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 레오 톨스토이=>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Lev Nikolaevich Tolstoi)
1910. 10 ~ 방랑생활
1901 ~ 종무원으로부터 파문
1885 ~ 사유재산 부정
1882 ~ 모스크바 빈민굴 시찰
1851 ~ 카프카스 사관후보생 복무
남러시아 툴라 근처의 야스나야 폴랴나 출생.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임과 동시에 문명비평가 ·사상가로서도 위대한 존재였다.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1847년 대학교육에 실망을 느껴 카잔대학을 중퇴하고 향리로 돌아가 지주로서 영지 내의 농민생활을 개선하려 하였으나, 그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끝나고 잠시 방탕생활에 빠졌다. 1851년 형의 권유로 군대에 들어가 카프카스에서 사관후보생으로 복무하고, 다음해 처녀작 《유년시대 Detstvo》(1852)를 익명으로 발표하여 네크라소프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소년시대 Otrochestvo》(1854) 《세바스토폴 이야기 Sevastopoliskie Rasskazy》(1854∼1856) 등은 군에 복무하면서 집필한 작품들로서 1855년 군에서 제대하고 수도로 올라갈 무렵에는 이미 청년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857년 서유럽 문명을 시찰하기 위해 국외에 나갔으나 실망하고 귀국하여, 인간생활의 조화를 진보 속에서 추구하던 그는 그 후 내성적인 경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62년 궁정 시의(侍醫)의 딸인 소피아와 결혼하고 문학에 전념하여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입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사회를 그린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 Voina i mir》(1864∼1869)를 발표, 이어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1873∼1876)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無常)에 대해 심한 정신적 동요를 일으켜, 과학 ·철학 ·예술 등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마침내 종교에 의탁하였다. 이때가 그의 전향기로서 《교의신학비판(敎義神學批判)》(1880) 《요약 복음서》(1881) 《참회록 Ispoved’》(1882) 《교회와 국가》(1882) 《나의 신앙 V chem moya vera?》(1884) 등을 통하여 그의 사상이 체계화되어 갔다. 이 전향 후의 사상을 보통 ‘톨스토이주의’라고 한다.
그의 사상은 현대의 타락한 그리스도교를 배제하고 사해동포 관념에 투철한 원시 그리스도교에 복귀하여 근로 ·채식 ·금주 ·금연을 표방하는 간소한 생활을 영위하고 악에 대한 무저항주의와 자기 완성을 신조로 하여 사랑의 정신으로 전세계의 복지에 기여하려는 것이었다. 1882년 모스크바 빈민굴을 시찰한 후 사회조직의 결함에 깊이 생각이 미치자, 그의 사상적 번민은 종교적 ·윤리적 문제에서 사회제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또 1885년에는 사유재산을 부정하여 이 문제로 부인과 충돌, 그 후 그의 일체의 저작권은 부인이 관리하였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지 않는 성령부정파교도(聖靈否定派敎徒)와 친교가 있어 4,000명에 달하는 이 교도들을 미국에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부활 Voskresenie》(1899)이다.
그는 수년 전부터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를 집필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문학관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으나, 《부활》의 집필은 앞의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 동방정교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破門)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부활》 이후의 주요작품으로는 《신부(神父) 세르게이》(1898), 희곡 《산송장》(1900), 단편 《무도회의 뒤》 《병 속의 아료샤》(1905)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종교와 도덕〉(1894) 〈톨스토이즘에 대하여〉(1898) 〈현대의 노예제도〉 〈자기완성의 의의〉(1900) 〈유일한 수단〉(1901) 〈세 가지 의문〉(1903) 〈셰익스피어론(論)〉(1903) 〈유년시대의 추억〉(1904) 〈러시아 혁명의 의의〉(1906) 〈마을의 노래〉(1909), 그리고 최후의 대작 《인생의 길》(1910) 등을 들 수 있다.
전향 후 그의 생활신조는 전술한 대로 재산과 저작권의 포기는 가족에게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부부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반면 세상에서는 그를 위선자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어 그가 성명했던 본래의 뜻대로 실행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종종 한 집에서 기거를 같이했던 그의 고제(高弟) 첼트코프에 대한 부인의 질투와 증오도 가정생활에 심각한 파문을 일으켰다.
