사의 경우 모두 기독교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내헌은 싱가포르 생명의 말씀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있고, 손재국은 영광성결교회 명예목사로 있다. 충현교회 부목사, 왕십리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오치룡은 현재 난지도에 소재한 꽃섬출애굽교회 담임목사로 활동 중이며 이치문은 에덴가족운동본부 담임목사로 있다. 그밖에 한상복, 황봉원 목사 등이 목회 활동을 한 바 있다.
군 관계 동창으로는 안광찬(육군 소장)과 장호근(공군 소장)이 특히 눈에 띈다. 안광찬은 육사 25기의 대표화랑으로 사단장, 연합사 참모장,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장 등을 지냈으며, 공사 17기의 장호근은 비행단장을 거쳐 연합사 정보참모부장, 국방대학교 부총장 등을 지냈다.
언론계에서 활동하였던 동창으로는 연합통신의 손재국, 서울신문의 신근수, 합동통신의 안종만, 로이터통신 한국지사의 오일선, 한국일보의 최 욱 등이 있다.
문인으로 활동하는 동창으로는 백성기(필명 백 성), 신근수, 유재엽(필명 류재엽), 이원방(필명 이원하), 이원택 등이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백성기는 시집 『백수 선생 상경기』와 소설집 『번트 사인』를 상재했다. 그는 분량이 짧은 스마트소설 분야를 개척하였는데, 날카로운 사회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을 쓴다. 영국 런던에 머무르고 있는 희곡작가 신근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대표작은 「공항대합실」, 「불구경」이 있다. 최근에 자신이 경영했던 파리의 호텔 이름을 제목으로 한 『몽마르트르 믈랭호텔』를 출간하였다.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 유재엽은 평론집 『한국문학의 지평』, 『이성의 문학 감성의 문학』, 『우리 시 우리 시인』, 수필집 『꽃 꺾어 산 놓고』, 『무관심시대』 등을 출간하였다. 한국문학비평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원방은 단편 「이 강산 낙화유수」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자신의 특이한 체험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장편소설 『시간과 눈물』과 중편 작품집 『밤길의 사람들』(공저)를 발표하였다.
미국 LA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원택은 매년 저서를 발간하는 왕성한 필력을 과시하여 『만화경』, 『요지경』, 『무아경』, 『혼미경』, 『신비경』, 『분광경』 등 6권의 수필집 이외에 글쓰기 교본 『메타 라이팅』을 간행하였다.
영화계에 진출한 동창으로는 김복현(예명 오영일)이 있다. 김복현은 문희와 함께 공연한 「섬마을 선생」, 김지미와 공연한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였으며, 1964년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상과 함께 제5회 청룡상 신인특별상을 수상하였다. 그밖에 「사랑은 당신만」, 「춘희」, 「어명」 등 다수 작품에 출연하였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동창으로는 한국화가 이찬기가 있다. 한때 건축가로 활동하던 그는 2012년 「환희」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됨으로써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세밀한 필치의 풍경화를 즐겨 그리는 그는 원 유묵회 회원전에 7회, 국제전통예술대전에 8회 참석하면서 2016년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강원 전통예술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금융계에서 활동한 동창으로는 남영태(한국증권거래소 부회장), 문선창(농협 상무이사), 백성기(외환은행 외환사업본부장 및 MP&T 대표이사), 이재욱(한국은행 부총재보), 홍동식(증권예탁원 감사) 등이 있으며, 다수의 동창이 시중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의료계의 인사로는 청구성심병원 이사장으로 있는 김학중이 있다. 그밖에 30여 명에 이르는 동창이 개인 병원을 개업하여 활동 중이다.
교육계 인사로는 현재 학교법인 은천학원 이사장인 김기홍이 있다. 은천학원은 안산디자인문화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4. 동호회 활동
가. 사공회
나. 산우회
다. 신복회
라. 성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