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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황제의 손에 친아들의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푸스의 제거인데, 크리스푸스가 황제인 아버지보다 위명이 높아지니까 제거했다는 식으로 누구는 얘기하지만,
콘스탄티누스는 그 정도로 구제불능의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건이라면....
콘스탄티누스가 죽인 막시미아누스의 딸, 파우스타에게 죄를 물을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
파우스타는 비록 콘스탄티누스가 아버지와 오빠를 죽였지만 여전히 콘스탄티누스에게 충성했고, 그 결과는
많은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파우스타가 왜 콘스탄티누스에게 충성했을까? 그건 콘스탄티누스가 결국 그녀의
자식들에게 제국을 상속할 거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크리스푸스가 갈수록 위명이 높아지니 이건......
파우스타는 베갯밑 공사로 크리스푸스를 갈리아 지역 담당 카이사르에서 해임시키고 그 자리에 자기 큰아들을
올려놓는데, 결국 제거에는 실패한 모양입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정말로 크리스푸스에게 위협을 느꼈다면 해임한 그 단계에서 바로 살해를 하거나 구금헸어야 합니다. 티베리우스는 세야누스를 죽일 때 그렇게 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벨리사리우스에게 그렇게 하려했고, 유스티누스 2세가 그런 식으로 나르세스를 쳐냈습니다.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그 다음 단계. 자신과의 불륜 관계였다고 속이는 것. 콘스탄티누스는 욱하는 성질이 다분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극하는 게 아주 효과적이었지요. 해서 크리스푸스가 단박에 죽었지만, 콘스탄티누스도 실상을 깨달았고,
파우스타에게 신속한 죽음을 내립니다. 결국 파우스타도 제거.
해서 남은 게 골칫덩이 철부지들이었는데...이건 일단 나중에.
아직 안 다룬게 있어서 그걸 짚고 넘어가도록 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건립 외에 콘스탄티누스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히는 것이, 니케아 공의회의 개최입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당시 선풍적으로 밀어닥치던 아리우스 파가 이단으로 단죄되었고, 아타나시우스 파로 알려진
삼위일체가 정통 교리로 채택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나올 수 밖에 없는 모작가 얘기.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모 작가의 해석이
문제가 되는 건 ,콘스탄티누스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무슨 행위를 했다하면 그 모두에 심층적인 배려가 있었다고 해석을 하는 건데
(.....유명한 예: 카이사르가 빚을 많이 진 것은 크라수스에 대해 강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다!!!!
아....이거 진짜...... 미안하지만 이건 박조께서 일제 국민학교 다니실 때 뒤에서 삼등 한것을 두고 황민화 교육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한 갑제 본좌의 해석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_-
그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빚을 변제받을 능력이 없는 놈이 자꾸 빚을 얻으러 오면 끝내는 몸으로 때우도록 하는 건
동서고금 마찬가지입니다. 실상은 크라수스가 카이사르에게 투자를 했던 것임에 불과합니다.
이런 식의 투자는 크라수스 말고도 고대의 부자들이라면 누구나 했던 방식입니다. )
그리스어도 어눌했던 콘스탄티누스가 자기도 이해 못하는 유의 교리 따위가 정통 교리로 채택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는 이건 어불성설의 얘깁니다.
실인즉슨,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교리가 국가 통합에는 더 유리합니다.
핵심 문제에서는 대단히 간단명료한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유태교를 생각해보면 나오는 결론입니다.
콘스탄티누스 같은 경우도 이해하기 쉬운 아리우스의 교리에 마음이 더 기울어져있었고요.
(성자는 성부와 동등한 신이 아니며, 성부보다 한 단계 낮은 신으로써 성부의 피조물이다.
----> 아리우스 자체는 대단히 신실한 크리스트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도 성자가 인간이고 신이 아니다, 라고까지 주장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리우스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아타나시우스가 오독을 했고, 혹은 그렇게 몰아붙였습니다.
나중엔 아리우스 파들마저도 헤깔려서 이런 식으로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서 그렇지만, 아리우스 자신은 그렇게까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교리 논쟁들 보면 거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세싸움들하고 아주 똑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
그러나 왜 콘스탄티누스가 개최한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의 결론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는가?
이로 인해 수많은 오해와 억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황제 교황 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풀어가면 답이 나옵니다.
