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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년전에 썼던 글에서 새롭게 2010년 드래프트 이후 를 반영했고 전체적으로 글을 둥글게; 다듬 었습니다.
2012-2013 시즌 KBL에서 뛸 외국인 선수를 뽑는 2012 KBL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가 32일 앞으로 다가왔다. 프로농구 10개 구단은 다음달 23~25일에 있을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선수들중 팀에 필요한 이를 2011-2012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선발하게 된다. 그렇기에 상위 지명권을 가진 팀이 좋은 선수를 뽑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동안 지명순위와 실제 활약이 반드시 비례했던건 아니다. 실망스러웠던 상위지명선수, 최정상급 활약을 펼친 하위지명선수 를 찾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라는 말이 있다. 미래를 정확히 맞출순 없지만 과거를 반추해 예측 하는건 가능하다. 역대 외국인 선수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상위지명은 어떻게 해서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 했고 하위지명은 어떤 스타일이 대박을 터뜨렸는지 어느정도 파악할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역대 지명순위별 최고 선수를 선정해 보았다.
1순위 마르커스 힉스(2001년, 대구 동양)
2001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동양 오리온스 김진 감독의 선택은 마르커스 힉스 였다. 구단 고위층은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안드레 페리를 뽑길 바랬지만 힉스를 원한 김진 감독의 뜻은 단호했고 결과는 대성공. 동갑내기 신인 포인트가드 김승현과 찰떡 궁합을 자랑하며 런닝 빅맨의 위용을 뽑낸 힉스를 앞세운 동양은 2001-2002 시즌 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전시즌 꼴찌가 우승을 차지한 것도 사상 처음. 이듬해에도 힉스는 동양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2시즌 연속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다. 연속 MVP를 차지한 외국인선수는 힉스를 제외하면 조니 맥도웰(3연패)뿐이며 2회 이상 MVP를 수상한 이도 힉스와 맥도웰 둘 밖에 없다.
힉스는 개인과 팀 성적 모두 압도적이었지만 그 등장 자체에 아주 큰 의미가 있다. 힉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KBL의 골밑은 멕도웰이 지배했다. 각 팀들은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멕도웰에 맞서기 위해 그와 체형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선수를 앞다퉈 영입했고 그 결과 "제1차 무게 전쟁"이 발발했다.(제2차 무게 전쟁은 나이젤 딕슨이 등장했던 2005-2006시즌에 있었다.) 기술보다는 힘이 좋은 선수들의 득세가 경기력의 저하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많이 나왔다. 이때 힉스가 나타나 천하통일을 하게되자 각팀들은 힘을 앞세운 '맥도웰 류'보다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테크니션의 선발을 선호하게 되었다.
힉스
01-02시즌 24.2득점 8.2리바운드 3.7도움 2.9블록->블록1위, 득점4위, 통합우승, 외국인선수 MVP, 챔프전 MVP
02-03시즌 26.1득점 8.6리바운드 4.8도움 3.2블록->블록1위, 득점2위, 정규리그 우승, 외국인선수 MVP
*2003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먼저 호명된 찰스 민렌드는 첫 해 소속팀(KCC)을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듬해부터는 자유계약을 통해 들어온 외국인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최정상급 기량을 자랑했다.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클리프 리드(1997년 기아) 마이클 매덕스(2000년 골드뱅크) 힉스(2001년 동양) 민렌드(2003년 KCC)등 4명이며 특히 매덕스는 부상 때문에 31경기 출전에 그쳤음에도 재계약을 이뤄냈다. 재계약에 실패한후 드래프트에 나와 지명된 선수는 에릭 이버츠(1999년 나산 1순위->2000년 LG 4순위)와 테렌스 섀넌(2007년 전자랜드 1순위->2008년 SK 9순위)이 있다. 특히 섀넌은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2002년 울산 모비스가 1순위로 지명했던 채드 핸드릭은 부상을 당해 못나오다가 퇴출이 결정된 다음에야 데뷔전을 치룰수 있었다.
2순위 앨버트 화이트(2003년, 인천 전자랜드)
그 유명한 민렌드는 2003-2004 시즌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고 팀을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이런 민렌드를 두고 누구와 비교하면 '플레이의 시야'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곧잘 나왔는데 그 대단한 누구가 바로 앨버트 화이트다. 화이트가 첫시즌에 기록한 경기당 26.2득점 8.8리바 7.5도움 1.9스틸 1.2블록의 성적은 지금 봐도 경악 그 자체다. 팀에 제대로된 포인트가드가 없고 문경은을 제외하면 준수한 득점원도 없었기에 화이트는 공격의 모든것을 혼자 해냈다. '화이트의 원맨팀'전자랜드는 명장 유재학 감독의 지휘 아래 예상을 뒤엎고 정규리그 4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화이트는 이해 정규리그에서 트리플 더블을 8차례나 작성했고 이건 아직도 단일시즌최다 기록. 크리스 윌리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화이트는 KBL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뛰어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화이트
03-04시즌 26.2득점 8.8리바운드 7.5도움 1.9스틸 1.2블록->득점2위, 도움3위, 정규리그 4위
04-05시즌 23.3득점 9.5리바운드 5.4도움 2.1스틸 0.9블록->득점6위, 도움7위, 리바운드9위
*역대 2순위 지명 선수중 제이 웹(1997년 현대)-레지 오코사(2007년 동부)-로렌조 홀(1999년 SK 지명후 현대로 트레이드)는 소속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웹과 오코사는 통합우승)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화이트가 유일하며 재계약 실패후 드래프트에 나와 다른팀의 부름을 받은 이는 워렌 로즈그린(1998년 나산 2순위->1999년 나래 7순위)과 안드레 페리(2001년 삼보 2순위->2002년 여수 17순위)가 있다. 원년 2순위 제럴드 워커는 소속팀 SBS의 재계약 제안을 거부하고 NBA 진출을 노렸으나 실패해서 다시 돌아왔고(1998년 SBS 1순위) 2000년 동양에 2순위로 지명된 데이먼 플린트는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현대로 트레이드 되었다. 2002년 삼성에 2순위로 지명된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시즌 개막을 얼마 안남기고 총에 맞아 사망했다.
