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 우리 몸은 밖의 열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그에 따라 한없이 축축 늘어져 일에 대한 의욕이 반감된다. 심해지면 가슴이 답답하며 몸에서 열이 나므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게 된다. 몸 밖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우리 몸 안은 열이 성해져 땀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는데, 이때 몸속의 양기도 같이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며 그로 인해 몸 안의 진액이 손상되고 기가 허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 우리 몸이 느끼는 이런 현상을 <동의보감>에서도 "하절에는 천기(天氣)가 서열(暑熱)하여 땀이 항상 많으므로 인체의 양기(陽氣)가 기표(肌表)와 피모(皮毛)로 들떠서 흩어지므로 복부 중의 양기가 허약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류관희
초복엔 비벼 먹는 삼계반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우리 몸의 기운도 땀과 함께 빠진다.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서늘한 곳을 찾고 찬 식음료를 반복적으로 먹다 보니 외기와는 달리 몸속은 오히려 차가워져 면역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선조들은 삼복을 맞아 떨어진 면역력을 회복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삼계탕을 끓여 먹으면서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려는 노력을 하였다.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을 북돋울 닭, 인삼, 찹쌀, 대추 등을 함께 넣고 푹 고아 먹는 것이 바로 삼계탕이다.
하지만 식구들 중에는 삼계탕이나 닭백숙을 썩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물에 빠진 닭은 싫다고 하며 기름에 튀긴 닭을 선호하는 추세다. 궁여지책으로 그런 아이들을 위해 삼계탕 재료로 찹쌀을 조금 넣고 영양밥을 짓는다. 인삼이 닭의 냄새를 없앨 뿐 아니라 밥에 향을 더하니 가족 모두 맛나게 먹는다. 삼계반을 지어 먹을 땐 간장에 부추를 송송 썰어 넣고 양념을 만들어 비비면 더 좋다. 떨어진 기운을 차리게 하는데 부추만 한 것이 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추는 습하고 더운 여름에 식중독을 예방하는 식재료로도 훌륭하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해서 자주 먹으면 좋다.
찹쌀을 조금 두고 닭에 인삼과 대추를 넣고 지은 밥에서는 윤기가 흐르면서 차지고 쫀득한 밥알에 인삼 향이 입혀져 닭 냄새를 물리치고 입안에서 춤을 춘다. 초복에 잊지 않고 해 먹는 밥 삼계반은 지리산 동네부엌의 가장 사랑받는 여름 음식이다.
● 삼계반
재료 쌀 1.5컵, 찹쌀 1/2컵, 물 2컵, 닭고기살 600g, 인삼 4뿌리, 대추 6~7알, 청주 2큰술,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① 쌀과 찹쌀을 같이 씻어 불린다.
② 닭고기살을 한입 크기로 썬다. ③ 인삼은 흙이 나오지 않게 깨끗이 씻어 송송 썰고, 대추도 깨끗이 씻어 놓는다. ④ 압력밥솥에 불린 쌀을 넣고 물을 붓고 소금을 넣는다. ⑤ 쌀 위에 닭고기살과 인삼, 대추를 얹고 청주를 고루 끼얹는다. ⑥ 밥을 센 불로 끓이다가 압력밥솥 추가 흔들리면서 나온 물이 마르면 불을 끈다. ⑦ 김이 저절로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밥을 살살 흩뜨리면서 푼다.
텃밭 가지로 해 먹는 여름 보양식 가지조림
선풍기나 에어컨,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우리 조상들은 집 주변 텃밭에 50여 가지의 각종 채소를 길러 먹으면서 여름 더위쯤은 거뜬하게 이기고 살았다. 여름에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은 성질이 대부분 차므로 몸 바깥의 높은 온도에 몸도 같이 더워지는 걸 막아 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여름 텃밭 채소로는 오이나 호박도 있지만, 안토시안 색소가 풍부한 검은 빛깔에 무른 식감으로 사랑받는 가지도 있다.
뭔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 아이들을 향해 어른들이 야단을 치는 말 중에 '가지가지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 까닭에서였는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상에서 가지는 그다지 맛있는 채소는 아니었다. 놀러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텃밭에서 쉽게 따 먹었던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오이와는 달리 가지는 한 입 베어 물면 아린 맛에 바로 뱉어 버리게 돼 더 그랬을 것이다. 오이처럼 가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짝반짝 빛나는 몸매에 검보라색인 가지는 도깨비방망이 같기도 하였는데 생가지의 맛은 정말 친해지기 쉽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 익힌 가지의 물컹거리는 식감도 과히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살짝 쪄서 무친 가지의 혀에 감기는 부드러움이 적당히 좋은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드는 모양이다. 적당한 단맛에 적당한 담백함이 갖은 양념과 어우러져 묘하게 중독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지다.