소집자고, 의장이라고 해서 회의에 참여해서 결론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낼 권리가 황제한텐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콘스탄티누스는 황제고, 주교가 아니며 교회의 위계 체제 밖에서 교회를 보호하는 수호자일 뿐.
공의회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결론을 낼 권리가 있는 것은 위계가 높은 대주교들이었고, 그것은 이후의 공의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위일체론은 그 시초가 교부들한테까지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주류 세력들이었기 때문에, 신흥 이론 세력인 아리우스
파로써는 제아무리 일시적인 우위를 점했다한들 보수파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의회가 신도들의 표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얘기를 풀려면, 플라톤 주의와 원수정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하니까, 이에 대해선 글 하나를 더 려서 더 자세히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여하튼 일단 이정표는 정해졌고, 콘스탄티누스는 오래된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서,
이후 황제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이 선례를 마구 깨려 들었던 후임 황제들이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은 아주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가 원로원 역할, 그리고 철학자 역할을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주교와 사제단 자체가 실은
고대 유태교 랍비들과 선지자들의 후예라기보다는 (자기네는 그렇게 믿고 싶어했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제자들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역시 부정하고 싶어했지만)
근데.....그러거나 말거나, 콘스탄티누스는 그딴거 관심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교리 문제만 매듭졌으니 그 다음은....
도시를 봉헌하는 문제가 남았는데.....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의 폐허 위에 로마 노바를 지으면서, 뭔가를 깨닫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좀 아깝네...도시를 지어서 왜 봉헌하냐? 그냥 내가 가져야지...."
(엠비우스도 이렇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_- )
즉, 자신이 사도도 하고, 신도 해야겠다!!!!
해서 미친 듯이 신 도시 건설 공사가 강행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없는 재정에 무리를 해서 각지의 신전에서 석재를
공출하고 예술품을 공출했으니 이건 뭐....
해서 불과 한 오륙년만에 소위 로마 노바라는 도시 하나를 뚝딱 해치워만듭니다.
실로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었고, 콘스탄티누스 자신은 대단히 만족했습니다.
중앙 성당이란 곳에는 12사도 무덤이란 걸 주변에
빙 둘러 만든 뒤 중앙에 자기 꺼 하나 세운 모양인데, 이게 후대에 12사도와 동급이니 뭐니로 알려진 시초였습니다만,
콘스탄티누스의 의도는 그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잖으면 도시 중앙에 대가리 모양을 자신을 본떠 만든 태양신 주상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의 목표는 바로 12사도보다도 우위인,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였습니다.
도시도 결국은 콘스탄티누스 자신은 만족의 의미로, 남들은 경멸의 의미를 붙여 부른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으로 통칭되었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업적 중 일부가 그랬듯이 영 속빈 강정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겉보기에는 썩 좋았는데, 모든 것이 부실에 부실의 연속으로 지은 날림 공사의 집합체였기 때문에,
벌써부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가 되면 콘스탄티누스가 지은 건 고작 기둥 몇개만 꼴랑 남은채 전부다 새로 지은 것이
들어서게 됩니다만.... -_- 물론 콘스탄티누스 의도는 아니었고, 콘스탄티누스 자체가 상당히 뭐랄까, 그런거 있잖습니까.
군대 다녀온 분들이면 다 아는 그런거.
"아, 그 기간 안에는 도저히......."
"이 색히, 기간 안에 안되면 알아서 해!!!! 누군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뭐 이럼 동서고금 다 똑같습니다.
"제길할....야! 눈에 보이는 부분만 삐까번쩍하게 해!!! 아 씨 철사가 부족해? 네 개 할거 두개만 집어넣어, 하루 이틀 해보냐?
검열할 때만 대충 넘어가면 되...
석재가 부족해? 야 임마 부족하면 니가 알아서 때워야지....... 옆에 작업하는 얘들 꺼 밤에 셉여서 끼워넣어! "
....분명히 말하건데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행보관들의 땀과 노고로 완성된 도시였던 것입니다. -_-
전방 막사라면 모르겠는데 일국의 수도를 그 따위 마인드로 지었으니 결과는 너무 뻔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근거는 없지만,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세웠다는 성벽도 그딴 식으로 세워졌을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말년에 과대망상증에 걸린 황제의 닥달질에 관료들이 거의 공포에 질린 채 속전속결로 완비하려 했기 때문이죠. 뭐 나중에 도시를 확장하면서 어물쩍 철거된 모양인데, 부실 공사로 지은 성벽이라 허무는 건 좀 쉬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도 선견지명이라고 보면 아주 곤란하지만 말이죠.