3순위 데릭 존슨(2002년, 원주 TG삼보)
가장 대어가 없는 지명 순위.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역대 최대어' 김주성을 잡은 TG는 '슈퍼루키'의 부담을 덜어줄 파트너로 KBL에서 뛴적이 있는 정통센터 데릭 존슨을 선택했다. 존슨은 김주성과 함께 TG의 골밑을 든든히 지키며 팀을 정규리그 3위로 이끌었지만 막바지에 부상을 당하며 플레이오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존슨이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TG는 리온 데릭스를 '완전교체'가 아닌 '일시대체'로 영입했는데 그 이유는 존슨과의 다음 시즌 재계약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릭스의 (존슨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활동범위와 패싱력을 만난 김주성과 데이비드 잭슨은 공격 본능을 마음껏 뽐냈고 이둘의 활약을 앞세운 TG는 예상을 깨고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존슨 재계약은 없던일로.
존슨
02-03시즌 18.9득점 10.9리바운드 2.2블록->블록4위, 리바6위, 정규리그 3위
*3순위 지명 선수중 재계약에 성공한 이는 없다.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후 드래프트를 통해 재입성한 선수는 무스타파 호프(1999년 동양 3순위->2000년 삼성 11순위)와 브랜든 크럼프(2007년 KCC 3순위->2008년 LG 13순위)가 있다. 1998년 SK에 3순위로 지명된 토니 러틀랜드는 하프 코리안 으로 주목받았다.
4순위 에릭 이버츠(2000년, 창원 LG)
에릭 이버츠는 KBL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에 무려 5번이나 참가했다. 원년 드래프트에선 호명되지 못했지만 모기업 사정상 늦게 외국인선수를 수급했던 나산에 영입되어 득점2위의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나산과의 재계약에 실패했고 그 후 2회 연속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구단들의 담합과 교통사고의 악재가 겹치며 지명되지 못했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처음으로 호명되는 영광을 누렸고(1순위, 나산) 득점왕에 올랐지만 또 다시 재계약 실패.
2000년 다시 KBL의 문을 두드렸고 LG에 전체 4순위로 지명되었다. 이해 드래프트를 앞두고 외국인선수 선발 제도가 기존의 단신-장신 한명씩 선발 방식에서 두선수 신장 합계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는 이버츠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아 자신의 주 포지션인 스몰포워드-파워포워드로 활약한 이버츠는 정확한 중장거리 슈팅으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다. 나산(99-00시즌)시절 득점왕에 올랐음에도 팀 사정상 장신으로 분류되어 센터로 뛰었기에 3점슛 시도는 45경기에서 60개에 그쳤지만 LG에선 무려 197를 시도해서 99개를 넣었다.(성공률 50%) 팀동료 조성원-조우현과 3점슛 379개를 합작한 이버츠의 활약을 앞세운 LG의 '김태환 표 공격농구'는 재미와 성적을 모두 잡았고 폭발적인 홈관중 증가로 이어졌다. 이버츠는 LG를 정규리그 2위로 견인하며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시즌 도중 친정팀인 코리아텐더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버츠
00-01시즌 27.8득점 10.1리바운드 2.2도움 1.8스틸 1.5블록->득점2위, 스틸5위, 블록10위, 정규리그 2위
*4순위로 지명되어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이버츠와 버넬 싱글튼(1998년 삼성) 뿐이다. 칼레이 해리스(1997년 나래)는 폭발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독단적인 플레이 때문에 그 후 KBL 코트를 밟지 못했다. 2008년의 리카르도 포웰(전자랜드)과 2009년의 허버트 힐(오리온스)은 4순위 지명으로 기록되지만 실질적인 그해 1순위 였다.(2008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재계약 선수들의 지명순위를 소속팀 성적과 관계없이 가장 상위로 기록하면서 그 이후 공식적인 1순위는 모두 재계약 선수의 차지가 되버렸다.)
5순위 브라이언 던스톤(2008년, 울산 모비스)
2008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실질적인 2순위)로 모비스에 지명된 브라이언 던스톤. 해외리그 경험이 없는것은 물론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하는데다 센터치곤 작은신장(199cm)이였기에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긴팔, 출중한 운동능력을 활용한 빼어난 수비와 팀 플레이로 맹활약하며 모비스의 정규리그 2연패와 2009-2010시즌 통합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첫해에 비해 두번째 시즌에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1986년생)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 NBA 진출 모색을 위해 모비스의 재계약 제안을 거부했다.
