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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공단 / 문경새재 1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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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선비들의 한양 길목 문경새재
우리 마음 속의 고개인 문경새재. 우리가 많이 일컫는 ‘아리랑고개’가 바로 문경새재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문경아 새자야 물박달낭구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질로 놀아나네
문경아 새자는 웬 고개인가
구비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나네
※ 새자=새재 <문경새재아리랑>
문경새재냐 괴산새재냐?
보통 ‘문경새재’라고 하지요? 귀에 깊숙이 박힌 이름이니까요?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주흘산에 걸쳐 있는 이 고개는 옛날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를 보려 한양으로 가던 중요한 통로였죠. 그런데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무방비로 이 고개를 넘어 충주까지 쳐들어와 성벽과 3개의 관문을 설치하게 됐습니다.
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6월, 여기에 조곡관(鳥谷關)이라는 관문을 설치했습니다. 1708년에 조령산성을 고쳐 쌓고, 이 문을 중성(中城)으로 삼았구요. 그 후 폐허가 되어 복원하고 이 관문 남쪽에 주흘관(主屹關)을, 북쪽에 조령관(鳥嶺關)을 축조했습니다. 그래서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나란히 자리잡아 각각 제1, 제2, 제3관문이 됩니다. 고개 정상의 제3관문인 조령관은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되고요. (정확히는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와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의 경계)
보통은 문경새재라 하지만 일부는 괴산 지역이죠.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조령원(鳥嶺院)은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익시설이었습니다.
정부가 1관문~3관문 일대(전체 370만㎡)를 국가지정 문화재 ‘문경새재’로 지정하면서 외지인들은 3관문 주변까지 문경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괴산군은 주민들이 전부터 고개 일부를 ‘연풍새재’나 ‘괴산새재’로 불러 왔으니 ‘문경새재’란 이름을 재고해 달라고도 했습니다.
‘새재’란 이름은 ‘새(鳥)’와 관계가 없어
경기 안성, 충남 논산, 충북 옥천, 전남 광양 등 많은 곳에 ‘새재’가 있는데, 한자로는 신현(新峴), 조령(鳥嶺), 간령(間嶺), 철령(鐵嶺) 등으로 표기됩니다.
이처럼 ‘새재’라는 이름이 엄청 많은데, ‘새재’의 ‘새’가 바로 날아다니는 새(鳥)를 일컫는 걸까요? 사람들은 고개가 너무 높아서 날짐승도 쉬어가는 고개란 뜻으로 많이 해석하네요. 그러나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큰 고개인 문경새재는 ‘사잇고개’의 뜻 외에 다른 건 없습니다.
문경새재 옆에는 이화령(梨花嶺)이 있죠.
역시 문경새재처럼 문경과 괴산을 잇는 고개인데,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도로를 크게 내면서 고개다운 고개가 됐죠. 조령산(鳥嶺山)과 갈미봉(葛味峰)이 맞닿는 안부인데, 고개의 남쪽과 북쪽으로 조령천(鳥嶺川)과 쌍천(雙川)의 지류가 나뉘어 흐릅니다. 물줄기가 여기서 각각 낙동강권, 한강권으로 나뉘어 흐르는 거죠.
이화령은 한자 뜻으로는 ‘배꽃고개’가 되지만, 그렇게 한자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또 ‘배꽃’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 고개 동쪽 마을인 문경읍 각서리의 새터(신기) 마을의 촌로들은 이 고개가 넓혀지기 전의 이름인 '이우릿재'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 너머 연풍쪽에서도 이와 똑같이 부릅니다.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는 '이우릿재', '이류릿재'로 되어 있구요. 이우릿재 밑의 골짜기인 '이우릿골'은 한자로 '이화이리(伊火伊里)'로 적혀 옵니다.
즉, 문헌이나 근처의 옛 이름들을 종합해 보면 '이우릿재'가 원이름일 것 같은데, 이는 '이부리(니부리)'의 변음으로 보여요, ‘길게 늘어진 부리(고갯마루)’의 뜻인 '니부리(뉘부리)'나 '느부리(는부리)'가 ‘이부리’로 되어 한자의 ‘이화(梨花)’로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대동여지도>,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기요람> 등에는 '이화현(伊火峴)'으로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