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봄
박 낙 순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봄이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있다.
오후 들어 잿빛 하늘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마음까지 흠뻑 젖게 한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달게 마시며 라디오 볼륨을 키워본다.
사모곡의 음률이 전파를 타고 핏줄을 타고 온몸을 마비시키듯 내 어머니의 애절한 아
픔이 되어 흘러나온다.
어머니,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큰 바위
요, 푸른 소나무요, 바다같은 내 어머니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항상 집을 비우셨다.
어느 영화배우 뺨치게 닮았다는 아버님은 온 동네의 스타아닌 스타로 사셨기에 가장
의 무거운 짐은 어머님의 몫이셨다.
지금도 먹지 않은 음식,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
빵을 싫어하고, 통조림을 싫어하고, 농약이란 단어를 끔찍이 싫어한다.
네 식구 생계를 위해 젊음을 아니 일생을 다 바친 어머님의 피와 땀이 진한 얼룩처럼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농약 중독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 이셨던 그 해 봄을 또한 싫
어한다.
봄은 잔인한 계절인 것 같다. 어머님의 가슴 깊이 묻은 아들은 벚꽃의 꽃잎이 봄비에
흠뻑 젖던 날, 홀연히 이승을 떠나갔다.
이승과 저승의 길이 한 순간임을⋯⋯
천국과 지옥의 길이 또한 한 순간임을 안 그날이다.
앞서가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붙들려는 어머님의 처절한 몸부림이 응급실 밖의 죽음과
도 같은 시간들을 멈춰놓고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이미 거두어 간 가슴을 어루만지고
계신 아버님의 표정없는 잿빛 얼굴이 망부석이 되어버린 듯 끝내 하늘마저 서럽게 울던
그날, 웬 봄비는 그리도 무섭게 내리던지 그 날의 영상이 환영처럼 스쳐간다.
궁핍한 집안 살림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자원했던 아들이다.
몇 푼 안 되는 군대 월급으로 믹서기와 아버님의 손목시계를 사왔던 자상했던 그 아들
이 이젠 불효자가 되어 어머님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 남아있다.
못난 어미 만나 살아생전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다 떠난 아들을 당신
탓이라며 자책으로 사시는 어머니, 단 한 번도 삶에 생활에 지친 모습을 자식들한테 내
보이지 않으셨다.
외아들을 신앙처럼 믿고 의지하고 사셨던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의 가슴에 깊이 박힌
옹이가 남은 인생을, 남모를 가슴앓이를 잔인한 사월의 봄을 어떻게 보내셔야 될지 아
픔으로 다가온다.
사월의 만개한 벚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가슴에 꽃비가 되어 쏟아져 내
릴 그 봄은 시린 겨울을 밀어내고 있다. 만개한 벚꽃만큼이나 환하게 웃으셨던 지난 날
의 그 모습을 되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힘들고 모진 세월을 묵묵히 살아오신 어머님을 위해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드리고 싶
다. 오라버니처럼 자상하고 살가운 딸은 못되지만, 내 영혼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어머
님의 영원한 동반자로, 부족하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아니 이젠 삶에 지친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질 수 있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새옹지마란 말이 있듯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 있으면 행복에 겨운 날도 찾아오는
법, 어머님의 새로운 인생의 봄을 맞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들을 낳으면 기차를,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 있다.
이제 그만 옛 추억의 간이역에서 내리시고 확 트인 창공을 마음껏 날 수 있는 비행기
에 탑승하시길………….
어머니, 사랑합니다!!!
2006/23집
첫댓글 힘들고 모진 세월을 묵묵히 살아오신 어머님을 위해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드리고 싶
다. 오라버니처럼 자상하고 살가운 딸은 못되지만, 내 영혼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어머
님의 영원한 동반자로, 부족하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아니 이젠 삶에 지친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질 수 있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