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들의 향연
김중기
‘아사삭’ 입안 가득 상큼한 향과 달콤한 과즙의 맛으로 아침을 연다.
못생긴 점박이 사과가 겉모양과는 딴판으로 맛이 좋다. 아버님이 생전에 농작물을 심고 키웠던 50여평
남짓한 밭에 사과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등 20여 그루의 과일나무를 오밀조밀 심었다.
채소를 먹으려면 밭을 갈아 씨 뿌려 비료 주고, 풀 뽑고, 소독을 반복하며 가을 끝자락까지 일하기가 힘들어서 쉽게 농사지을 요량으로 궁리 끝에 과일나무를 심은 것이다. 심어놓고도 과수 농사가 잘 될까 내심 걱정했는데 토질이나 주변 환경이 좋아선지 그런대로 과일나무 구실을 했다. 나무들이 신통하게도 잘 자란 덕에 2년 전부터 복숭아며 사과, 대추가 열매를 맺었고 실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과일 맛을 보았다.
과일나무는 꽃이 피기 전 가지치고 하늘바라기 꽃봉오리를 훑어 낸 후 얼마 지나서 꽃을 따내고 열매가 맺으면 또 솎고, 소독하고, 봉지 씌우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 과수농사도 쉽지 않은 농사임을 뒤늦게 나마 알아차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에 절로 머리가 끄떡여진다.
작년 과수 농사는 지지난해보다 형편없었다. 이른 봄 전지는 했지만, 지방선거 자원봉사 다닌답시고 꽃피고 열매 맺을 때 방치하다시피 했다. 꽃따기, 과일 솎기, 병해충 방제를 거의 하지 못했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과일나무는 설 농사꾼인 내게 보란 듯 못생긴 열매를 맺었다. 제대로 돌봐주고 관리하지 못해 미안 했고, 과일나무를 보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괜스레 창피하기까지 했다.
주인의 성의 없는 돌봄에도 얘네들은 제 할 일 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 싶다. 여기에 한 수 더 떠 새와 벌들이 익은 과일을 죄다 쪼아 놓았다. 벌도 먹고 새도 같이 먹었다. 새와 벌이 먹고 남겨 놓은 못난이 과일들, 한편으론 완전 무농약이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나만의 건강관리법인 음양탕 한잔을 마신다. 음양탕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반반씩 섞은 물이다. 30여분 지나 나의 애용과일인 사과 한 개를 먹는 습관이 꽤 오래되었다. 아침 사과는 금사과로 보약이라 하지 않은가. 색깔이 곱고 윤기가 나는 잘난 사과도 맛있는 놈이 있는가 하면 과즙도 적고 맛이 덜한 놈도 있다. 반면 좀 못생기고 흠집과 반점이 있는 사과가 더 맛난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사과와의 아침 시작은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의 출발이다.
며칠 전 ‘어쩌다 못난 김치’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농민들이 농사지은 배추 중에 상품성이 뛰어난 배추만 골라 팔고 남은 배추는 못생겼다고 버리는 게 절반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모 도지사께서 배추 재배농가와 김치공장을 연결해 겉모양이 못생긴 배추를 맛있는 김치로 만들어 판로를 개척해 인기리에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싼값으로 들어온 중국산 김치를 제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살리고 농민들의 자존심도 지키면서 농가소득도 올린다는 못난이 김치, 못났어도 맛있어 잘 팔린다는 소식은 농사꾼인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다.
못난 것과 잘난 것은 우리 주변에 부지기수로 많다.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나 물건을 바라볼 때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있다. 못나도 맛있고 영양 많은 과일과 식품도 많을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겠는가. 과거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멘트로 인기상승 가도를 달린 황제 코메디언이 있었다.
개성이 넘치는 그 분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웃음을 선사하며 즐겁게 해주었는가. 또 외모 콤플렉스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위안을 주었던가. 참으로 고맙고 존경스런 연예인이다. 이제 고인이 된 그 분을 종종 유트브에서 만난다.
얼굴이 잘생긴 미남 미녀가 인생을 잘 살고 사회모범생은 아닐 것이다. 못난이 과일이나 못난이 김치가 제구실을 잘 하는 것처럼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 사회에 자양분이 되는 사람, 이웃에 덕을 베푸는 인정 많고 존경받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길 기대해본다.
요즘 인터넷에서 ‘못난이’를 검색하면 각양각색의 못난이들이 무수히 등장을 한다. 농산물, 생필품, 식품을 비롯해 각양각색의 물건들...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갖 못난이들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며 큰 소리로 합창하고 춤추며 향연을 벌이고 있다. 고물가시대 저렴한 가격의 못난이 제품들이 전성기를 맞아 판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지친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이 되길 바란다.
어려서 내성적인 성격 탓에 종종 못난이라 놀림을 받으며 커온 나도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진정한 못난이로 남은 생애를 보내야겠다. 오늘 아침, 모진 시련을 견디고 내게 와준 향기품은 못난이 사과가 고맙고 기특하다. 못난이들아! 장하고 고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