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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제칠교주의 편지를 보니 이미 제삼교주를 모살하려는 우리
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 같군요."
고라화상은 다시 말했다.
"홍의의 소녀가 능운보탑에 달려간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네. 어쩌면
그녀는 제칠교주의 명을 받들고 구원을 하러 갔을 것이네. 그러나 한걸음
늦어 제삼교주는 이미 고소협의 일 권에 맞아 죽었던 때일 것이네."
하불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능운보탑 아래서 홍의의 소녀를 살해하지 못한 것은 정말 큰 잘못입니
다."
고라화상은 말했다.
"과거의 일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네. 원래 제칠교주가 빈승에게 도전
한 일에 관해 빈승은 혼자서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에 지금껏 자네들에게
알려 주지 않은 것일세."
몽천악은 가슴 속에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노선배님께서 제칠교주를 맞이해 싸우시려는 일은 후배로 하여금 대신
수고케 해 주십시오"
고라화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소협, 시주의 가슴에는 영기가 충만해 있어 앞길이 창창하오. 제칠교주
를 제외하고도 제일총교주는 더욱 강대한 적이오."
정음천이 말했다.
"정현질, 자네의 무공 조예가 이미 자네 사부님보다 뛰어난 것만은 사실
이네, 그러나 제칠교주의 소녀 잔양신공은 결코 보통 무학이 아닐세."
하불감은 돌연 물었다.
"고라선배님께선 언제 제칠교주를 맞아 싸울 생각이십니까?"
고라화상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빈승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네. 물론 이삼 일 안으로......."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약간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노승이 제칠교주를 영전하는 일에 대해 자네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네.
노승은 이미 자신만만하니까."
하불감은 말했다.
"고라선배님께서 단독으로 적을 만나 싸우신다면 적들은 혹시 우리들이
제삼교주를 모살한 것처럼......."
고라신승은 신색이 약간 변하면서 말했다.
"빈승도 그 점을 고려해 놓고 있으니 하현질은 마음을 놓게."
하불감은 말했다.
"정말 걱정이 됩니다."
오경을 알리는 북이 울리자 창 밖에 은은히 동녘이 터 오는 것이 보였다.
기나긴 밤이 이미 다 지난 것이다.
고라화상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창을 열
고 신선한 공기를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신 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
다.
"호창부 도형이 무림 맹주의 직책을 맡은 뒤부터 강호 무림은 한동안 조
용했었네. 천하 만물에는 자연적으로 일정한 정율이 있어 모든 사물이 그
극에 달하면 정지 상태에서 다시 움직임이 생기듯이 이번 살겁은 하늘이
이미 정한 것 같군.
비록 노승이 정말 눈을 감고 저승으로 돌아간다 해도
무림도는 한바탕 변동을 겪은 뒤 자연 구세주 한 분이 나타날 것이네. 그
렇게 되면 동란은 평정되고 적의 우두머리는 소멸할 것일세."
이렇게 말을 마치자 그는 몸을 돌리고 다시 포단 위에 앉은 뒤 말했다.
"고소협, 하현질, 정현질, 그대들 세 사람은 바로 미래의 중원 무림도의
기둥들이오. 그러므로 장차 무림의 부흥, 강호의 정의를 유지하는 것은 당
신들 세 사람의 합심에 의지해야 할 것이오. 그대들의 목숨은 어느 누구
보다도 중요하니 절대로 일시적인 만용을 부리지 마시오.
대영웅, 대호걸
은 많은 조건을 구비해야 되는 법이지 오직 용맹한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오. 삼국 시대의 여포(呂布)가 천하에서 제일 용맹스러웠으나 지
모(智謀)가 없는 일종의 필부지용 밖에 갖추지 않았었소. 영웅 호걸이란
진퇴를 알고 상황을 이해하며 먼 곳을 내다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
이오."
고라화상의 이와 같은 훈시는 하불감, 정음천, 몽천악 등 세 사람의 심정
을 더욱 침중케 하였다.
그들은 암암리에 한 가닥 불길한 예감이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고라화상은 말했다.
"그대들은 이제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시오."
그리하여 하불감 등 세 사람은 각자 고라화상을 향해 인사를 하고 물러났
다.