1890년에 발표된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는 이러한 내적 고민을 선명하게 그렸다. 그는 자신의 가정생활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몇 차례 가출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1910년 10월 29일 이른 아침 장녀와 주치의를 데리고 집을 떠나 방랑의 여행길에 올랐으나 도중에서 병을 얻어 아스타포보(현 톨스토이역)의 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사랑을 기조로 한 예술에서 출발하여 종교에 몰입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대문호임과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이며 종교가였던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세계문학사상 불굴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항시 인생에 대하여 절박한 고민을 체험하고 그 사상을 실현하느라고 애쓴 작가이다. 그리하여 그는 문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교육·난민구제의 방면에도 힘을 기울였다. 러시아의 부조리, 러시아의 크나큰 죄악에 대해서 행동으로써 속죄하려고 했던 것이다.
어쨌든 톨스토이는 루소 이후 그의 도덕적 저술로써 인간 양심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우리들의 개인적 생활(이기적 생활), 동물적 생활 속에서도 이성에 의해서 살아나가는 것이 올바른 인간생활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강조하는 그의 사상의 특색은 그 목표를 현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상이 바로 실행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의 활동이므로, 현재의 활동에 있어서 사랑을 표시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의 생활을 무시하고 미래의 행복을 약속하는 그러한 불합리를 그는 싫어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행복론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되며, 남을 위해서, 인류 전체의 행복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자기 행복만 생각하고 살면 그 희망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 즉 이성의 활동인 사랑을 가지고 일반 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며 그 가운데 올바른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줄거리
왕정 러시아의 귀부인과 청년 장교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인 톨스토이의 비극적 명작으로 이미 이전에 수차례 영화화 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버나드 로즈 감독이 연출하고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와 영국 배우 숀 빈이 공연했다.
이전 작품을 살펴보면, 1911년 러시아 여배우 M. 소로크리나가 처음으로 안나 역을 맡은 것으로 기록되어있고, 같은 해 프랑스에선 잔느 들베가, 미국에선 1915년 테다바라가 처음으로 안나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헝가리, 독일 등에서도 영화화되어 1927년에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MGM사의 무성영화 <러브>가 만들어지기까지 모두 8명의 안나 까레리나가 탄생했다. 그레타 가르보는 1935년에도 클레런스 브라운 감독의 흑백영화 <안나 까레리나>에 출연했다. 1948년에는 영국에서 비비안 리가 출연하고 줄리앙 뒤비비에가 흑백영화 <안나 까레리나>를 감독했으나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의상과 세트는 완벽했으며 카메라가 뛰어났던 흑백 영화로 기록되었다. 이어서 줄리 모레(1958, 아르헨티나)와 타티아나 사모일로바(1967, 소련)가 비운의 여주인공 안나역을 맡은 연보가 있다.
1880년 왕정 러시아. 안나(Anna Karenina: 소피 마르소 분)는 대지주 카레닌(Karenin: 제임스 폭스 분)의 정숙한 아내로서 페테스부르크의 호화 저택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풍족한 생활이지만 관료적이며 보수적인 남편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현실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그녀는 오빠 스티바(Stiva: 대니 휴스턴 분)를 만나기 위해 잠시 페테스부르크를 떠난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안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기차역에서 우연히 오빠의 친구인 브론스키(Vronsky: 숀 빈 분)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귀족 생활의 관습과 규율이 젖은 드녀에게 새로운 사랑은 도전이었다. 장교 브론스키는 아름다운 왕녀 키티(Kitty: 미라 커쉬너 분)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안나로 인해 멀어지게 된다. 모스크바 기차 역으로 어머니를 마중나간 브론스키는 친구 동생인 안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몸이었으며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브론스키는 키티의 사랑을 거부하고 끝내 안나가 살고 있는 페테스 부르크까지 따라간다. 브론스키의 끈질긴 공세에 결국 안나는 마음을 열게 되고 불륜의 관계에 빠지게 된다. 이 연애 사건은 고지식한 마을을 뒤집어 놓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이혼을 요구하고 그녀에게서 아들까지 빼앗는다. 심지어 사교계에서도 그녀를 따돌린다. 그즈음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1882년 쓸쓸한 겨울, 안나는 결국 유산을 하고 만다. 이를 보다 못한 브론스키는 카레닌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카레닌은 냉담하기만 하다. 결국 브론스키는 안나와 딸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1883년 고통스런 여름, 카레닌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구하기 위해 안나와 브론스키는 페테스부르크로 돌아온다. 이탈리아에 가서 둘은 정식 부부가 되었건만 안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카레닌은 이혼을 해주지도 않으며 아들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먼저 시골로 가라고 하자, 둘은 심하게 다투게 되고, 안나는 아편에 취해 자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