던스톤
08-09시즌 18.3득점 10.6리바운드 2.3도움 1.0스틸 3.0블록->블록1위, 리바운드2위, 정규리그 우승
09-10시즌 14.9득점 8.1리바운드 1.3도움 1.0스틸 2.2블록->블록1위, 리바운드6위, 통합우승
*2001년 KCC에 지명된 재키 존스는 뛰어난 플레이로 토탈바스켓볼을 이끌었지만 마약 흡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 되었고 그로인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2009년 오리온스에 전체 4순위로 지명되었던 허버트 힐은 재계약에 실패했지만 이듬해 드래프트에 나와 전체 5순위로 전자랜드의 부름을 받았다. 힐은 수비력에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압도적인 공격력을 뽐내며 팀의 사상 첫 4강 플레이오프 직행에 크게 기여했다. 2009년 KT에 선택된 그렉 스팀스마는 감독과의 불화 때문에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고 시즌이 개막하기 전에 퇴출 되었다.
6순위 테렌스 레더(2007년, 서울 삼성)
테렌스 레더는 KBL 입성 첫해 안정적인 득점과 리바운드로 소속팀 삼성을 챔프전에 진출 시켰다. 재계약에 성공한 이듬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득점왕과 리바운드왕를 동시에 수상하며 KBL의 골밑을 지배했고 외국인선수 MVP에 올랐다. 레더의 빼어난 활약 덕에 '삼성 레더스'는 2시즌 연속 챔프전에 나갈수 있었다. 삼성과 두번의 재계약을 이뤄낸후 규정에 따라 2010년 다시 드래프트에 나온 레더는 또 다시 6순위로 SK에 지명되었다. 센터치곤 작은 신장(200cm)이지만 낮은 자세와 도저히 빠져나갈수 없을만한 공간을 미꾸라지 처럼 뚫고 나가는 유연성이 돋보이는 영리한 선수.
레더
07-08시즌 22.2득점 12.5리바운드 2.4도움 1.2스틸->리바1위, 득점4위, 챔프전 준우승
08-09시즌 27.5득점 11.3리바운드 1.8도움 1.5스틸->리바1위, 득점1위, 챔프전 준우승, 외국인선수 MVP
*레더 이외에도 카를로스 윌리엄스(1998년 대우) 리온 데릭스(2000년 SBS) R.F 바셋(2003년 모비스)은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룬 덕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2009년에 지명된 사마키 워커(SK)는 역대 외국인 선수중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지만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펼치며 시즌 도중 퇴출되었다.
7순위 마퀸 챈들러(2007년, 안양 KT&G)
원주 동부에서 뛰던 2009-2010 시즌에는 동부팬들에게 '챈역귀'로 불렸지만 KT&G 시절의 마퀸 챈들러는 리그 최정상급의 기량을 자랑했던 진정한 '타짜'였다. 위치와 자세에 관계없이 점수를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뽐냈고 특히 주전 포인트가드 주희정과는 투맨 게임과 런닝 게임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유도훈 감독과 챈들러, 주희정이 이끈 2007-2008 시즌의 KT&G는 빠른 공격 농구를 앞세워 정규리그 4위라는 호성적을 올릴수 있었다. 챈들러는 첫 시즌의 빼어난 활약덕에 재계약에 성공 했다.
챈들러
07-08시즌 22.9득점 9.1리바운드 2.0도움->득점3위, 리바운드 7위, 정규리그 4위
08-09시즌 25.5득점 8.8리바운드 2.1도움 1.5블록->득점2위, 리바운드6위, 블록4위
*챈들러와 리온 트리밍햄(2002년 SK)만이 재계약에 성공했다. 트리밍햄은 소속팀 성적은 부진했지만 개인 기량 만큼은 당시 마르커스 힉스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KCC의 선택을 받은 크리스 다니엘스는 팀을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8순위 로드 벤슨(2010년, 원주 동부)
2010년 드래프트 현장에서 로드 벤슨을 호명한 강동희 감독의 선택은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낳았다. "몸무게가 104kg에 불과한 벤슨이 센터 포지션에서 파워 게임을 제대로 해낼수 있을까?" "바로 전 시즌 무게감이 떨어지는 센터 게리 윌킨슨과 조나단 존스 때문에 그렇게 마음 고생을 했던 강감독이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 등등.
하지만 강 감독은 벤슨의 NBDL에서의 빼어난 성적과 트라이아웃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믿고 지명했고 벤슨은 그 믿음에 완벽히 보답했다. 공격에서는 뛰어난 운동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득점을 올렸고 수비에서도 기대 이상의 파워 게임을 펼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공-수에 걸쳐 전술 이해도가 대단히 높았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흥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 했다. 벤슨을 중심으로 김주성과 윤호영이 포진한 동부의 '트리플 타워'는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높고 빠른 난공불락 이었다. 2시즌 연속 팀을 챔프전으로 이끌었지만 아쉽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동부에서 3번째 시즌을 치루는것이 확실시 되었지만 바뀐 규정(현재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선수와 재계약 불가)탓에 동부를 떠나게 되었다.