세 사람은 모두 서쪽 누각의 객청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패왕궁 하불감이
침묵을 깨뜨리고 말했다.
"고라사백님께선 이미 홀로 제칠교주를 영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노
인장께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정음천이 말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제칠교주가 중인들을 이끌고 포위 공격을 하거
나 혹시 간사한 계교를 발휘할까 하는 것입니다."
몽천악은 서서히 말했다.
"우리들이 지금 필히 알아야 할 것은 고라선배님이 어느 날, 어느 시각,
어느 곳에서 제칠교주를 영전하는냐 하는 것입니다."
하불감은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몽천악은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계속 고라 노선배님의 행동을 감시해야 하오. 그리고
약간이라도 무슨 낌새가 있으면 곧 연락을 해서 뒤를 따릅시다."
정음천은 말했다.
"고형의 말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은 그들이 많은 인원으로 포
위 공격을 해도 방비할 수 있겠지요."
하불감은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고라사백님의 마지막 그 훈시 속에 이미 이번 싸움의 불길함을 깨
달았습니다."
몽천악도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고라 노선배님께선 일찍이 팔 년 전에 이미 제칠교주의 암습을 받았습니
다. 어쩌면 그분께서는 팔 년에 걸쳐 소녀 잔양신공을 견제할 수 있는 무
학을 연구해 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노인장께서 제칠교주의 손에
패한다면 천하에서 누가 그녀를 대항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칠교
주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거해야 합니다. 고라 노선배님과 제칠교주와
의 대전은 필연적인 것이었으나 단지 시일이 예상보다 빨라진 것 뿐입니
다."
하불감은 말했다.
"그럼 정형과 고소협께선 먼저 휴식하십시오. 나는 지금부터 고라 노선배
님의 동정을 감시하겠습니다."
몽천악은 말했다.
"하맹주께선 편할 대로 하십시오. 저는 별로 자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어젯밤 한 번의 악전(惡戰)으로 중인들은 모두 극도의 피곤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건강한 데다가 지금 마음이 지극히 무거웠기 때문
에 쉽게 휴식을 취하려 들지 않았다.
점심 무렵, 하불감은 여러 군협과 단장홍 유한수, 호천옥 등 중요 인물을
불러 들였다.
그리고 제삼교주가 소림 고라신승을 가장한 일과 앞으로 무림 국세가 변
화되어 나아갈 상황을 선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구대문파의 무림맹 위원 중 소림파의 원과대사, 무당파의 황학도장, 점창
파의 원비금도 홍통남, 공동파의 현천관주 욱청풍 등 네 사람은 계속 무
림 맹주부에 남아서 패왕궁 하불감을 도와 무림맹의 위엄을 다시 일으키
도록 결정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본파로 돌아가 모든 무림 대세를 각파 장문인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남몰래 무아진교가 잠복시켜 놓은 첩자들을 제거하고 적극적으
로 경계를 하며 무아진교가 공세를 취하여 문파를 도살할 수 없도록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다.
이로부터 중원 무림 구대문파는 하루 사이에 하나의 극히 거대한 무림 세
력으로 변해 족히 어떠한 돌변에도 응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라신승이 제칠교주를 영전하려는 일에 관해서는 몽천악, 정음천
등만이 알고 있었다.
하불감은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삼일이 지나갔다. 무림 맹주부는 지난날에 비
할 수 없이 더욱 고요해졌다.
그러나 부 안의 상하 수백 사람의 심정은 한때라도 안정되어 본 적이 없
었다.
더욱이 하불감, 정음천, 몽천악 세 사람은 요 며칠 동안 얼굴에 약간 초췌
한 기색조차 엿보였다.
소림 신승 고라화상은 이 삼일 동안 밤이나 낮이나 동쪽 누각에서 한걸음
도 나가지 않았다.
몽천악 등 세 사람은 서쪽 누각 안에서 고라화상이 책상다리를 하고 포단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석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밤의 장막이 점점 내려앉을 무렵 하불감, 정음천,
몽천악은 여느 때처럼 서쪽 누각 위에 모여 있었다.
하불감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라사백님께선 아직 불을 켜지 않았군요. 분명히 오늘 밤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정음천이 말했다.