한방에서는 가지를 가자(茄子)로 부른다. 독이 없으며 성질은 차지만 맛이 달고 비위를 건강하게 돕는 채소다. 몸의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보게 하며 몸의 부기를 빼는 효능이 있다. 가지를 마늘과 함께 먹으면 위의 소화작용을 도우며 여름에 더위를 이기게 하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여름 채소가 대부분 그렇지만 가지는 수분이 94% 이상이라 포만감을 증대시켜 체중 조절이 필요한 사람에게 좋으나 식품영양학적 가치는 떨어지므로 소고기와 함께 조리하면 여름 보양식으로 부족함이 없다.
● 가지조림
재료 가지 3개, 소고기 100g, 간장 2큰술, 들기름 1큰술, 실파 3뿌리, 마늘 3개, 깨소금 약간 고기 양념: 간장 1작은술, 청주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추 약간
만드는 법 ① 가지는 길이로 반을 가르고 어슷썰기한다. ② 가지에 간장 2큰술을 넣고 잠시 절인다. ③ 소고기에 양념을 한다. ④ 실파는 다듬어 씻은 뒤 2~3cm 길이로 썰고, 마늘은 다진다. ⑤ 둥근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양념한 고기와 간장에 절인 가지를 같이 넣고 볶는다. ⑥ 마늘과 실파를 넣고 불을 끈다. ⑦ 깨소금으로 마무리한다.
보리굴비 물리고 먹는 멸치무침 여름엔 흰밥을 차게 식힌 녹차에 말아 먹는다. 입에서도 시원하지만, 녹차가 몸의 열을 내려 주니 그것도 좋다. 녹차에 말아 먹는 밥의 반찬으로는 보리굴비를 최고로 꼽는다. 그러나 보리굴비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가격이 너무 비싸 쉽게 지갑을 열기는 어렵다. 찬밥을 녹차에 말아 보리굴비와 함께 먹고 싶은 날엔 어느 집에나 떨어지지 않고 늘 있는 국물멸치를 고추장에 무쳐 먹는다. 보리굴비와는 다르지만, 비린 맛도 적고 고추장의 맵고 짭조름함에 보리굴비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맛이다.
차는 기호품으로 널리 애용되어 왔지만, 이제는 기능성 식품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녹차에 10~18% 이상 함유된 카테킨류는 항산화작용과 항암작용에 탁월하며 녹찻잎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카테킨이 기초대사량을 늘려 체지방 비율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의 불용성분 가운데 하나인 식이섬유는 변비, 대장암, 당뇨병 등을 예방하고 베타카로틴은 암, 동맥경화, 백내장 등을 예방하며, 비타민E는 항산화작용을 해 암, 당뇨병, 심장병, 백내장 등에 대한 면역증강작용이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심신을 맑게 하고 숙취를 해소하며 번갈을 제거하고 간담을 시원하게 하며 열을 내리고 담을 제거하며 폐와 위를 깨끗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갈증을 해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신경을 흥분시켜 수면을 방해하므로 취침 전이나 식사 전후, 완전 공복 시, 단백질 식사를 할 때는 피하는 것이 좋다. 철결핍성 빈혈 환자나 임산부, 위궤양 환자도 차를 피하는 것이 좋다.