벤슨
10-11시즌 17.4득점 9.7리바 1.3블록->득점6위, 리바운드2위, 수비5걸
11-12시즌 19.6득점 12.9리바 1.2블록->득점8위, 리바운드3위, 정규리그 우승
*8순위로 입성해서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벤슨이 유일하다. 2008년 LG에 지명되었던 아이반 존슨은 이후 참가한 드래프트에서는 호명되지 못했지만 2009-2010시즌을 앞두고 대체 외국인선수로 KCC에 합류해서 매우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전자랜드에 의해 호명된 크리스 다니엘스는 팀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시즌 도중 인삼공사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9순위 크리스 알렉산더(2009년, 창원 LG)
지명 당시 역대 최장신 외국인선수였던 크리스 알렉산더(212cm)는 기동력과 기술이 떨어지고 공격이 단조로운 약점이 있었지만 뛰어난 리바운드 능력으로 소속팀 LG를 정규리그 4위로 이끌었다. 리바운드를 잘 잡았던 알렉산더는 특히 공격 리바운드 능력이 대단히 뛰어났다. 그는 2009-2010 시즌에 240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그 이듬해에는 무려 251개를 기록했다. 단일 시즌 기준으로 알렉산더 보다 더 많은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낸 선수는 라이언 페리맨(2002-2003시즌 258개)이 유일하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경기당 출전 시간은 페리맨보다 5분 이상 적었고 전체 리바운드에서 공격리바운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알렉산더가 페리맨을 압도했다.(알렉산더 46%, 페리맨 35%) 한 마디로 공격 리바운드에 한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였다.
알렉산더
09-10시즌 14.4득점 9.8리바운드 1.1블록->리바운드1위, 블록6위, 정규리그 5위
10-11시즌 11.2득점 10.1리바운드 1.7블록->리바운드1위, 블록2위, 정규리그 4위
*단일 시즌 최다 공격리바운드 : 1위 페리맨(258개 02-03시즌), 2위 알렉산더(251개 10-11시즌), 3위 페리맨(246개 01-02시즌), 4위 알렉산더(240개 09-10시즌) 로드 벤슨(240개 11-12시즌)
10순위 아티머스 맥클래리(2000년, 서울 삼성)
아티머스 맥클래리는 작은 신장(191cm)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체구를 활용하는 파워게임이 뛰어났다. 여기에 동료의 찬스를 봐주는 능력과 상대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는 수비 센스가 돋보였다.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을 펼쳤기에 당시 팀의 루키 빅맨 이규섭과 페인트존을 정말 황금비율로 나눠 활용했다.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고 소속팀 삼성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맥클래리 자신은 맥도웰과의 비교를 불쾌해 했지만(인터뷰에서 나는 '맥도웰 류'가 아니라 기술이 있는 선수다 라고 밝혔다) 당시 유행이던 '맥도웰 비슷한 선수' 찾기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는건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영원할거 같던 맥도웰의 시대를 끝냈다곤 할수 없지만 같은 스타일로 유사한 성적을 내는게 가능하다는걸 맥클래리는 증명해 냈다. 하지만 그도 '제1차 무게 전쟁'의 막차를 탄 셈이고 힉스의 등장과 함께 사이즈와 운동능력-기술이 뛰어난 스타일의 선발이 대세가 되면서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맥클래리
00-01시즌 25.1득점 10.3리바운드 4.8도움 1.8스틸 1.6블록->득점6위, 스틸4위, 통합우승, 외국인선수 MVP
01-02시즌 21.9득점 9.7리바운드 4.0도움 2.2스틸 1.2블록->득점6위, 스틸3위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맥클래리와 마이카 브랜드(2008년 KCC)가 있다.
11순위 재키 존스(1998년, 대전 현대)
199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9순위로 조니 맥도웰을 뽑아 초대박 성공 신화를 쓴 대전 현대. 맥도웰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기에 그랬을까? 맥도웰과 같은 해에 전체 2순위로 뽑은 제이 웹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더 나은 선수를 찾는 모험을 택했다.
신선우 감독의 모험 정신 덕에 전체 11순위로 현대에 합류한 재키 존스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선보였다. 파리채 블록과 수비 리바운드 장악은 현대 수비의 마무리였고 리바운드에 이은 아웃렛 패스는 현대 공격의 시작이었다. 40%이상의 성공률로 경기당 평균 2개 이상을 넣는 위력적인 3점슛으로 상대 센터를 끌어냈고 그 덕에 맥도웰은 아주 손쉽게 골밑을 장악했다. 시즌 내내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한 현대의 손쉬운 통합우승!!
근데 신선우 감독의 모험 정신은 끝이 없었기에 시즌 종료후 존스를 SK에 내주고 당시 드래프트 최대어 '괴물센터' 로렌조 홀을 받는 선택을 감행했다. SK에 합류한 존스는 팀의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었고 챔프전에서 자신을 버린 친정팀 현대를 잡는 1등공신이 되었다. 당시 SK의 황성인-조상현-하니발-서장훈-재키 존스 의 선발 라인업은 지금도 가장 균형이 잘 잡힌 구성으로 평가 받는다.
