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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곡 <그랜 토리노>의 주제곡
그랜 토리노는 1973년도형 포드 자동차 이름입니다.
*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그랜 토리노, 주인공 월트 할배는 나중에 유서에서 애지중지하던
이 자동차를 옆집 몽족인 타오에게 물려줍니다
[ 명배우,명감독이자 음악인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
현재 미국 영화계를 통틀어 단지 산업적인 기준만이 아니라 그 영향력과 정신적인 면 그리고 상징성 등을 종합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는다면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일 것입니다. 전형적인 늦깎이였던 그는 카우보이였고 무법자였으며 거친 형사였죠.
그는 단순히 영화 주인공이 아닌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지금은 자신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다시 바라봅니다. 70세를 넘어 80세를 넘어 들어서도(그는 1930년 생입니다) 청년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처음부터 대단한 걸작을 발표한 천재감독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돈 시겔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연출을 시작한 1971년 이후로는 거의 매년 한편씩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 탐구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러니까 그는 그 많은 영화들에 출연하고 연출하면서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고 경험을 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배우에서 감독으로 단련을 해온 것이죠. 한작품 한작품 영화 미학을 터득해 나가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과 이미지를 결합하여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다져 나갔던 것입니다.
타고 난 재능과 요령으로 지름길을 간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한계단 한계단을 밟으며 명예의 전당으로 오르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한계단 한계단 오르던 그는 나이 62세 영화인생 40년을 앞두고 <용서받지 못한 자 1992>라는 영화를 만듭니다. 16번째 장편 연출작이고 그해 전세계 비평가들로부터 최고의 영화로 극찬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1993년 65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공식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정한 거장의 반열의 오릅니다.
그는 오랜기간 영화에 대해 사색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세상은 그의 전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80세를 넘어선 노령임에도 이 고독한 건맨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여기저기 자신의 명상과 철학의 흔적을 남기며 천천히 전진하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 늦깎이 배우로서의 시작 >
성장 속도가 빠른 배우라면 이미 스타가 되어 있을 25세에 이스트우드는 배우를 시작합니다.
TV 연속극 <로하이드>(59~65)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스타덤에 오른 계기는 <황야의 무법자>(64).34세 때 찍은 영화였습니다. 첫 연출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71)를 내놓았을 때는 41세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92)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을 땐 63세였죠.
그는 65세의 나이에 로맨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95)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74세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04)에서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습니다. 그는 대단한 슬로 스타터(slow starter)인 셈입니다. 이스트우드처럼 꾸준히 자신의 비전을 넓혀갔던 배우나 감독은 없을 것 같습니다.
* <더티 해리>에서
그리고 위에서 나열한 놀라운 연대기가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그가 건강했기 때문인데, 2006년에 9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프란체스카 루스 이스트우드는 아들에게 건강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셈입니다. 이스트우드는 단 한 번도 조급한 적이 없었죠.
그리고 항상 뭔가를 배우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주급 75달러를 받았던 시절, 그는 실습생이었습니다. 그는 <괴물의 복수>(55) <타란툴라>(55) 같은 B급 SF 영화에, 자막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며 출연하고 있었고.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긍정적으로 회고합니다. “배울 게 많은 시절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야 했고, 맘에 들지 않는 스토리라도 해야 했다. 많은 배우와 아이디어와 감독을 접했다. 그러면서 배웠다. 이 사람처럼 해야겠다 혹은 이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카우보이 시절>
하지만 그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쫓겨납니다. 이유는 황당했죠. 그의 목울대가 너무 크기에 배우로서 부담스럽다는 것. 해고당했을 때 그는 빈털터리였습니다. 하지만 배우 생활을 접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나이 때문은 아니었고. 그는 이미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를 필요로 한 장르가 바로 TV 서부극이었습니다.
<매버릭>(59, TV)에 잠깐 출연한 후 그는 친구 따라 CBS 방송사에 놀러갔다가 그곳 간부의 눈에 들어 <로하이드>라는 서부극에 일약 주연으로 기용됩니다. 그리고 무려 7년 동안 ‘라우디 예이츠’라는 캐릭터로 살아간다. 물론 제한된 캐릭터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한 어떤 기반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레오네와 찍었던 세 편의 마카로니 웨스턴 때문에 우린 그를 무법자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겐 동전의 양면처럼 카우보이의 이미지 또한 있습니다. <퍼펙트 월드>(93)나 <스페이스 카우보이>(2000) 같은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출발점을 다시 환기시킵니다.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사선에서>(93)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무법자나 형사가 되기 전,훨씬 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법을 고수하고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무법자 시절>
이스트우드가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보여준 무표정은, 사실 긴 시간이 응축된 마스크였습니다. 재즈 애호가였던 그는 레스터 영 같은 연주자를 보며 가슴이 고동쳐도 냉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제임스 딘 같은 배우, 잭 케루악 같은 작가, 쳇 베이커 같은 뮤지션이 보여준, 새로운 방식의 섹시함 또한 이스트우드의 머릿속에 기억되었죠.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써먹을 시간이 왔습니다.
