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술 한잔을 사줘도 되냐고 물었어 /이병률
옆자리의 누군가 물었지
술 한 잔을 사줘도 되겠냐고
북유럽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건
대단하다 못해 넘치는 용기
스웨덴에서 왔다고 했어
용기에다 술의 관을 꽂은 것은 북유럽 사람다웠지
스물한 살이라고 하길래
입장을 바꿔 내가 사줘도 되냐고 물으려다 술 한잔을 받았어
아시아 사람하고 처음 이야기를 하는 거래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했어
보드카를 마셨느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맞대, 그랬대
할머니가 집에서 보드카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맛이랑은 달랐을 거라는 거야
달랐을 거야
나는 너의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없으니
할머니의 손길, 너희 집 앞을 흐르는 개울물,
헛간에 걸어놓은 훈제 생선, 사탕을 담은 유리함,
눈발에 며칠 내놓은 술독에 쌓인 눈들,
네가 올라가서 잠을 자던 다락방이 있는 집은 통나무인지
너는 긴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
이번엔 내가 술을 사도 되냐고 물었어
모르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한다는 건 참 이상하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약속을 한다는 건 더 묘하지
"내가 할머니를 보러 갈게, 너는 여행을 계속해."
나는 말한 그대로 약속을 꼭 지켜야만 하는 성질의 사람이고
지구 반대편의 일과 사람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지
내가 할머니를 보러 갈 테니 그러니 세계여, 전쟁을 멈춰주세요.
ㅡ계간 《상상인》(2023, 여름호)
<카페 '아름다운 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