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상채(上蔡) 출신으로, 젊어서 군(郡)의 하급 관리로 있었다.
어느 날 이사는 아전 숙소의 뒷간에 갔다가 똥을 뒤지던 쥐들이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뒷간의 쥐들은 몰래 다니며 더러운 오물만 주워 먹으며,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것이었다.
더구나 고양이 앞에서는 꼼짝달싹을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또 어느 날인가 이사는 창고에 들어갔다가 곡식을 먹는 쥐들을 보았다.
그런데 창고속의 쥐들은 가득 쌓여있는 곡식을 먹으며 짐짓 여유까지 부렸다.
물론 창고 속의 쥐들도 인기척에 놀라 도망치기는 하였지만,
잠시 후에 눈치를 슬슬 보며 구멍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아아, 사람이 현명하고 못난 것을 비유하면 저 창고 속의 쥐와 뒷간 속의 쥐가 처한 것과 같구나.
이 세상 모든 일이 스스로 처한 곳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사는 조그만 군에서 하급 관리 노릇이나 하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쥐에 비유하며 한탄하였다.
그 뒤 이사는 큰 마음을 먹고 순경(荀卿)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순경’은 바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유학자 순자(荀子)를 일컫는다.
이사는 순자에게서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학(帝王學)을 배웠다.
학문을 다 배우고 난 그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당시 초나라 왕은 자신이 섬기기에 부족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육국(六國)은 약소국이어서 섬겨서 공을 세울 만한 인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강대국인 진(秦)나라로 가기로 하고 스승 순자를 찾아가 하직 인사를 하였다.
“때를 얻거든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열국들이 바야흐로 서로 다투는 때이기 때문에 제가 배운 학문을 써먹기 좋은 기회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순자가 물었다.
“지금 진나라 왕은 천하를 병합하여 제(帝)를 일컬으면서 열국들을 수하에 거느리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관직이 없는 선비가 출세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비천한 사람이 무엇인가 도모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금수(禽獸)가
고깃덩어리를 보고 탐을 내면서도 사람이 무서워 참고 견디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곤궁한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습니다.”
“그대도 그렇게 곤궁한가?”
“저는 오랫동안 비천하게 살아왔습니다.
또한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을 비난하고 영리(榮利)를 미워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선비들이 저와 같은데, 스스로 고상한 체하여 욕심이 없는 듯 행동하지만,
그것은 본연의 심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장차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 왕을 설득하여,
그를 장차 천하를 호령하는 군주로 만들겠습니다.”
순자는 제자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사가 진나라로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내가 그대를 가르칠 때 욕심을 없애는 법을 깨닫게 하지 못하였구나.
자연의 이치는 차면 곧 기울고, 올라가면 곧 내려가고, 강성하면 곧 쇠약해 지는 법이다.
그 차고, 올라가고, 강성해 질 때를 늘 조심하도록 하라.”
마침 그 무렵 진나라는 장양왕이 죽고, 그의 아들 정(政)이 즉위하였다.
이사는 우선 진나라 정승인 문신후(文信侯) 여불위를 찾아가 식객으로 머물렀다.
여불위는 이사를 눈여겨보다가 현명한 인물임을 간파하고, 그를 낭관(郎官)에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이사는 진나라 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큰일을 성취하는 사람은 남의 약점을 이용해 잔인하게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 진나라 목공(穆公)은 패자(覇者)가 되었으면서도 끝끝내 동쪽으로 6국을 쳐서 병합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후들이 숫자가 많고 주(周) 왕실의 덕이 아직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이사는 문득 진나라 왕을 쳐다보았다. 진의를 탐색하려는 것이었다.
“무엇이 다르다는 거요?”
“진나라 효공(孝公) 이후 주 왕실은 쇠퇴를 거듭하였고,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 나라를 병합하여 관동(關東)의 6국만 남았습니다.
반면 진나라는 승세를 타고 앉아 제후들을 다스려 온 것이 이미 6세(六世)나 되었습니다.”
진나라 왕은 이사의 말을 듣고 따져 보았다.
과연 효공 때부터 시작하여 혜문왕(惠文王)․ 무왕(武王)․ 소왕(昭王)․ 효문왕(孝文王)․ 장양왕(莊襄王)까지
6대에 걸쳐 진나라는 강국으로 제후국들에게 위엄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대는 지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요?”
“지금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을 보면, 마치 제후국은 진나라의 한 군현(郡縣)과 같습니다.
진나라의 강성함과 대왕의 현명하심은 밥하는 하녀가 부엌의 솥뚜껑 위에 앉은
먼지를 쓸어내는 것보다 쉽게 제후국들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만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게을리 하여 급히 성취하지 않는다면 제후들이 다시 강성해지고,
또한 서로가 합종을 하게 되면 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이사의 이 말에 진나라 왕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이사를 당장 비서실장격인 장사(長史)로 등용하였다.
이사는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제후의 명사들 중에서 재물로 매수할 수 있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을 주도록 하였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자는 예리한 칼로 찔러 죽여 제후와 신하 사이를 이간질 시켰다.
그런 다음 진나라는 대군을 일으켜 약화된 제후국을 쳐들어가 인정을 두지 않고 짓밟았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사의 이러한 공략전술로 진나라는 제후들을 모두 굴복시켰다.
이 공적으로 이사는 객경(客卿)의 벼슬에 올랐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최고의 벼슬인 재상이 된 것이었다.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