존스
98-99시즌 19.4득점 11.9리바운드 2.4블록 2.4도움 1.5스틸->블록1위, 리바운드6위, 통합우승
99-00시즌 17.8득점 12.0리바운드 2.5블록 4.1도움 2.0스틸->블록2위, 리바운드4위, 스틸4위, 챔프전 우승
00-01시즌 17.8득점 16.0리바운드 2.9블록 4.3도움 1.6스틸->블록1위, 리바운드1위, 스틸7위, 정규리그 3위
*원년 나래에 전체 11순위로 지명된 제이슨 윌리포드는 나래 돌풍을 이끌며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다. 11순위로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존스와 윌리포드 둘 뿐. 2003년 LG에 지명된 빅터 토마스는 외국인선수 선발 방식이 자유계약으로 바뀌면서 떠났다가 트라이아웃-드래프트로 환원된후 삼성-동부에 지명되었다. 1999년 기아에 지명된 디온 브라운은 시즌을 앞두고 부상으로 교체 되었고 이듬해 드래프트에선 삼보에 뽑혔지만 시즌 초반 어머니 병간호 위해 떠났다. 브라운을 대체 하기 위해 온 선수가 모두 존 와센버그 였다는 점이 재미있다.
12순위 애론 헤인즈(2010년, 서울 삼성)
애론 헤인즈는 2008년 트라이아웃에 참가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드래프트에서 호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2008-2009 시즌 초반 부진에 빠져있던 삼성이 기존의 외국인선수 에반 브락을 퇴출시키고 헤인즈를 영입한 것이다. 그는 매우 빠르게 KBL에 적응했다. 능력있는 가드진(강혁-이상민-이정석)과 함께 간결하면서도 효율적인 공격을 펼치면서 팀의 에이스 테렌스 레더의 체력-득점에 대한 부담을 크게 덜어 주었다. 2-3쿼터는 외국인선수가 한명만 뛰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레더에 비해 경기당 출전시간이 10분 가까이 적었지만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 하지도 않았다. 시즌 첫 16경기에서 6승 10패로 부진했던 삼성은 헤인즈 영입 이후 38경기에서 24승을 쓸어 담으며 정규리그 4위를 기록했고 6강-4강 플레이오프를 연이어 통과하며 두 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에 성공했다.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쉽게 KCC에 우승을 내준 삼성.
2시즌 연속 챔프전 준우승에 그친 삼성은 헤인즈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헤인즈는 2009년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팀에게도 선택되지 않았다. 외국인선수 출전 제도가 '2명 보유 2-3쿼터 1명 출전'에서 '2명 보유 1~4쿼터 1명 출전'으로 바뀌었기에 각 팀들은 골밑 플레이에 능한 선수를 원했다. '몸무게가 90kg에 불과한 전형적인 포워드'인 헤인즈 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곧 바로 찾아 왔다. 2009-2010 시즌 개막 직후 모비스가 기존의 외국인선수 압둘라히 쿠소를 내보내고 헤인즈를 영입한 것이다. 모비스에는 브라이언 던스톤이라는 특급 외국인선수가 있었고 위에 언급한대로 출전 규정도 바뀌었기에 헤인즈의 경기당 출전 시간은 전 시즌에 비해 10분 이상 줄어 들었다.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경기당 15분 가량을 뛰는 헤인즈에게 팀 플레이보다는 적극적인 1대1 공격을 주문했고 헤인즈는 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모비스가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데 있어 '특급 조커' 헤인즈는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헤인즈는 모비스와의 재계약에는 실패 했지만 2010년 드래프트 에서 전체 14순위로 전 소속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3수 끝에 드래프트 현장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불려진 것이다. 특급 빅맨 이승준과 파트너를 이룬 헤인즈는 팀의 주력 외국인선수로 활약하며 시즌 내내 기복없이 폭발적인 공격력을 선보였고 득점왕을 차지 했다.
이듬해 외국인선수 선발 제도가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에서 자유계약제로 바뀌면서 삼성과의 재계약에는 실패 했다. 2011-2012 시즌 도중 LG에 대체 외국인선수로 합류했고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이며 득점왕을 차지 했다. 사상 최초의 득점왕 2연패.
헤인즈
10-11시즌 23.1득점 8.5리바운드 2.9도움 1.0스틸 0.8블록->득점1위, 리바운드8위
*97년 SBS에 지명된 래리 데이비스는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며 득점왕에 올랐지만 다소 독단적인 플레이 탓에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재계약에 실패한 득점왕 : 칼레이 해리스(원년 4순위) 래리 데이비스(97년 12순위) 에릭 이버츠(99년 1순위) 데니스 에드워즈(00년 15순위) 네이트 존슨(04년 자유계약) 테런스 섀넌(07년 1순위) 애런 헤인즈(10년 12순위)
13순위 퍼넬 페리(2001년, 안양 SBS)
페리
01-02시즌 21.6득점 10.3리바운드 1.9블록->득점8위, 블록6위, 정규리그 6위
14순위 리온 데릭스(2003년, 원주 TG삼보)
2002-2003 시즌 TG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주전센터 데릭 존슨이 큰 부상을 당하자 과거 SBS에서 뛴적이 있는 리온 데릭스를 일시 대체 외국인선수로 영입했다. TG는 존슨에 비해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센스가 뛰어났던 데릭스의 합류로 데이비드 잭슨과 김주성의 공격력이 극대화 되면서 챔프전 우승이라는 이변을 연출했다. 잭슨-데릭스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전창진 감독은 험프리스 코치의 조언에 따라 두선수와의 재계약을 포기. 데릭스는 그해 여름 KBL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14순위로 TG에 지명되었다. 재계약에 실패한 선수가 곧바로 드래프트를 통해 전 소속팀의 부름을 받은 건 이때가 유일하다. 데릭스는 특유의 뛰어난 팀 플레이로 윤활유 역할을 해내는 동시에 김주성과 함께 골밑을 굳건히 지키며 팀의 정규리그 독주를 이끌었다. 하지만 데릭스의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TG는 '바셋 임대 트레이드'로 전력을 크게 보강한 KCC에게 챔프전에서 패했다.
