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까르멘'(마놀로 처)으로부터 '와삽'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문, 생일 축하해! 그러면서 흔한, 그렇지만 생일축하곡 동영상 하나까지가 더 와 있어,
참내,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생뚱맞게...... 하긴 했는데,
고마운 건 맞지만,
무슨, 생일이냐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그 먼 곳에서부터 저에게 생일을 챙겨준 것까지는 어찌 아니 고마운 일이겠습니까만, 사실은 제 생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했던 반응이었던 건데요,
글쎄요, 얘기를 되돌리자면,
작년 '남미 방랑' 끝에 제가 스페인에 들러, 또 바르셀로나의 마놀로 집에서도 약 한 달(조금 못 미치게)을 머물렀는데,
얘기를 하자면, 언제라고 딱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는 일이지만, 그 사이에,
제가 바르셀로나에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는,
그들(특히 마놀로와 까르멘 집에서는)에겐 '가족행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매년 중요한 '명절'은 물론, 온 가족의 '생일'뿐만 아니라 각자 '축일'(영명축일)까지 따져가면서,
온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그런 날을 서로 축하해주고 선물도 주고받는 게 그들의 생활인데,
그 총 관장을 그 집안의 기둥인 '까르멘'이 다 맡아서 하는지라,
이 집안에 까르멘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은 비단 저만 하는 생각이 아닐 터거든요?
좌우간 까르멘은, (제가 본 것만으로도) 자기 양가쪽 부모님들을 극진히 모셨고(이젠 모두 돌아가심), 양가 형제들의 생일은 물론, 자식들까지 챙기더니, 이제는 늙어서도, 자식들로부터 나온 손자들까지도 챙기느라(밥 먹여서 학교 보내는 일까지) 어느 한 날 쉬는 날이 없을 정도라,
이 세상에 이런 여인이 또 있을까? 하는 경외감마저 갖게 하는 여인(노파)인데요,
지난번이었는지, 그 전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어 번 저한테,
문, 나는 니가 니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명절이거나 생일 같은 날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 죽겠어. 하기에,
까르멘, 나야 뭐, 혼자사는데... 그런 거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명절 같은 때야 형제들과는 함께 지내지만, 바로 내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일을 하면서 지내는 편이라서......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던 것 같은데,
그녀에겐 나 같은 사람이 명절(그들과 겹칠 수도 있는 '크리스마스'거나 신년 첫 날)을 주로 혼자서(그것도 일을 하면서) 지낸다는 말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던가 봅니다.
그래도 전 그들에게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고,
내가 당신들과 있을 때는 나도 당신들과 함께 즐기기는 하지만, 한국에선 나 혼자 그렇게 지내는 거지. 했던 거지요. 그랬더니,
그럼, 생일은? 하고 물어오드라구요.
생일? 글쎄, 난, 생일도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아. 혼자 살면서 무슨...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최소한 형제들이라도 뭔가 함께 하거나 챙겨줄 거 아냐? 하는데,
사실, 할 말이 없드라구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제 생일에 대해 기억하거나 아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이렇게 지내다 어느 날(?) 누님이거나 형수, 아니면 조카 등이,
내일(오늘, 몇 일)이 생일인데...... 하는 전화라도 걸어오면,
웬, 생일? 하고 화를 내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사는데, 왜 귀찮게 나에게 그런 걸 인식하게 하는지... 짜증을 내면서,
앞으론 제발 그런 일 좀 하지 마! 하면서, 나에게 생일 축하해주지 않아도 전혀 섭섭해하지 않거든? 그러니, 제발 그런 일 좀 하지 말아줘. 하고 버럭, 화를 내면서 부탁까지 하는 사람이니까요.
전, 사실, 그게 진심이랍니다.
그리고 우리네 생일(명절을 포함)은 '음력'이기 때문에, 대충 언제쯤인지는 짐작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를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는, 아예 그런 걸 생각지도 않고 지내는데,
조용히 사는 저에게 괜스레 '생일입네, 뭐네...' 알려주니,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고 짜증을 내는 거지요.
절, 내버려 달라고,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게 익숙해져서,
생일인지 뭔지... 명절인지 뭔지(명절은 알기는 하지요. 식구들이 모이긴 하니까요. 그렇지만 저 개인적으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조용히 일을 하며 지내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상태거든요.(저는 그게 더 좋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런 날일수록 정신집중도 잘 돼 일도 잘 되드라구요.)
그런 저에게, 그것도 먼 스페인에서,
생일 축하 합니다 ~ 하는 동영상까지 보내왔으니, 더구나 날짜도 정확히 모르면서 짐작으로 보낸 것이라,
웬, 생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까르멘을 이해 못한다는 건 아닌데,(이 세상에서 그처럼 훌륭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전데),
아니, 무슨 이런 일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럼, 다시 그 얘기로 돌아가,
까르멘으로서는, 제가 우리 가족과(비록 혼자 살기는 하지만, 적어도 형제들과) 그런 인생의 중요한 날을 어떻게 보내는지, 아주 궁금했던가 봅니다.(까르멘의 입장에서는 그랬겠지요. 그녀에겐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이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제 입장을 설명해줘봤자, 이해도 못할 거고,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기도 싫었던 저는,
나는 그런 걸 별로 중요시하지 않아. 정도로 얘기해줬던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르멘은, 제 생활이(그들은 제가 굉장히 가정적이자 정도 많은 사람으로 여기니까요.) 너무나도 궁금한지, 한 번은,
문, 부탁이 있어. 하기에,
뭔데?
