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100년 내 고향 인천을 말하다! 「잊혀진 주소 168번지」 (허신 저 / 보민출판사 펴냄)
황해 푸르러 멀리 퍼지고 구원한 문학의 정기 감도는 여기는 내 고향 인천! 내가 태어나고 우리 칠남매 동기간의 잔뼈가 굵은 이곳은 경기도 인천시 북구 가좌동 168번지! 물론 나 어릴 적 구주소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세상의 변화에 따라 광역시에서 직할시로 승격한 50만이 넘는 인구 밀집의 고향으로 도회지화되어 지척이 바뀌고 낯선 모산지패 인간 시장의 물결로 인산인해 인구포화 상태다. 지금 내 거주지 신주소는 인천광역시 서구 건지로 284번길 2층동 206호 가좌동이다. 나는 이곳이 좋다. 개화의 물결에 떠밀려 울타리 넘어 시루떡 나눠 먹던 본토박이 정든 이웃은 풍비박산 있는 것 다 들어먹고 다들 어디론가 떠나버려 유랑인이 되었을까? 고인이 되었을까? 중문소식 그리운 얼굴들이 보고 싶다. 동에서 솟아오른 해, 저녁에 지는 자연의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어찌 사람의 인생은 이다지도 요변스러운지 영엄한 신의 감리를 묻고 싶다.
세월의 연감과 관계없이 오로지 외골수로 공존하는 태양처럼 세상이 변한다 한들 일편단심 민들레, 나는 고향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자고 나약한 노인으로 늙어간다. 이것이 우직일까? 충정심일까? 풀 수 없는 매듭,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형만 한 아우 없고 구관이 명관이라는 고사성어를 지금의 나에게 끌어다 붙여 다듬고 버리면 그 어진 해석이 실마리가 정거장 같은 황혼 문턱에 머문 날 움직일 수가 있을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나는 여기 고향이 좋다. 날개와 등딱찌를 잃고 제자리에서 맴을 도는 죽음 직전의 풍뎅이가 될썽정 나는 여기 고향이 좋다. 건방지고 안하무인 제 것만 아는 백판 낯선 군상의 패거리에 동조는 아니더라도 문 처닫고 살지언정 여기는 내 고향이어서다. 세월의 휘끄무리하게 변해버린 무수한 세월의 억겁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내 유년의 168번지! 청소년에서 중년이 되고, 노년에 이른 삶의 고향! 시대를 거스르며 어미 닭이 알을 품듯 부딪쳐 살아온 백 년의 보금자리 168번지!
나는 여기서 푸른 꿈을 꾸었고 또 이루었다. 발랄했던 청춘의 시간들이 미로에 간직된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이 되어 차마 여길 떠날세라 슬픈 연가처럼 되뇌일 168번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요기서 조기 종종걸음 걸이로도 닿을 듯한 거리나마 서너 번의 거처를 옮기며 이제는 게딱찌만 한 낡은 주택일 망정 늙은 노구의 편안함을 뉘일 내 집이 있으니 이에 더 어떤 욕심이 있을까? 평생을 가난하게 살 망정 못 가짐을 한탄치 않았다. 나 자신을 훈계하며 사람답게 정직하게 살게 한 168번지! 이의 더 무슨 부귀영화를 바랄까? 이래서 나는 고향, 가좌동이 좋은 것이다.