"제칠교주가 고라사백님에게 편지에서 약속한 기한은 이제 자정이 되면
다되는 것입니다."
몽천악은 돌연 말했다.
"우리들 세 사람은 지금부터 각각 이 별원 밖에서 수호하면서 멀리서 동
정을 감시합시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어둠 속에서 협의하고 난 뒤 하불감이 우선 세 명의
위사를 불러왔다.
그는 위사들을 검은 색깔의 옷으로 갈아 입히고 창문을 닫은 뒤 등을 켜
고 서쪽 누각의 동실(東室)에서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세 사람은 소리 없이 서쪽 누각을 빠져 나왔다. 복장은 부내
위사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몽천악은 바로 서북 모퉁이의 지붕, 어두운 곳을 지키게 되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저녁 일찍 떠 오른 달이 동쪽에서 서서히 이동하여
대지는 별로 어둡지 않았다.
집의 그림자, 수복 등은 백 장 밖에서도 환히 볼 수 있었다. 가을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면서 밤도 점점 깊어 갔다.
그때 돌연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민첩하게 동북 모퉁이의 정원으로 지나
갔다. 밝은 별과 달빛이 그 사람의 머리 위를 내리비쳤다.
번쩍번쩍하는 날카로운 빛이 반사되어 분명히 화상의 머리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몽천악은 제비처럼 날쌔게 몸을 날려 동북방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함께 동남, 서남에서도 지키고 있던 하불감, 정음천도 동시에 행동을
개시하여 뒤쫓아갔다.
이 네 사람의 그림자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기민했다. 그리하여 비록 맹
주부의 경계가 삼엄하였지만 그들의 행적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맹주부를 둘러싼 담을 넘어 나왔다. 이때 앞에서 달려가
던 사람의 그림자는 걸음의 속도를 더욱 재촉하여 동남쪽을 향해 질풍같
이 치달려 가고 있었다.
한 일 리쯤 추격해 갔을 때 몽천악과 하불감, 정음천 세 사람은 끝내 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때 몽천악은 돌연 '아!' 하고 속으로 외쳤다.
'이상하다. 앞의 저 사람이 만약 고라 노선배님이라면 달리는 동안 어찌
저렇듯 조금도 꺼려함이 없을까?'
고라화상은 제칠교주와 약전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의 참여를 원치 않았
으므로 행동에 반드시 주의를 기할 것이다.
적어도 한 번쯤은 은밀한 곳을 찾아 고개를 돌리고 뒤를 살펴보았어야 옳
을 것이다.
그런데 앞의 그 사람은 맹주부에서 나온 뒤로 발을 멈추지 않고 곧장 앞
으로 치달렸고 마음속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것 같았다.
몽천악이 이처럼 깨닫는 것과 동시에 하불감과 정음천도 앞의 그 사람이
고라신승같지 않음을 느꼈다.
그러자 하불감이 소스라치게 외쳤다.
"큰일났습니다! 우리들은 조호이산의 계략에 빠진 것입니다."
몽천악이 물었다.
"그럼 앞의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불감은 말했다.
"아마 원과대사일 것입니다."
몽천악은 말했다.
"아무튼 쫓아가 봅시다."
이렇게 말을 마치자 세 사람은 속력을 더해 마치 세 줄기의 유성처럼 그
사람 뒤, 칠 장 가까이 쫓아갔다.
이때 앞의 그림자는 이미 뒤에 따르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차린 듯
갑자기 속도를 늦추었다.
몽천악, 하불감, 정음천 등 세 사람은 급급히 그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바라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둥근 달 같고 피부는 하얗고 불그스레한 윤기가 번쩍
였다. 그리고 몸에는 커다란 회색 가사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과
대사임에 틀림없었다.
원과대사는 하불감 등 세 사람을 보자 즉시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대백사께서는 나를 보고 오늘 밤 해시 조금 전에 슬그머니 맹주부를 떠
나 곧장 동남방으로 달리면 즉시 하맹주 등을 만날 수 있다고 하였소. 과
연 세 분이 이처럼 달려오신 걸 보니 무슨 분부가 계셨습니까?"
몽천악 등 세 사람은 이 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다급하기도 하고 또한 우
습기도 했다.