데릭스
03-04시즌 12.2득점 10.0리바운드 3.8도움 1.1블록->리바운드7위, 블록11위, 도움12위, 정규리그 우승
15순위 얼 아이크(2001년, 인천 SK)
2001년 드래프트에서 '현대와 결별한' 조니 맥도웰을 영입한 인천은 그의 파트너로 파워가 돋보이는 정통센터 얼 아이크를 선택했다. 아이크는 맥도웰과 '파괴의 형제'로 활약하며 팀을 정규리그 4위로 이끌었고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아이크
01-02시즌 17.9득점 12.2리바운드 1.7블록->리바운드5위, 블록10위, 정규리그 4위
*아이크와 함께 인천의 골밑을 지킨 맥도웰은 2002-2003시즌 종료후 인천과의 재계약에 실패했고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를 통해 울산에 전체 15순위로 지명되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오리온스에 15순위로 지명된 크리스 다니엘스는 오리온스와 동부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16순위 제스퍼 존슨(2009년, 부산 KT)
2009-2010 시즌 KT 돌풍의 핵. 개막 이전부터 뛰어난 농구 센스와 기량으로 전창진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은 제스퍼 존슨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KT를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고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다. 운동능력은 떨어졌지만 외곽슛과 돌파력이 뛰어났고 패싱력도 훌륭했다. KT가 자랑하는 모션 오펜스의 핵심이었으며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매우 출중해서 크리스 윌리엄스와 곧잘 비교되기도 하였다.
존슨
09-10시즌 19.5득점 7.0리바운드 3.3도움 1.7스틸->득점2위, 스틸3위, 정규리그 2위, 외국인선수 MVP
10-11시즌 16.3득점 5.4리바운드 1.9도움 1.5스틸->정규리그 우승
*1997년에 지명된 버나드 블런트(LG)는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좋은 성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재계약에 성공한 2번째 시즌 LG는 블런트의 원맨팀이라 불릴 정도로 공격에서 그에게 아주 심하게 의존했다.
17순위 알렉스 스텀(1997년, 인천 대우)
대우 에서 활약한 알렉스 스텀은 백인 센터 답게 파워와 기본기가 뛰어난 성실한 선수였다. 블록 1위,리바운드 3위를 기록할 정도로 파워 게임에 능했고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재계약에는 실패.
스텀
97-98시즌 17.2득점 13.2리바 2.7블록->블록1위, 리바운드3위, 정규리그 6위
*2001년 삼보에 2순위로 지명되었으나 재계약에 실패해서 2002년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안드레 페리는 17순위로 코리아텐더의 부름을 받았다.
18순위 데이비드 잭슨(2002년, 원주 TG)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8순위로 TG 유니폼을 입은 데이비드 잭슨은 정규리그 3점슛 성공률1위(46%)-성공2위(평균 2.91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외곽슛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수비가 아쉬웠다. 여기에 전쟁 공포증에 시달리는 등 적응에 애를 먹으며 경기력 기복이 매우 심했다. 한때 퇴출이 거론되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그대로 밀고 갔고 외국인 파트너가 데릭 존슨에서 리온 데릭스로 바뀐 플레이오프에서 정말 대형 사고를 쳤다. 잭슨이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클러치 능력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활동반경이 넓은 데릭스 덕에) 비어있는 골밑을 활용하는 돌파라는 무기를 추가한 잭슨을 막을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챔프전에서 만난 오리온스는 도저히 잭슨을 막지 못하자 마르커스 힉스까지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잭슨은 TG의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고 챔프전 MVP 수상했다. 팬들은 잭슨의 활약에 전율하며 재계약을 강력하게 원했지만 당시 코치였던 험프리스가 잭슨 정도의 선수는 쉽게 찾을수 있다고 주장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
잭슨
02-03시즌 18.5득점 3.0도움->3점슛 성공률1위(46%)-성공2위(2.91개), 챔프전 우승, 챔프전 MVP
*2008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8순위로 동부에 지명된 웬델 화이트는 데이비드 잭슨이 2002-2003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주었던 클러치 능력을 정규리그 내내 재연해 냈다.
