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의 남자 프로게이머들은 친구를 통해 맨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접한다. 나같은 경우는 아주 특이하게도 아빠에게 스타를 배웠다. 우리 아빠는 전산 쪽 일을 하고 계셔서 원래 컴퓨터에 밝으시고, 게임도 좋아하시는 편이다. 아빠 말씀이 아빠가 어렸을때는 100원 넣고 하루 종일 오락을 하는 바람에 주인아저씨가 “돈줄테니 제발 가라”고 하신 적도 있단다. 우리 딸들도 그런 아빠를 닮아서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중학교 2학년때였다. 한창 스타붐이 일던 99년이었는데, 어느날 아빠가 재미난 게임이 있다면서 우리에게 스타를 가르쳐 주셨다. 맨 처음 막내 지승이가 배우고, 그 다음에 나와 지은이가 배웠다. 지승이는 큰 관심이 없었던 반면, 나와 지은이는 열광적으로 스타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지은이랑 둘이 힘을 모아 컴퓨터와 싸웠다. 딸들이 담배 냄새 가득한 어두침침한 PC방에 가는게 걱정되셨던 아버지는 ‘아예 게임을 집에서 하라’며 컴퓨터를 한대 더 사주셨다. 덕분에 지은이와 나는 맞대결을 할 수 있었다. 지은이는 한때 프로게이머를 꿈꿨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편이다.
스타를 알기전까지만 해도 나는 피아노를 쳤었다. 7살때 시작해 체르니 50 정도를 치는 실력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한 편이라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나 미술을 하게될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다. 하지만 스타를 알게된 후 내 마음은 완전히 스타쪽으로 기울었다. 수업만 마치면 집으로 달려서 게임에 매달리곤 했다. 또래 친구들이 한창 열광하던 영화, 음악은 내게 뒷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내 꿈은 프로게이머로 완전히 굳어졌다. 아빠한테 처음 말씀을 드렸다. 반응은 생각보다 나빴다. ‘내가 너 이러라고 게임 가르친게 아닌데...’하시면서 몹시 속상해하셨다. 엄마도 너무 실망하고 가슴 아파하셨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학교에 안 가겠다’며 최후의 배수진까지 치고, 내 주장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