혹시, 문... 니 생일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으면, 한 장만 보내 줘. 응? 하고 간청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인, 생일 때 가족과,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이벤트까지 하는 게 일상인지라.
그렇지만 저에겐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답니다.
언제 생일을 지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한테,(아마, 옛날에 어머니 살아계실 땐, 저 몰래 떡이라도 해서 주기에, 그 당시에도, 저는 (속으로)깜짝 놀라면서도, 그저 아닌 척... 받아들이곤 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그런 부탁을 해 오니......
그래서 저는 이런 얘기까지는 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 한국은 큰 명절은('설'과 '추석' 등)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여기서처럼 크리스마스 '신년 첫 날'을 그다지 화려하게 지내지 않기도 하는 거지. 특히 내가 더 그래. 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그들과 다른 게(가장 특별하고도 차이가 많은 게), 그들은 크리스마스 신년이 매년 똑 같은 날이지만,
한국에서는 명절을 '음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문, 생일이 언제야? 하고 묻기도 하기에,
난, 생일이 중요하지 않지만, 응, 음력 1월 생이라... 하면서, 양력 달력으로 치면, 대충... 2월의 한 날이기도 한데, 어떤 때는 3월로 넘어갈 때도 있어. 하고 그 정도로만 가르쳐주었었는데요,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십이지신' '띠' '사주' 같은 동양문화에 대한 얘기와, 그들의 '별자리' 등에 관한 얘기도 나오기 마련인데,
어차피 저야 그들에게 나이에 따른 '띠' 같은 걸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 '띠'마다의 특성 등을 얘기해 주면 너무 들 좋아히가도 하는 등,
그런 일은 상당히 잦게 벌어지기도 했거든요,
우리야 태어난 해를 중시하여, 열두 가지 띠가 있지만, 그들에겐 또 태어난 시점의 별자리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맞춰 보면... 저야, 한국에서는 '잔나비' 띠에, 별자리로는(이것도 그들 중심으로) '물고기 좌'여서,
그런 얘기까지는 까르멘에게 해주었답니다.
(다른 스페인 친구들에게도 그 정도는 얘기를 하니까요.)
그들과 함께 했던 사진들 모음(작년, 2022년 10-11월)
그랬더니, 재작년부턴가는 까르멘이 '설'만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아마, 스페인에서도 뉴스 같은 데서, '오늘은 동양의 신년 첫 날입니다.' 하고 나온답니다. '중국 명절'이라고요.),
문, 새해 복 많이 받아! 하는 문자를 보내오더니,
올해는, 급기야 생일까지 챙겨주기 시작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물고기 좌'라는 걸 기억해두었거나, 우리네 시골 노파들이 그러듯, 까르멘도 달력에 자기네 식구들의 그런 날들을 다 기록해두고 있는 걸 저도 봤거든요.
바로 그 '물고기 좌'가 2월 말에서 3월 초니까요.
더구나 올해는 까르멘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작년에 제가 그 집에 머물 때, 까르멘이 몇 년 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다던 그 집 마당의 벽면에 벽화를 그려주지 않았습니까? (제 지난 글 참조)
자기네 고향인 '갈리시아'가 그리워서인지, 거기에 바다를 그리되 '인어'를 넣고 싶어하던, 까르멘의 '꿈'(?)을 제가 실현을 시켜주었던 터라, (까르멘이 너무 고마워했거든요.)
문, 우리집의 인어는 여전히 완벽하게 아름다운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 하면서,
생일 축하해! 하고 '해피 버스데이 투유' 스페인어 버전의 동영상까지를 보내왔던 겁니다.
여러분도 상상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날이 날마다 그 인어가 그려진 바다 풍경의 벽화를 대하면서 까르멘은,
더욱이 이번에는 제 생일도 알았던 터라(그래서 그걸 꼬치꼬치 물었던가 봅니다. 그 때도 저는,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일정한 날짜가 없다고 했더니, 서양 별자리는 뭐냐고 물어서, '물고기 좌'라고 알려줬었거든요.),
2월 말, 물고기 좌에 맞춰,
생일 축하 합니다~ 하는 노래까지 불러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아마 제가 바르셀로나에 있었다면? 음식까지 준비해놓고 저를 불렀을 게 분명하거든요? 까르멘은......)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저는,
까르멘, 고마워! 내 생일까지 챙겨 줘서. 근데, 날짜는 아니거든? 그래서 찾아 보니, 이미 지났더라고...... 그래도, 고마워...... 하는 문자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아이, 이제는 먼 스페인에서 제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도 생겼네요.
다 늙은 나이에......
(제 진심은)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