그는 이미지들을 기억해냈습니다. 사실 <황야의 무법자>에 내정된 배우는 제임스 코번이었지만, 가난했던 이탈리아 영화계는 1만5,000달러의 개런티를 지불하고 이스트우드를 대타로 기용했습니다. 레오네는 이스트우드의 나른하고 양미간을 찌프릴 때의 고양이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역할을 만들어나가면서 이스트우드가 영감을 받은 캐릭터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61)에 나오는 미후네 도시로였습니다. 이스트우드는 비정하고 잔인한 게리 쿠퍼 같았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원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죠. 바로 신화적이며 전형적인 캐릭터였습니다.
* <황야의 무법자>에서
그는 말이 아닌 몸으로 연기했고, 표현을 억제했습니다. 영국의 대배우이자 이스트우드와는 <독수리 요새>(69)에서 공연했던 리처드 버튼은 이스트우드의 연기 스타일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클린트는 스펜서 트레이시, 제임스 스튜어트, 로버트 미첨 같은 배우의 계보를 잇고 있다."라고...
그에겐 역동적인(?) 무기력함이 있습니다. 카메라 앞에선 아무것도 안 할 것처럼 그냥 서 있는 것 같지만,결국엔 모든 것을 해냅니다. 표현을 최소화하고 표정을 아끼는 배우.그런 면에서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전통적인 남성상에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탈리아에서 찍었던 영화에 대해, 고향인 미국의 저널과 대중은 냉소적·폭력적이라고 비판했고,이스트우드를 냉혹한 살인자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새로운 액션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황야의 무법자>에서
<더티 해리 시리즈의 막나가는 형사 시절>
마카로니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이스트우드는 서부극이 쇠퇴하자 돈 시겔의 <더티 해리>(1971)에서 강력 경찰로 이미지를 쇄신하게 됩니다. <더티 해리>는 그의 마초적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죠.
매그넘(대형 권총)으로 범죄자들을 무차별 사살하는 거친 형사 더티 해리는 아직도 대중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이스트우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후, <더티 해리>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어 1988년까지 5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직접 감독으로 나서게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하리 시리즈의 돈 시겔 감독으로부터 감독이 되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이에 그는1971년 맬파소 프로덕션이라는 제작사를 차립니다.
맬파소 프로덕션을 통해 그는 1973년 사이코 스릴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해 이후부터는 감독과 배우로 활동합니다. 이후,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아나갑니다.
감독으로서 그는 돈 시겔이나 세르지오 레오네 등 함께 작업했던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두 감독의 방식은 이스트우드의 절제된 연기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의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건틀릿>(1977), <브롱코 빌리>(1980), <파이어 폭스>(1982), <페일 라이더>(1985) 등을 감독하였고,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버드>(1988),<추악한 사냥꾼>(1990) 등에 이르러서는 감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절제된 스타일의 대표작은 93년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입니다. 그의 감독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서받지 못한 자>는 서부영화를 결산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 <용서받지 못한자>에서
그는 영화를 떠나 잠시 외도를 하는데, 1986년부터 2년간 캘리포니아주 카멜시(市)의 시장 직을 역임합니다. 이후,<사선에서>(1993)에 배우로서 출연하였고,<퍼펙트 월드>(1993),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앱솔루트 파워>(1997),<미드나잇 가든>(1997)를 감독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특히,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선 잔잔하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연출, 메릴 스트립과 직접 로맨스 그레이 커플을 연기하기도 하여 한국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최근에 들어와 <밀리언달러 베이비>,<미스틱 리버>,<아버지의 깃발>,<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체인질링>,<그랜 토리노>,<인빅터스>,<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설리,허드슨강의 기적>과 같은 걸작들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서
*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음악인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면 배우, 감독이면 감독, 게다가 자신이 만든 영화의 음악 작곡까지. 영화에 관한한 이만한 팔방미인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할리우드 최정상의 배우임과 동시에, 지난 40년간 모든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 영화계의 거장이자 우상으로 모든 부문에서 작품성, 흥행성을 인정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직도 열정적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0대 때부터의 꿈이었다는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스트우드는 그동안 틈틈히 자기가 만든 영화의 메인 타이틀도 작곡하는 솜씨를 보여주어 왔습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의 메인 타이틀인 “Claudia's Theme"이 대표적인 곡인데 기타가 주 멜로디를 리드하고 잔잔하게 관현악과 합쳐져 가는 이 주제곡의 성공은 이스트우드로 하여금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까지 손을 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작품 이전에도 그는 이미 두 개의 영화음악을 만든 적이 있지만, 이 영화의 성공이후, 그는 오랫동안 그토록 사랑하는 재즈에 기반을 둔 창작 실력으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에서 만만치 않은 음악적인 재능도 과시를 하였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깃발>과 <그랜 토리노>에서도 메인 타이틀을 작곡함으로써 대단한 재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 대표작 소개 ]
< 그랜 토리노 >
* 고집불통 노인의 은밀한 사생활
이스트우드의 오랜 파트너인 프로듀서 로버트 로렌즈는 ‘재미있게 읽었다’는 소감과 함께 시나리오 한 편을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건넸습니다. 어느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었던 <그랜 토리노>는 미네소타에 사는 한 백인 참전 용사와 아시아 몽족 커뮤니티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였죠.