하불감은 원과대사의 묻는 말에 대답조차 없이 다급하게 물었다.
"고소협,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고라사백님을 뒤쫓을 수 있겠습니까?"
몽천악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고라사백님께선 우리들이 원과대사님을 뒤쫓은 동안 이미 약속 장소에
닿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어느 곳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겠습니
까?"
정음천은 말했다.
"우리 네 사람 각자는 네 군데로 방향을 정해 찾도록 해봅시다."
원과대사는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하맹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소?"
하불감이 말했다.
"시간이 급박하므로 자세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즉시 방향을
나누어 고라사백님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 발견하면 남몰래 뒤따라가 그
노인장을 도웁시다."
정음천은 말했다.
"맹주부를 중심으로 해서 나는 동쪽을 찾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는 고개를 쳐들고 달려나갔다. 하불감도 북쪽을 향
해 수색해 가기 시작했다.
장내에는 단지 몽천악과 원과대사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제자리에 서
서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원과대사는 물었다.
"고시주는 어느 쪽을 찾을 생각입니까?"
몽천악은 말했다.
"남쪽입니다."
원과대사는 말했다.
"그럼 빈승은 곧 서쪽을 찾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즉각 몸을 움직여 서쪽을 향해 질풍같이 달려갔다.
몽천악은 고개를 들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사방을 훑어
보고 나서 중얼거렸다.
"고라신승께선 원과대사에게 곧장 동남쪽으로 달리도록 명하고 나서 또한
우리들 세 사람이 속은 것을 발견하자 다시 제길로 돌아가...... 이렇게
가정한다면 그분이 약속한 지점은 동남쪽이 아니면 남쪽일 것이다......
동남쪽은 바다에 임하고 남쪽은 구릉과 평원이니...... 아, 맞았다! 분명
히 그곳이다."
몽천악은 한동안 중얼거린 뒤 돌연 절속하고도 놀라운 경공을 전개하여
한 가닥 연기처럼 남쪽을 향해 질풍같이 달려갔다.
그의 경공 위력은 극히 깊고 그 속도의 빠름이란 천리마조차 경탄할 지경
이었다.
불과 일각 사이에 십여 리 길을 달려나와 드디어 구릉이 기복을 이룬 하
나의 언덕 앞에 당도했다.
몽천악은 어려서부터 개봉부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이곳이 유명한 귀두령
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눈길을 들어 앞을 바라보자 높고 낮게 기복을 이룬 구름이 도처에 있었으
며 한층 한층씩 남으로 뻗어져 나갔다.
구릉의 고봉들은 수평선에서 삼십여 자나 높이 솟아 있었다.
마치 그 형상이 하나하나 사람의 머리 같은 모습이었으므로 귀두령이란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 같았다.
몽천악은 잠시 주춤했다가 경공을 전개하여 곧장 귀두령의 가장 높은 구
령으로 뛰어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달빛과 별빛이 싸
늘하게 비치는 귀두령은 밤 공기만이 차가울 뿐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
요했다.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몽천악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남쪽이라 할지라도 결투에 적합하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다른 점이 없을
텐데.......'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몽천악은 돌연 북쪽의 구령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민첩하게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몽천악은 이미 자기의 그림자를 숨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놓았었다.
그래서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숨어 이 귀두령에 점차 가까워지는 사람을
주시했다.
과연 그는 소림의 고라신승이었다.
고라화상은 한 벌의 황색 가사를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염주를 늘어뜨리
고 손에는 총채를 들었다.
태연한 모습으로 구령을 올라오던 고라화상은 돌연 그 칼날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사방의 지형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 가벼운 걸음으로 언덕 가운데에 펼쳐진 잔디로 걸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몽천악이 숨은 곳은 바로 고라화상이 앉아 있는 곳에서 왼쪽 뒤에 있는
한 덩어리의 암석 뒤였다.
암석 앞에는 공교롭게도 두 그루 키가 작은 소나무가 가려져 있었다.