굵은 멸치는 국물을 내는 데 주로 쓰기 때문에 이름도 아예 국물멸치로 굳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굵은 멸치를 국물 내는 데만 쓰기에는 아깝기도 하고 맛이 꽤 좋기로 포기하기 어렵다. 덜 마른 채로 냉장 유통되는 멸치를 구입하면 나는 넓은 채반에 펴서 바싹 말려 둔다. 그러면 곰팡이도 나지 않고 웬만한 환경에서는 상온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멸치를 말리느라 내놓으면 남편은 슬쩍 몇 마리 집어다 머리와 내장을 빼고 고추장에 찍어 술안주로 즐긴다. 옆에 앉아서 같이 한 줌 손질해 견과류 좀 넣고 고추장에 무쳐 둔다. 이런저런 밥상에 잘 어울리고 역시 꽤 괜찮은 술안주가 된다. 기름에 튀긴 치킨과 같이 먹는 '치맥'을 '멸맥(멸치와 즐기는 맥주)'으로 바꿔도 손색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고추장에 무친 멸치는 녹차에 말아 먹는 밥과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 녹차밥과 굵은멸치고추장무침
재료 멸치 100g, 통깨, 견과류, 현미유 2큰술, 마늘·생강 각 1작은술 무침 양념: 청주 2큰술,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조청 3큰술 녹차밥: 밥 1인분, 녹찻물 500ml
만드는 법 ① 멸치를 깨끗한 것으로 골라 머리와 내장을 발라낸다. ② 프라이팬을 약한 불에 얹고 멸치를 살짝 볶아 비린내를 없앤다. ③ 무침 양념을 만들고, 마늘과 생강을 다진다. ④ 약하게 달군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고 볶는다. ⑤ ④의 프라이팬에 무침 양념을 넣고 한소끔만 끓이고 불을 끈다. ⑥ 손질한 멸치를 5의 양념에 무치고 통깨와 견과류를 넉넉히 넣는다. ⑦ 밥과 녹찻물, 멸치무침을 같이 낸다.
여름에 먹는 인삼, 보리열무김치
비닐하우스와 유리하우스 등이 농촌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우리 밥상으로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사철음식을 먹게 되었으며, 계절을 잊고 제철음식을 혼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냉장고가 나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된 요즈음 대부분의 가정에서 10월 말부터 김장을 시작하고, 이때 하는 김장의 양은 겨울 한 철 먹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1년을 두고 먹어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 먹던 다양한 채소로 담그는 김치들이 사라지고 바야흐로 1년에 한 번 김치를 담그는 시대가 온 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열무김치와 얼갈이배추김치를 담가 먹고 장마가 오기 전에 오이지를 담그던 풍습이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여름에 먹는, 겨울 김장으로 해 둔 배추김치가 부담스럽다. 젓갈과 양념의 진하고 무거운 맛이 여름 더위에 떨어진 입맛을 다시 찾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김치는 뭐니 뭐니 해도 찬 성질을 지닌 밀이나 보리로 쑨 멀건 풀죽에 소금으로만 간을 한 풋김치가 제격이다. 그리고 풋김치의 으뜸은 단연 열무김치다.
열무는 여름에 인삼을 제쳐 두고 먹기 때문에 여름에 먹는 인삼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인삼에 비견되는 열무의 건강성보다는 열무의 맛에 더 집중해서 김치를 담가 먹는 편이다. 평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고 지치는 날엔 찬 보리밥에 열무김치 듬뿍 넣고 들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벼 먹으면 씹을 사이도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그러니 내게 열무김치와 보리밥이 없는 여름은 생각하기 어렵다. 오늘은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비비는 대신 보리밥을 지어서 열무김치를 담근다. 김치를 먹을 때마다 보리 알이 톡톡 터지는 재미가 있는 김치다. 보리열무김치 맛난 여름이다.
만드는 법 ① 열무는 다듬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② 손질한 열무에 10% 소금물을 부어 1~2시간 절인다. ③ 보리 1컵을 씻어 물 5컵을 붓고 푹 퍼지게 밥을 해서 식힌다. ④ 실파는 다듬어 씻어 4~5cm 길이로 썰고, 청·홍고추는 곱게 어슷썰기한다. ⑤ 보리밥에 양념 재료를 잘 섞어 김치 양념을 만든다. ⑥ 절인 열무를 받아 놓은 물에서 아기 다루듯 살살 흔들어 씻고 건져 물기를 뺀다. ⑦ 넓은 그릇에 양념을 넓게 편다. ⑧ 절여 씻은 열무를 넣고 양념을 바르듯 살살 버무려 용기에 담는다. ⑨ 김치를 버무린 그릇에 물과 고추를 조금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열무김치 위에 자박하게 붓는다. ⑩ 하루 이틀 상온에서 익혀 냉장 보관하며 먹는다.
첫댓글 여름에 우리 몸이 느끼는 이런 현상을 <동의보감>에서도 "하절에는 천기(天氣)가 서열(暑熱)하여 땀이 항상 많으므로 인체의 양기(陽氣)가 기표(肌表)와 피모(皮毛)로 들떠서 흩어지므로 복부 중의 양기가 허약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