작가는 몽족과 함께 공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는 인종 차별을 고수하는 백인 노인으로, 마을에 점점 늘어나는 아시아인들을 경멸하며 매일을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곤경에 처한 동양인 소년을 구하면서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 맥주를 입에 달고 사는 월트, 이기적인 두아들 식구들도 못마땅하고 옆집 쬐끄만 동양인들도
영 못마땅합니다. 인상을 팍팍 쓰면서 혀를 끌끌 차며 살고 있지만...나중에 살신성인하면서
옆집 타오네 식구들의 방패막이가 되면서 목숨을...
매일 장총 M-1을 닦으면서 늙은 개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깐깐한 노인. 아내는 막 세상을 떠났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들들과는 거의 소원하게 지냅니다. 50년 동안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살아왔던 그의 주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노동자의 생활 습관을 미처 버리지 못한 그는 하루 종일 이곳저곳 집수리를 하며 부지런하게 보냅니다.
현재 월트의 낙은, 긴 총을 옆에 차고 문가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스스로 조립한 1972년형 그랜 토리노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것. 옆집에 시끄러운 몽족 가족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외롭긴 해도 평화로운 일상이었습니다.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월트가 무뢰한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자라오면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걸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대 안에 있다.” 그가 연기하는 월트 코왈스키가 동양인 이웃에게 총을 겨누거나 욕을 내뱉는 건 다반사입니다. 그런데 꼬장꼬장하던 그가 몽족의 아이들과 인연을 맺으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 타오 누나와 얘기를 나누는 월트 할배, 오른쪽에 빈 맥주캔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실제로 이스트우드는 맥주광으로 알려져있죠.
* 더티 해리의 마음을 바꾼 동양인 사회
<그랜 토리노>는 ‘몽족이 주인공을 맡은 첫 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몽(Hmong)족은 베트남의 소수 부족으로,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을 도운 대가로 모두 미국에 망명했습니다. 이들은 현재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미시간의 일부 지역에서 마을을 이뤄 살고 있습니다.
극 중 월트 코왈스키의 옆집으로 이사온 가족이 몽족이었고, 몽족 젊은이들로 이뤄진 동네의 갱단(일종의 양아치들)도 주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가능한 한 이들을 진실하게 담아내려고 했던 이스트우드는 몽족 커뮤니티를 통해 비전문 배우들을 영화에 캐스팅했습니다.
* 집 앞에서 얼씬거리는 양아치 패거리들에게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월트
월트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타오 역 또한 한 번도 연기해 본 적이 없는 고등학생 비 방이 맡았습니다. 열일곱 소년에게는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는 기쁨보다 16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초짜 연기자인 자신이 190센티미터가 넘는 ‘살아 있는 영화의 전설’ 앞에 마주서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몽족 캐스팅을 진행했던 이스트우드는 ‘타오의 이미지와 딱 맞아’ 비 뱅을 캐스팅했고, 그는 기대 이상의 연기를 해냈습니다. 아버지 없이 할머니, 어머니, 누나 틈에서 자란 타오에게 옆집 할아버지 월트는 일종의 ‘롤 모델’이 됩니다.
갱단의 협박을 받아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실패한 그는 사과의 표현으로 월트의 일을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월트가 해왔던 수리 일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습니다. 완고한 노인 월트와 수줍은 소년 타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그랜 토리노>의 소박한 코미디로 이어집니다. 두 사람은 마음을 열면서 조금씩 인간에 대한 믿음을 깨닫게되죠. 타오 역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몽족 커뮤니티는 모두 실제 몽족 사람들입니다.
