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개국한 지 3백년이 지난 1703년, 이형상(李衡祥)이란 사람이 제주를 다스리는 목사로 파견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형상은 제주도에 도착하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아시다시피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유교의 성인인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살았지요.
헌데 그런 한반도 본토의 사람들과는 달리, 어찌된 건지 제주도의 주민들은 공자나 맹자 같은 유교의 성인들을 모시는 서원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럼 섬 사람들은 공자와 맹자 대신 무엇을 섬겼을까요? 그것은 짐승과 정령 및 귀신이었습니다. 이형상이 제주도에 부임했을 때, 제주도 전체에는 뱀이나 귀신과 도깨비를 섬기는 신당이 무려 129개나 가득차 있었고, 주민들은 그런 신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골몰했다고 전합니다.
여기에 이형상을 거의 기절초풍하게 만든 한 제주도의 충격적인 풍습이 있었는데...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맡아 제주도의 명물로 알려진 해녀들이... 옷을 모두 벗고 즉 알몸을 하고서 바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해녀들이... 벌거벗은 채로 바다에 들어가서 전복을 캐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게다가 제주도 주민들은 근친혼이 금지되어 있던 조선 본토의 사정과는 달리, 같은 성을 가진 남녀들도 마음대로 서로 결혼을 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엄격한 유학자였던 이형상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여, 제주도의 풍속을 강압적으로 바꾸는 조치를 했습니다. 그는 우선 제주도 각지에 즐비한 온갖 신들을 섬기는 129개의 신당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해녀들이 알몸으로 바다에 잠수하거나 같은 성끼리 혼인하는 풍습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신당 대신 서원을 짓고 주민들에게 유학 경전 공부를 장려하였죠.
이런 식의 제제 이외에도 이형상은 회유책도 구사했습니다. 제주도의 시조인 고을나와 양을나와 부을나 세 형제를 모신 삼성 사당(三聖祠堂)을 세워, 모든 관원들과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것은 제주도 주민들을 배려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형상은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학문을 장려하고 미신을 없애며 주민들의 풍속을 교화하여 그를 칭송하는 송덕비가 제주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만... 글쎄요. 원래의 풍속을 억지로 금지당하고 살았던 제주도 주민들이 과연 이형상을 진심으로 존경했을까요? 어쩌면 마음 속으로 울분을 삼키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좀 더 두고 본다면, 이형상의 노력이 제주도 주민들의 마음에 그다지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형상의 부임이 끝난 이후에도 제주도 사람들의 토착 신앙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았으니까요. 조선이 망하고 나서 일제 시대에서도 제주도 사람들은 여전히 뱀과 귀신을 섬기는 신당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에 기독교 열풍이 불었을 때에도 유독 제주도에서만은 전통 신앙이 워낙 강한 탓에 교회가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제주도의 고유한 신앙과 문화는 끈질기게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바리데기 공주 설화를 비롯하여 대별왕과 소별왕, 미륵 창세 신화 같이 한반도 본토에서는 사라져 버린 한국의 오래된 신화들이 다시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 덕분이었습니다. 숱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섬 주민들끼리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제주도의 구전 문화와 무속 신앙들이 20세기 말에 들어서, 신화와 민속 연구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공개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제주도는 우리가 잊어버린 조상들의 고유한 문화의 원형을 보존한 산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이형상의 조치가 어떻게 보면 참 아쉽네요.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 중 하나를 아깝게 없애버렸다고 해야 하나요?
추신: <어메이징 세계사>에 이어 <어메이징 한국사>도 드디어 2쇄에 들어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_^~
첫댓글 한국사 책 쓰는 사람이 일제강점기를 일제시대라고 쓰네;;
둘다 혼용해서 쓰지 않음?
쉽게설명하면 일제강점기는 강제로 당했다는 뜻이고 일제시대는 일본을 인정?했다는 뜻임 강점기가 맞는표현
요새 제주어 점점 사라지는것도 아쉬워 ㅜㅜ 요즘 애기들도 사투리 잘 안 쓰더라
유치원 어린애들 다 사투리써여ㅠㅠ제사촌동생 5살짜리도
맨날 사투리로 앵알앵알대는데 너무귀여움
내가 정말 놀랐던 건 '아래 아'가 원래는 'ㅗ'와 'ㅓ'의 중간발음을 나타내는 문자라서 제주도 사람들은 보통 아래 아를 'ㅗ'로 발음함. 그래서 컴퓨터프로그램인 한글도 제주도에서는 혼글이라 발음하는데(물론 안 그럴수도 있지만 여튼 내 주위에서는ㅎ)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보니 제주도 애들만 빼고 다들 한글이라 발음해서 멘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