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앞바다의 장엄한 일출.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양정철의 뉴스 셰프] 여기 두 개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건과 연관된 두 개의 학교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부산저축은행 비리의혹 사건입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모 의대생들의 동기 여학생 집단 성폭행의혹 사건입니다.
그런데 한 사건에선, 관련자들이 특정학교로 엮여 있다는 가정 하에 학교 이름이 ‘비리 커넥션의 고리’로 버젓이 적시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 사건에선, 관련자들이 특정학교 동급생들이지만 상당 기간 대부분 언론이 학교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매체는 인터넷을 통해 그 학교 이름이 너무 알려진 이후 실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비일관성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앞의 학교는 호남의 명문 K고입니다. 뒤의 학교는 전통의 사학명문 K대입니다. 두 사건과 두 학교 차이는 무엇일까요. 참고로 저는 두 학교 출신도 아니고, 두 학교와 특별한 지연도 없습니다.
두 사건 모두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고는 있지만,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의혹사건입니다. 두 사건 모두 해당 학교의 문제거나 해당 학교가 조직적으로 개입된 사건이 아닙니다. 즉 일부 동문들 혹은 일부 재학생들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 경우 언론은 해당 학교의 명예를 배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과 무관한 대다수 재학생과 동문들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많은 언론이 후자의 사건을 보도하면서 K대 의대를 ‘명문대 의대’라고만 표기했던 것은 옳다고 봅니다. 비록 해당학교가 피해 학생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사건은폐에 급급해도 변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그 학교 이름이 네티즌들에 의해 다 알려지고 그로 인해 학교명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여도 변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언론에겐 지켜야 할 보도기준이 있는 법이니까요.
이 당연한 기준을 K고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제 보도를 살펴보면, 그 속에 숨겨진 무서운 이중잣대와 고약한 정치적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관련 보도를 한번 보시지요.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1일 “저축은행 사태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은 모두 특정고교(광주일고)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며 “이들이 어느 정권, 어떤 사람들과 친한지는 세상이 다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호남 인사들 사이에서 ‘마당발’로 알려진 그는 학연(광주일고)과 정치적 인연(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탕으로 전 정권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쌓아 왔다. <중앙일보>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등 이 은행의 핵심 경영진,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이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사세(社勢)를 키운 해동건설 박형선 회장, 검찰이 수뢰 혐의를 포착한 김광수 원장은 모두 광주일고 동문이다. <동아일보>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이 노무현 정권 인사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부산저축은행 주요 인사들이 광주일고 인맥으로 얽혀 있다는 점 <문화일보>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금융당국 고위관계자 간의 특정 고교 인맥이 다시 드러났다. 모두 광주일고 동문이다. “4대 메이저 저축은행 중 3곳의 대주주가 호남 출신”이라며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특정 지역 출신이 저축은행업계를 장악해 정부에 로비를 한다는 루머가 끊이질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부산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의혹과 관련된 검찰 수사선상에 광주일고 인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핵심 관계자뿐 아니라 로비 창구로 지목된 인물과 로비를 받은 의혹이 있는 금융계 고위 인사까지 모두 광주일고를 축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느껴지십니까. 해당 ‘K고’ 이름을 이니셜이 아닌 실명으로 등장시켜야 했던 이유를. 두 사건 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이고, 일부 동문이나 재학생들의 문제라 해도, 둘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바로 정치적 차이입니다.
저축은행 비리사건에서 ‘K고’는 아주 중요한 매개로 악용됩니다. △부산 서민들의 등을 처먹은 자들이 다름 아닌 호남의 잘 나가는 명문고 인맥이다(영호남 지역갈등 대립) △호남 명문고=김대중·노무현 정권과 특수 관계(전 정권 책임론) △따라서 저축은행 비리는 ‘PK게이트’ ‘현 정권 게이트’가 아니라 ‘호남게이트’ ‘전 정권 게이트’다. 이런 등식을 성립시키는 데 있어 ‘K고’의 실명은 대단히 중요한 시나리오 복선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명문대 의대’는 그게 어느 학교인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재학생들이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만 했느냐, 성폭행까지 했느냐입니다. 낯부끄럽고 민망한 수위의 사건 묘사로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게 중요했지 학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거기다 K대의 막강한 정치적 파워, 동문들의 대단한 영향력, 주요 광고주라는 점 등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뒷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한국처럼 학연이 중시되고, 또 학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도 드뭅니다. 잘못된 연고주의가 비리 커넥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그에 대한 견제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 연루자들이 특정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미확인 의혹을 키우거나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정치적 책임전가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학연 지연 혈연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꼴사나운 구태나 나눠먹기 커넥션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특히 현재 권력 주변엔 온통 그 같은 부패사슬이 있습니다.
때가 어느 땐데 호남 죽이기로 재미를 보려 합니까. 청와대나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다 큰 코 다칩니다.
원문주소-양정철 닷컴
첫댓글 명확합니다. 잘 이해했습니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