여하튼 콘스탄티누스는 죽기 전에 기독교도로 개종하고 죽어 소원대로 12사도보다 더 높은 자리를 상징하는 위치에 안장됩니다. 소원대로 그는 죽어 신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가톨릭에서도 정교회에서도 명실공히 성인으로, 일명 성 콘스탄티누스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건, 앞서 언급한 철부지들의 시대인데.... 그래도 후대의 진행 경과를 아는 저는 이들을 구태여 단죄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호부견자 없다고, 그래도 철부지들이 모 작가의 묘사와는 달리 전쟁이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기본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단죄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경제에 대한 무관심인데, 전쟁이나 정치도 아예 못했던 테오도시우스 아들들의 바보 듀엣 쇼에 대면 뭐......-_-
첫댓글 그럼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성벽도 초기엔 부실공사로 투석기 돌 한방에 무너질 수도 있는 그런류의 성벽이었다는 겁니까!!!!!!!
아놔 행보관들의 땀과 노고에 눈에 습기가 차는 군요...
콘스탄티누스 아들네미들을 그렇다고 옹호도 할 수 없는게, 죄다 조룹니다. 그나마 둘째네미 콘스탄티우스가 낫긴 하지만, 그인간도 결국 지 애비가 만들어놓은 외교니 군대니 방어시스템이니 말아먹고 죽었죠. 동로마도 메소포타미아 지역 방위망이 스위스 치즈 꼬라지가 됐고, 서로마는... 마그넨티우스 반란 여파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시절까지 미치는...
그나저나 비잔티움 연대기 각 건물 설명에 보면 의외로 자주 무너지네... 싶고, 어라, 뭔놈의 수도 건물들이 이렇게 자주 무너진데... 싶던 게 결국은 부실공사 때문이었군요. 거 참...
현재까지도 종종 일어나는 발칸반도와 소아시아 반도 일대의 지진도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게다가 그 쪽 동네도 원래 전란이 잦았던 동네고 하니.. 물론 수도도 저 따위로 지었다는건 좀 충격이네요-.-;
저 천하의 안테미우스가 각잡고 쌓은 테오도시우스 성벽도 지진크리로 무너진 적이 있긴 하니 하긴 지진 영향도 무시하긴 힘들겠네요. 그래도 부실공사는 좀...(...)
젠장....;;;;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갈굼당하는 행보관들과 그 행보관들의 채찍에 더 갈굼당하는 병사들의 노고는.. 안습입니다.
재정은 부족하고 시간은 부족한데 황제관료들은 닥달하고 아놔.....알게뭐야 내가살것도아닌데 란 식으로 지은거군요=ㅅ=
슬프군요..
사소한 의견도 경청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던 아우렐리우스 시대와는 완전 딴판이군요;; 황제들이 죄다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가;;
그보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건립 계획을 곧이곧대로 밝히면 목이 위태로울 지경이니 저런 꼼수를 썼던 것입니다. 4두 체제 때야 국가가 위태롭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저때는 그게 안 통할 때라서....
혹시.. 아리우스파, 아타나시우스파, 단성론, 단일의지론, 성상파괴자, 성상숭배자.., 이슬람화된 기독교계파들.. 등, 이슬람교 등장 전까지의 고대 기독교 종파들의 이합집산과 교리차이 등에 대해 정리해주실 수 있나요? 너무 헷갈려요.. 쩝. ㅠㅜ.
네스토리우스 파가 제게는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옛날에 소위 '역사적 예수'에 심취해서 그런가... 아리우스는 예수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고 했지만, 네스토리우스 파는 예수가 인간에 더 가깝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키릴루스 파의 모함입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론을 주장했을 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체만 낳았을 뿐이다.) 키릴루스 파는 이 이론이 성자의 신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양대 가톨릭파는 이 주장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나중 얘기지만 네스토리우스파의 주장과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기독교의 종파가 바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입니다. (네스토리우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일부 성상 파괴파 황제들도 비록 네스토리우스파는 아니었으나 (그러나 심정적인 동조자였을 혐의는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흠, 프로테스탄트도 네스토리우스 파처럼 성모 숭배를 찬성하지 않으니까요. 성모 승천설을 부정한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