* 동네 양아치들에게 총 쏘는 시늉을 하는 월트
제작자 로렌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미 해본 것은 하지 않는다. <그랜 토리노> 시나리오는 새로운 것을 제공했다. 월트는 그의 나이 및 캐릭터와 딱 맞았고 <더티 해리> 같은 그의 과거 인생을 현재로 끌어온 것 같다. 월트 또한 더티 해리처럼 법 없이 살고, 냉정하며,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클린트가 월트 역을 맡으면서 캐릭터는 더 발전했고 그는 새로운 영역을 정복했다”고 말합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마지막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연기할 때 효율적인 연출을 하기 위해 무선 휴대용 모니터를 이용했습니다. 카메라를 엿볼 필요 없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는 첨단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스스로 연기하며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랜 토리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마지막으로 연기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비주류 동양계 미국인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한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트우드는 “나는 항상 다른 것들, 다른 장르, 동시에 일반적이면서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어두운 주제를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요즘 트렌드나 10대 영화를 쫓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들이 영화 밖에서 더 많은 걸 얻길 바란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 동네 양아치들로부터 타오네 가족을 보호하려는 월트,타오는 이스트우드 오른쪽 남자애
<그랜 토리노>의 성공으로 몽족의 존재는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사람들은 외로운 독거 노인들의 노후 생활에 대해서도 성숙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이스트우드의 이전 영화들에 비하면 드라마가 깊거나 세지 않지만, 평범한 보통의 이야기 속에서도 감동의 드라마를 찾아내는 그의 내공을 보여줍니다.
인종 차별 문제를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랜 토리노>는 여느 인종 차별 반대 영화보다 큰 울림을 남깁니다. 결국 법 없이 살았던 더티 해리는 피부색이야 어찌 됐든 인간 없인 살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 용서받지 못한 자 >
형 만한 아우가 없고,스승 만한 제자가 없다는 옛말이 있지만 복잡해진 현대에서는 꼭 그렇지만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TV 연속극인 <로하이드1959)>에서 두각을 나타내다,이태리 출신의 개혁적인 명감독,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 이태리)에 의해 마카로니 웨스턴인 <황야의 무법자 (1964)>의 주인공으로 픽업된 이후,그와 함께 계속 만든 '무법자 3부작'으로 월드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평생의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그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바치는 (헌정)작품이라고 미리 발표를 하고,그와 첫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되는 시점에서 만든 이 서부극,<용서받지 못한 자>는 레오네가 평생에 이룬 성공의 몇 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성공을 거두었으니,과연 제자인 이스트우드가 이국인 스승,레오네 보다 못하다고 그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부 영화로 스타가 되었고 또 그때 번 돈으로 자신의 프로덕션(말파소)을 설립하여 (연기는 연기대로 하면서 한편으로)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새로운 영화인생을 출발한 그는 여전히 자기의 고향과도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 서부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하였죠.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1971)>가 성공을 한 이후,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로 연기자로서의 인기를 유지하면서,<Joe Kidd(1972)>같은 서부극에도 출연 하였고, 또 <High Plains Drifter(1973)>와 ‘The <무법자 조지 웨일즈(1976)>를 1970년대에 직접 만들기도 하였지만(감독) 별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도 <Pale Rider(1985)>라는 서부극을 한 번 더 만들었지만 역시 성공을 하지 못하여서, 이젠 정말 서부영화는 한 물 갔구나 하고 다들 생각하던 1990년대 초에 그는 마치 무슨 큰 도박이나 하듯 만사를 제쳐놓고 이 영화에 매달렸는데, 그동안에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의 안목도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지난 20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울 삼았는지 이번에는 제대로 된 명작 서부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 작품은 평론가들의 대단한 호평 속에 1993년도, 제65회 아카데미상에 무려 9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가 되고 작품상을 비롯한 4개의 상(작품상,감독상,남우조연상,편집상)들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스승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못 받았던 상들까지 대신 다 수상해준 것일까요?
서부극으로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대 성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AFI (American Film Institute)가 2000년에 선정한 100년간의 최고 필름 100에도 당당하게 선정이 되기도 했죠.
줄거리, 캐스팅, 촬영, 편집 등 한결 업그레이드가 된 이 서부영화에서 영화음악 역시 매우 세련되어 극중 분위기를 더욱 고급화 시킨데 큰 일조를 하였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메인 주제곡인 ‘클라우디아의 테마’는 10대 때부터의 꿈이었다는 음악가로서의 희망과 자질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스트우드가 실제로 직접 작곡한 곡이라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왕년의 무법자,지금은 애들을 데리고 캔자스 시골에서 돼지를 치며 꽤죄죄하게 살고있다
기타가 주 멜로디를 리드하고 잔잔하면서 관현악과 합쳐져 가는 이 주제곡의 성공은 이스트우드로 하여금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까지 손을 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작품이전에도 그는 이미 두 개의 영화음악을 만든 적이 있지만, 이 영화의 성공 이후, 그는 오랫동안 그토록 사랑하는 재즈에 기반을 둔 창작 실력으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와 <미스틱 리버 (2003)>,<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아버지의 깃발(2008)>,<그랜 토리노(2010)>에서 만만치 않은 음악적인 재능도 과시하였던 것입니다. 대단한 노익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곡 <용서받지 못한자>의 주제곡 '클라우디아의 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