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시작한 이유요? 남자를 이기기 위해서죠.”
여성 프로게이머 기근현상이 뚜렷하다. 힘들게 여성 스타리그의 명맥을 이어가던 게임TV가 어려움에 빠진 지난해부터는 아예 여성리그라는 말 자체가 생소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성역을 넘나드는 여성 프로게이머가 있다. 바로 서지수(19·원광디지털대1년)다.
출중한 미모와 파워풀한 게임 플레이로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서지수. 그를 따르는 수식어만 해도 ‘얼짱 게이머’ ‘깜찍이’ ‘여자 임요환’ ‘신데렐라’ ‘여성 막강 테란’ 등 10여가지에 달한다. 그러나 한창 ‘얼짱 게이머’로 인기몰이를 시작했을 당시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이 아닌 외모로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펐다고 한다.
그가 게임을 시작한 배경엔 남자를 이겨보겠다는 오기가 서려있다. 아들이 없어 적적해하던 아버지 서영서씨(47)는 세 딸을 데리고 축구를 비롯한 운동을 늘 함께 했다. 사내아이들이나 할 법한 격한 운동들이었다. ‘스타크래프트’도 가르쳤다. 남자를 이기기 위한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3녀 중 둘째다. 언니와는 2분 터울 일란성 쌍둥이. 생김새는 같아도 성격은 전혀 딴판이다. 소극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한 그는 성격이 좋아 항상 친구가 많았던 언니 지은씨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는 그에게 동일시 대상이었고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의지하고픈 존재였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때 냉전의 시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가장 좋은 친구이자 의리로 똘똘 뭉친 반쪽이다.
결국 셋 중 유독 게임을 좋아한 그는 스승인 아버지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조차 나서서 만류했다. 그러나 게임만큼 성에 대한 차별이 없는 놀이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였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꺾고 프로게이머가 됐다.
여성리그가 없어진 후에는 남자게이머들을 이기기 위해 게임을 계속해왔다.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집념은 더 강해져만 갔다.
“예선전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 슬럼프도 많이 겪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여성 게이머로서는 최초로 MBC게임 마이너리그 본선에 올랐다. 남자들과 당당히 겨뤄 우승컵을 거머쥐겠다는 그의 목표에 한발짝 다가선 것. 그러나 여전히 스타리그의 벽은 높았다. MBC게임 4차 마이너리그에서 박신영과의 대결에서 초반 과감한 공격으로 승기를 잡았으나 한순간의 방심으로 경기에 패배하고 만 것이다.
“많이 깨지고 아파하면서 더 강해지는 거죠. 7전 8기의 정신으로 될 때까지 부딪쳐 볼래요.”
그는 최고의 ‘여성프로게이머’가 아닌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한다. 이제 더 이상 여자가 아닌 진정한 프로게이머로 평가받고 싶다. 대외적인 활동에도 남자선수 못지 않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말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산업 정책비전 보고회에 프로게이머 대표로 초대를 받아 임요환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향신문 출판국의 편집자문위원과 사이버전국체전 홍보대사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