19순위 조니 맥도웰(1997년, 대전 현대)
이견이 없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선수. 199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9순위로 KBL에 입성한 맥도웰은 바로 리그를 초토화 시켰고 KBL의 많은 변화를 야기 시켰다. 당시에는 국내 빅맨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외국인선수는 190.5cm이하-203.2cm이하에서 한명씩 선발하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맥도웰은 단신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골밑을 초토화 시켰고 그 후 각팀들은 빅맨 둘을 뽑는 선택을 했다.(사실 이런 선택은 멕도웰이 최초가 아니였다. 원년 드래프트에서 '단신 선수'로 선발된 클리프 리드와 라펠 맥길버리도 골밑에서 활약했었다.) 또 맥도웰을 앞세운 현대의 절대 독주가 이어지자 각팀들은 맥도웰 대항마 찾기 작전에 돌입해서 그와 체격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맥도웰은 기록의 사나이다. 팀에 두번의 통합우승을 안겼으며 전무후무한 외국인선수 MVP 3연패를 달성했다. 2회 이상 MVP를 수상한 선수도 맥도웰(3회)을 제외하면 마르커스 힉스(2회) 뿐. 그는 정규리그 개인 통산 3000, 4000, 5000, 6000, 7000 득점을 가장 일찍 돌파했고 2000, 3000 리바운드도 최초로 달성했다. 7시즌을 뛰며 정규리그 통산 7,077득점과 3,829 리바운드를 기록.
맥도웰
97-98시즌 27.2득점 11.8리바운드 3.8도움->리바운드4위, 득점5위, 도움7위, 통합우승, 외국인선수 MVP
98-99시즌 24.6득점 13.5리바운드 3.4도움->리바운드2위, 득점4위, 통합우승, 외국인선수 MVP
99-00시즌 23.1득점 13.3리바운드 4.7도움->리바운드1위, 득점6위, 정규리그 우승, 외국인선수 MVP
00-01시즌 21.7득점 13.4리바운드 5.2도움->리바운드5위, 도움8위, 득점13위
*맥도웰이 없었다면 최고의 19순위는 로데릭 하니발(SK) 이었을 것이다.
20순위 찰스 로드(2010년, 부산 KT)
찰스 로드는 201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0순위로 KT에 지명 되었다. 당시 KT는 전년도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한 제스퍼 존슨이 전력의 핵심이었다. 규정상 외국인선수가 한명밖에 뛸수 없었기에 로드보다는 존슨이 중용되었다. 단신인 존슨(198cm)이 뛸때는 '모션 오펜스'와 '협력 수비'를 펼쳤고 그로 인해 국내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많았다. 로드는 존슨의 백업 요원으로서 경기에 투입시 혼자서 골밑을 사수 하며 동료들의 체력을 세이브 시키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경기당 16분 정도를 뛴 로드는 압도적인 운동능력을 활용하는 플레이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정규리그 후반에 존슨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자 로드는 팀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야생마가 연상되는 폭발적인 플레이로 상대팀의 골밑을 초토화 시키며 KT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4강 플레이 오프에서는 KBL 역사상 최강으로 평가받던 동부의 '로드 벤슨-김주성-윤호영'의 트리플 타워를 거의 혼자서 상대해 냈다. 비록 팀은 동부에 패해서 탈락했지만 로드는 '트리플 타워'와 대등한 대결을 펼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후 외국인선수 선발 제도가 자유계약제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2년차에는 시즌 초반 파울 관리에 미숙함을 드러냈고 전술 이해도에서 다소의 문제를 드러냈다. 여기에 전창진 감독과의 불화가 겹치면서 퇴출설에 휩싸였다. 전 감독은 공개적으로 로드를 비판하며 반드시 교체 하겠다고 몇번이나 선언 했지만 실제로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즌 중반 이후 로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파울 관리와 전술이해도 부분이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드
10-11시즌 15.1득점 5.9리바운드 1.6블록->득점15위, 리바운드13위, 블록3위, 정규리그 우승
11-12시즌 20.3득점 11.5리바운드 2.6블록->득점7위, 리바운드5위, 블록1위
*2001년에 동양에 지명된 라이언 페리맨은 센터 치곤 작은 신장(198cm)이었지만 리바운드 위치 선정이 아주 뛰어났고 팀 동료 마르커스 힉스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팀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1. 13순위 퍼넬 페리는 제가 코멘트를 달 만큼 잘 알기 못하기에 비워 두었습니다. 잘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2. 제가 직접 봤던걸 기억해서 썼기 때문에 내용이 틀릴수도 있고 오타도 많을 겁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3. 내용도 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옛날 생각나네요...전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힉스,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던건 재키존스...오리온스 우승때가 기억나네요.
오리온스 우승할때 힉스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힉스는 그냥 자체도 뛰어났지만 등장 이후 외인 선발의 경향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단했죠.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하하..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꾸준하게 끝까지 읽었네요
퍼넬페리근육맨이었던것만기억이ㅎ
맞아요. 퍼넬 페리는 근육맨이었죠 ㅋㅋ
대체 외국인 부분으로 단테존스 추가하고 싶네요ㅎㅎ
단테 존스 정말 대단했죠. 대체 외국인선수로 와서 득점왕을 차지한 이는 단테와 헤인즈 뿐입니다. 물론 당시 단테 신드롬은 같은 득점왕이라고 하더라도 2011-2012시즌의 헤인즈 효과와는 비교하기 힘들구요; 한시즌 뒤에 역시 마찬가지로 대체로 왔던 나이젤 딕슨과 비교할만 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괜히 신드롬이 신드롬이 아니였죠. 임팩트면에선 역대로 꼽힐 용병이였으니까요ㅎㅎ아 좋은글 잘봤습니다ㅎ
잘 봤습니다. 드릴 건 추천 뿐.. 97-98 트라이아웃때 현대 신선우 감독이 2R에서 버나드 블런트를 지명하려고 타팀 감독들한테 밑밥을 깔아두었는 데, 앞에서 이충희 감독이 채가는 바람에 현장에서 고성이 오갔다고 합니다.
