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평의 기원 (자평설변 子平説辯) 삼명통회 7권
오늘날 명을 논하는 사람들은 자평을 거론하는데 자평이란 어떤 의미인가?
子에서 하늘이 열리고, 子는 수(水)만 있는 자리로 지지 중에 으뜸이다.
하늘에서 오행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수는 북방에 모이며, 평지를 만나면 멈추고,
파인 곳이 있으면 흘러 들어간다. 이것이 子의 뜻이다.
또 사람들이 물건의 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을 쓰는데,
저울이 평평하게 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무게를 단다.
무게에 차이가 있으면 저울이 평평하지 않게된다.
사람이 태어나면 생기는 팔자는 선천(先天)의 기운으로 저울에 비유한 것이다.
년은 물건을 매다는 고리가 되고,
시는 추가되고,
월령은 들어올리는 줄이 되고,
일은 저울눈이 된다.
팔자는 일을 중심으로 살핀다.
팔자에 재관인식(財官印食)이 왕상(旺相)하고
일간도 왕상한 자리에 앉아 있다면
고리에 매단 물건과 저울추가 서로 균형이 맞춰진 것과 같아서
그 명은 부유하고 귀하게 된다.
재관인식이 왕상해도 일간이 휴수(休囚)하면
저울에 올린 물건이 무거워 추가 제대로 대응을 못하여
저울의 균형이 맞지 않으므로 그 명이 천(賤)하고 가난하다.
재관인식이 휴수의 상태인데 일간은 왕상하다면
추에 매단 물건이 가벼워 저울추와 맞지 않아
저울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그 명이 어려움이 많다.
설령 재관인 세가지가 기운이 없고, 일주가 휴수해도
빈천하거나 요절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경(經)에 나온다.
“선천이 태과(太過)하면 후천에서 덜어내고,
선천이 불급(不及)하면 후천에서 보충한다.
선천 후천에 태과불급이 없다면 균형을 이른다.”
운(運)이란 후천이며 선천팔자에서 일간이 지나치게 왕상하면
당연히 기운이 약해지는 운으로 가서 기운을 빼야 한다.
일간이 모자라면 당연히 왕상해지는 운을 만나 기운을 북돋아야 한다.
기운을 더하거나 빼는 두가지 방식으로 조절을 하면 복을 받고 재물을 얻는다.
운이 맞아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된다.
이는 의사들이 모자라는 기운을 북돋우는 방법과 비슷하다.
일간이 너무 왕하고 게다가 왕한 운으로 가거나,
일간이 너무 쇠한데 쇠한 운으로 가면
모두 태과불급에 해당되어 화가 생기고 재난이 발생하여,
막히고 잘 소통되지 않는 것이다.
운(運)이란 바뀐다는 의미이다. 십년에 한번 바뀌면 장애와 소통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대운의 흥쇠에서 비롯되며 매년 화복(禍福)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자평을 통해 빈천과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살피는 것이 가능하다.
자평을 본다는 것은 선천후천을 제대로 살피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자평이란 두 글자가 나름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평은 서(徐)씨가 붙인 자(字)일 뿐이다.
오늘날 명을 논하는 사람들이 그 법의 창시자를 제대로 모르면서
자평이라는 글자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탁영필기(濯纓筆記)에 의하면
‘자평은 성이 서(徐), 이름이 거이(居易)이며 자평은 그의 자(字)’이다.
동해사람으로 사척선생(沙滌先生)으로도 불리고, 또 봉래수(蓬萊叟)로도 불렸다.
화산(山華)의 서당봉동(西棠峰洞)에 은거했다.
서자평이 사용한 방법은 생년일시로 주어진 명을 추론했는데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기원은 전국시대 낙록자(珞琭子)이며 세상에 원리소식부(元理消息賦) 한
편만 남겼다.
그 문장을 보면 아마도 후인들이 거짓으로 편찬한 것으로 낙록자가 한 것은 아니다.
낙록자와 같은 시기에 귀곡자, 한나라의 동중서, 사마계주, 동방삭, 엄군평이 있었다.
삼국시대의 관로, 진의 곽박, 북제의 위정, 당의 원천강, 일행스님,
이필(李泌), 이허중을 따르던 무리 등이 모두 팔자술의 조종(祖宗)들이다.
이필(李泌)이 밖에 나갔다가 농부가 버드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 것을 봤다.
이름을 물었더니 관로의 18대손이었다. 책을 보니 천양결(天陽訣)이었다.
이필은
관로의 천양결을 얻고나서 또 일행스님이 전해준 동발요(銅鈸要)를
얻었다.
길흉을 점치는데 아주 잘 맞았다.
이필은 이허중의 자료를 후세에 전하고 또한 발전시켜서 활용했다.
낙록자는 년을 기준으로 했는데 이허중은 일(日)을 기준으로 점치는 법을 확 바꾸었다.
오대(五代)시대에 마의도자(麻衣道者), 희이선생(希夷先生) 그리고 자평이 있었다.
자평은 이허중의 술을 받아 내용을 빼고 더해 오행을 중심으로 하고, 납음을 중시하지 않았다.
점치는 법을 크게 변화시켰다.
서자평이 죽은 후 송효종 때에 회전(淮甸)지방에 충허자(冲虛子)라는 술사가 있었는데
자평술에 정통하여 세상사람들이 받들었다.
같은 때에 도홍(道洪)스님이 그 내용을 전해받고 나중에 전당(錢塘)이 그 학문을 퍼뜨렸다.
세상사람들이 그 유래를 몰라 그냥 자평이라 하는 것이다.
나중에 도홍이 서대승(徐大升)에 전했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삼명연원(三命淵源), 정진론(定眞論) 등의 책이 서대승이 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평에 관한 책들의 변천에 대해 충분히 밝힌 것이다.
오행정기(五行精紀), 난대묘선(蘭臺妙選), 삼거일람(三車一覧),
응천가(應天歌) 등의 책을 보면 연원, 연해와 같지 않다.
천문을 살펴 달력을 만드는 것도 때에 따라 새롭게 바뀌었다.
비록 100년 사이지만 몇 가지 술수에 관한 학설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서대승에서 자평까지는 300년 남짓 거리가 있다. 그 법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알수 없다.
또 서대승이 자평을 제대로 이어받았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계선편 등의 글을 보면,
명통부(明通賦)도 마찬가지지만 쓰는 말들이 다르다.
그런데 원리소식부는 서대승이 홀로 얻은 것이다.
오늘날 명을 추론하는 방법은 원나라 사람이 다시 끄집어낸 자평과 서대승의 방법,
이 두가지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오늘날 명을 논하는 사람들이 말로는 자평을 들먹이지만
기원을 모르고 있어 내가 자평의 두 글자를 풀어 상세히 그 기원을 밝힌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