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설교]
오늘 본문에서 스데반은 ‘성막’과 ‘성전’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우선 본문 44절에서 스데반은 ‘증거의 장막’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모세와 구약 백성들이 지은 ‘성막’을 가리킵니다. 또한 본문 46절에서 스데반은 ‘하나님의 처소’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이것은 왕정시대 당시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두 가지 모두 정확히 성막과 성전에 일치하지요.
그런데 본문에서 스데반은 이 두 곳을 가리켜 또한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본문 4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여기서 스데반은 앞선 성막과 성전을 일컬어 ‘손으로 지은 곳’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성막’과 ‘성전’이 모두 무엇이라는 뜻입니까? 사람의 건축물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당시 성막과 성전은 사실상 따지고 보면 정말 사람의 건축물이었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장막, 거룩한 집이라고 불렀어도, 결국 이 두 곳의 본질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두 처소는 결국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기에 결국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이 두 처소를 충분히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오셨기에, 더 이상 옛 처소는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스데반은 이 두 처소를 일컬어 ‘손으로 지은 곳’이라 통칭하며, 보란 듯이 새로운 성전 시대가 열렸다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49~50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스데반은 이사야 66장을 인용하며 이제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이 도래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성전이 도래하였다! 이것은 과거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개막입니다. 옛 성전의 경우, 그것은 다분히 사람의 건축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의 손으로 지을 필요가 없는 새 성전, ‘하늘의 신령한 집’이 도래할 것입니다. 이때 이 새 성전에 관해서는 바울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장 20~22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는 우선 그리스도 예수를 일컬어 모퉁잇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성전의 주춧돌이 되셨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 주춧돌 위에 돌들이 세워집니다. 이때 세워질 돌들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도인 우리를 상징합니다. 새 성전의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벽돌들이 서로 하나씩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스데반이 보았던 새 성전, 교회의 모습입니다. 곧 새 성전이란 과거처럼 인간의 건축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뜻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스데반은 또 다시 말씀합니다. 본문 51절 이하를 보면, 스데반은 이제 자신의 설교를 마치며 자신을 둘러싼 유대인들을 책망하기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때 이 현장의 분위기는 사실 살벌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언제라도 스데반을 죽이기 위하여 안달이 난 상태였지요. 그럼에도 스데반은 저들의 죄를 밝히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지금 자신을 둘러싼 무리뿐 아니라 과거 저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악까지 다 밝히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스데반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듯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52절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여기서 스데반은 자신을 마치 선지자 혹은 의인의 반열에 위치십니다. 지금껏 선지자 혹은 의인은 자기 동족인 유대인에 의해 죽임 당했습니다. 다른 민족도 아닌 자기 동족에게,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수많은 선지자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그들은 의의 복음을 전하려는 자, 스데반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왜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요? 왜 옛 언약 백성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 문제에 관하여 거듭 물고 늘어지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습니다. ‘너희는 어떠하냐? 과연 어떠하냐?’ 이렇게 물으며 우리는 과연 유대인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묻게 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자연히 우리로 하여금 혹여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이 단단히 굳었다면, 속히 그 악함을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혹여나 이 말씀을 계속해서 쳐내는 우리의 악한 본성이 있다면, 우리는 속히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고 나서, 우리는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가 곧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이 되었다는 사실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성전을 세우기 위해, 친히 우리의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감사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퉁잇돌이 되실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집이 되어, 영원토록 우리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오늘 하루 우리 모든 교우들의 삶 속에 충만하여, 늘 언제나 하나님의 집으로서 지어져 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