신선우 감독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명했던 선수가 조니 맥도웰..ㅋㅋ 옛날에 루키였나 거기서 이 에피소드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신선우 감독이 원래는 버나드 블런트를 놀렸었군요; 저는 이제서야 알았네요. 그동안은 애초에 멕도웰을 노린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신선우 감독은 원년에도 단신선수로 가드가 아닌 골밑 요원 맥길버리를 선택했었으니까요. 블런트가 현대로 갔다면 KBL의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잘봤습니다 황성인 조상현 하니발 서장훈 재키존스 ㅜㅜ 그립네요 현대잡을때 소리쳣는데
감사합니다. SK의 챔프전 우승 당시 베스트5의 밸런스는 정말 너무 좋았죠.
민렌드는 없네요?
민렌드는 1순위 에서 밑에 회색 글씨로 짧게;; 언급을 했습니다. 활약상에 비해 너무 짧았나요;;
개인적으로 1순위는 민렌드가...자유계약끝까지 버틴거 상당히 높게 봅니다.
화이트.바셋 이런선수들은 바로 털리고 퇴출 되었죠.
피트 마이클은 여기에 못끼나요 ㄷㄷ
드랲 지명이 아닌 자유계약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외인까지 치면 크윌이라든 핏마라든지 역대급 선수들이 꽤 수두룩하죠. (엄밀히 따져서 모두가 1순위급 지명을 한 셈이기에..)
피트 마이클은 자유계약을 통해 KBL에 입성했기에;; 헤인즈에 대한 부분을 쓰면서 "헤인즈의 공격력은 역대 선수들과 비교해도 피트 마이클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나다" 이런 걸 넣을 생각이었는데 까먹어버렸어요;;
앨버트 화이트는 은근히 수비도 좋은 선수였습니다. 터프한 인사이더 수비에는 좀 고전했지만, 전반 30득점 가까이 기록하며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여주던 스케일을 화이트가 수비하면서 후반엔 완전히 묶었던 적이 있죠..ㅎㅎ
아 보고싶은 얼굴 ㅠ.ㅠ
화이트가 전자랜드 시절에는 나무랄데 없는 선수였죠. 플레이가 다소 정적이었지만 뭐 그걸 다른 부분으로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요.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하면 골밑에서의 파워게임도 뭐 기대 이상은 해줬다고 봅니다.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해요.
긴글 이었는데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네요~잘봤습니다^^ 잊었던 기억들이 생각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넬 페리 슛거리도 제법 길고 스피드도 있는 단신 파포였죠 첫해엔 힉스,안드레 페리에 이어 삼순위였었죠아마... 파트너가 데릭스였을 거에요 데릭스가 상대 센터를 끌어내면 페리가 쳐들어가는 방식이었을 거에요... 제 기억은 믿을 게 못되어서 ㅎ
퍼넬 페리. 작지만 단단하고 건실한 이미지 였던걸로 기억해요.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넬 페리가 그 몸빵에 탄력이 상당히 좋았죠.그것 말고는 그냥저냥 한시즌 버틸만한 정도의 기량?
원년 선수중 윌리포드도 2라운드 후반픽이었던거 같은데 기량을 떠나 리그 임팩트만 놓고 보면 적어주신 글에 포함될만 하지 않을까요 ㅎㅎ.
원년의 윌리포드는 전체 11순위로 지명되었는데 1998년의 재키 존스와 지명 순위가 같아서; 밑에 회색 글씨로 짧게 언급을 했습니다. 윌리포드도 정말 대단한 선수였죠.
플옵&챔결에서 보여준 잭슨의 활약은 진짜 대단했죠. 하지만 한 시즌을 치뤄야 하는 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잭슨은 정규리그에서 기복이 심했고 전쟁 공포증에 시달리는등 정신력도 강하다고 볼수 없었기에. 또 팀은 김주성을 보유했기에 잭슨을 포기하더라도 좋은 가드를 2라운드에서도 충분히 잡을수있을거라 판단했나봐요. 그 판단의 배경은 이해할만하죠. 다만 잭슨때는 언더독으로 우승까지 했는데 홀 때는 수성을 못해서 아쉬움이 남을뿐.
페리맨이 있기를 기대하고 찾아봤는데 없군요 ㅎㅎ
앨버트화이트를 뒷받침해주던 19순위 제이슨윌리엄스도 성실하고 좋았죠 ㅋ 그덕에 앨버트가 더 빛난것같기도하고요^^ 잘봤습니다~
제랄드 워커는 없나여;;ㅎㅎ 그래도 원년에 리드와 함께 센세이션이었는데
근데 제럴드 워커 말고 포인트가드로 들어온 용병이 있었든가요?
칼레이 해리스와 토니 매디슨인데 둘다 리딩보단득점이 우선이었죠. 매디슨은 키드닮은 외모고 해리스는 아이재이아 라이더 친척이었죠. 그외 몇명있긴 했는데 인상적이진 못했죠.
추억 돋네요. 마르커스 힉스와 함께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잘봤습니다.^^
여신소이현님 ㅋㅋ 점프볼 입사하셔야 할듯 ㅎㅎ 기사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