<작가소개>
저자 허신
인천 서구 가좌동 출생
토박이 작가
[작가연보]
2013년 「꿈이 머문 슬픈 인형」
2014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24년 「이 시대의 자화상」
<이 책의 목차>
알림장
구수한 한 소절 문장
첫머리에 즈음하여
제1장. 어머니의 진통
제2장. 나의 살던 고향은
제3장. 우리들의 우상 명화
제4장. 흐림 그리고 맑음
제5장. 나의 사춘기
제6장. 아버지의 역사
제7장. 청록색 연가
제8장. 내 푸른 날의 하늬바람
제9장. 장마
제10장. 농자 천하지대본
제11장. 버라이어티 쇼
제12장. 여덟 살의 기억
제13장. 내 안의 반란
제14장. 엄마의 그늘
제15장. 아버지의 6.25
제16장. 아버지의 혼
제17장. 초상
제18장. 소리 죽여 웁니다
제19장. 검둥이의 환영
제20장. 아빠의 유언
제21장. 발레리나를 꿈꾸며
제22장. 노랑머리 미군
제23장. 인연 그리고 추억
제24장. 아버지와 아들의 간극
제25장. 도둑년에 새끼
제26장. 자만의 시간 속에
제27장. 사우디아라비아
제28장. 아름다운 이름 나눔의 미
제29장. 교통사고
제30장. 나와시 영감
제31장. 작가가 되다
제32장. 남묘 호랑개교
제33장. 익숙해진 것들의 멋스러움
제34장. 설 명절이 오면
제35장. 이루지 못한 시선
제36장. 자랑스러운 고향 서구
[개항 100년 내 고향 인천을 말하다]
1883년 개항 인천은 근대 문물의 출입구로서 제국의 발전 관문 역할을 한 곳이다. 조석으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던 바다, 황량한 점은 갯벌만이 휭 하던 곳에 최초 증기선과 철도가 놓이고 여러 외국기업이 들어오면서 산업 근간의 역동적 문명개화를 이룬 그야말로 인천은 개화의 시구문이다. 이때에 인천에는 일인과 중국인, 서양인들이 몰려들었고, 지금 인천의 명물 먹거리 타운, 짜장면 골목, 차이나타운이 최초 생겨났다. 키 낮고 보잘것없는 가난이 보이는 갯가의 초라한 가옥들은 개화의 물결로 사라지면서 그 자리엔 영사관, 상선회사, 무역회사 등 문물이 앞다퉈 들어왔고, 교회와 근대식 호텔, 고급 요릿집도 생겨났다.
부두의 일거리를 찾아 어중이 떠중이 외지 노동자들이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8.15해방과 함께 한반도 인천에 가장 먼저 외국인으로는 첫발을 디딘 것이 미국인이다. 일제 침탈을 벗게 해준 해방군임을 자임하면서 미군은 서구 문화를 곳곳에 전파 유행시켰다. 이때에 미군들이 주둔한 곳에는 어김없이 기자촌이 생겨났다. 흔히 이름하는 양공주, 양갈보라는 천덕스러운 모멸을 받으며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성이 줄을 이었다. 1960년대 초반 부평 미 제24사단 주위에 몰려든 양공주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2,000여 명 선이었다고 전한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70여 년 이상을 한반도에 머물며 대한민국 수호군으로 남아 있는 것이 미군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한반도 평화의 유지군으로 서로 신뢰하며 크고 작은 많은 도움을 공유했던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방 미국을 인정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천 개화의 역사가 낳은 부흥의 근간이 있으니 그것은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고,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경제대국이라는 부흥의 초석은 인천 개항의 물결이 가져다준 힘이 아니겠는가? 가난을 이겨내고자 수치와 불명예를 뒤로한 채 어쩔 수 없이 부딛쳐 살아야만 했던 가난한 국민의 울분! 지고지순한 세월과 함께 나는 지금도 인천 토박이의 자부심으로 푸른 바다와 함께 여기서 오래오래 여생을 살아간다.
<출판사 서평>
이 책 「잊혀진 주소 168번지」는 강산이 대여섯 번 변한 세월의 무게에서 작가가 기억을 떠올려 쓴 요약본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며 잔뼈가 굵은 작가이다. 시종일관 기억할 수 있는 유년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의 살아온 진부한 고향의 향수를 반추해보는 의미가 깊다. 가물거리는 기억을 희미한 대로 한올 한올 실타래를 풀듯 생각을 거슬러 오르며 화두에 올인한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밝힌다. 억척이 아니면 살아가기가 어려운 도시의 그늘에서 밤잠을 설치며 낡고 오래된 기억들을 상기하며 이끌어내기란 고단한 일상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곰곰이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셈을 하듯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으려 주억거리는 작가의 고개짓에 그 어떤 생소한 하나가 맞이할 때 그것은 작가에게 보석이요, 행복이었다.
(허신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80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