몽천악은 고라화상이 지금에서야 도착하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그는 고
개를 들고 하늘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미 자정이 일각쯤 지나 있었다. 그
러나 고라화상이 제칠교주와 약속한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고라화상이 책상다리를 하고 지면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노
승이 입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몽천악은 감히 가볍게 움직일 수가 없었
다. 왜냐하면 고라신승이 일단 정좌하면 귀가 매우 예민하게 되어 바로
이십 장 밖의 호흡 소리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천악은 즉시 구흡법을 운용하여 암석 위에 찰싹 달라붙었다. 시
간은 일 분 일 초씩 흘러가 자시가 이미 지났으며 축시에 가까워졌다.
축시가 지나자 인시에 이르렀으며...... 끝내 하룻밤이 거의 다 지나갔다.
몽천악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하다. 제칠교주가 약속을 어긴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고라화상이
어찌 이곳에서 하룻밤을 꼬박 밝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죽음의 성같이 고요하던 귀두령 위로부터 한
줄기 얼음같이 차가운 음성이 울려왔다.
"고라화상, 당신은 언제 왔습니까?"
몽천악은 이 말을 듣자 속으로 찔끔하며 재빨리 두 눈의 시력을 다해 바
라보았다.
한 줄기 아름다운 백색 그림자가 몽롱하고 엷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그림자는 마치 애처로운 혼처럼 고라화상의 칠 장 밖에 서 있었다.
고라화상은 여전히 지면 위에 앉은 채 서서히 대답했다.
"빈승은 자시 초각에 당도하였소이다."
제칠교주는 냉랭하게 말했다.
"노화상, 그처럼 일찍 오신 것은 혹시 내가 암암리에 매복이라도 숨겨 두
었을까 걱정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고라화상은 말했다.
"빈승이 어찌 감히......."
제칠교주는 더욱 냉소를 띠고 말했다.
"제삼교주는 능운보탑 안에서 당신들에게 포위 공격을 받고 죽었습니다.
오늘 당신이 또다시 얼마나 많은 인원을 매복시켜 놓았는지 모두 불러내
보시죠. 공연히 본교주로 하여금 쓸데없이 손발을 놀리게 하지 마시
고......."
몽천악은 이 말을 듣자 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일까?'
고라화상은 말했다.
"다른 사람이 이곳에 매복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여시주의 눈초리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오."
제칠교주는 냉랭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오경의 약속은 당신과 나의 생사를 가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곧 승부를 결정하기로 합시다."
고라화상은 말했다.
"잠깐!"
제칠교주는 말했다.
"노화상, 무슨 유언이 있습니까?"
고라화상은 말했다.
"싸움을 하기 전에 빈승은 여시주에게 물어 볼 일이 약간 있습니다."
제칠교주는 말했다.
"의문이 있다면 서슴없이 말해 보시오."
고라화상은 말했다.
"여시주는 혹시 팔 년 전 소실봉 뒷산에서 나와 싸운 적이 없소? 그때 그
어린 여시주가 바로 당신이 아닌가 알고 싶소이다."
제칠교주는 말했다.
"노화상의 기억력은 매우 좋은 편이군요. 그렇습니다. 바로 나였어요."
고라화상은 이미 그녀임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해서
확실히 듣게 되자 마음속으로 다시 놀라움이 솟아났다.
잠시 후 고라화상은 다시 말했다.
"팔 년 전 여시주는 잔양장 공력을 사용해 빈승을 타격했습니다. 빈승과
여시주 사이에 어떤 깊은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제칠교주는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팔 년 전 나는 이미 노화상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명을 받들고
당신의 목숨을 노린 것 뿐이며 개인적으로는 결코 원한이 없습니다."
고라화상은 염불을 외고 나서 말했다.
"여시주, 여시주는 몸에 무림 절학을 지녔으나 그 기예를 믿고 함부로 사
람을 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천리를 어기는 일입니다."
제칠교주는 거만한 웃음을 얼굴에 떠올리며 말했다.
"나의 사부님은 이십여 년의 기나긴 세월에 걸쳐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화상께선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허비해 가며 나를 선도할 필요가 없습니
다."
고라화상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여시주의 사부님이 누구이신지 알려 줄 수 있겠소?"
제칠교주는 말했다.
"무아진교의 제일총교주입니다."
고라화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제일총교주는 남자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자입니까?"
제칠교주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자입니다. 이런 말을 당신에게 알려주어서는 안될 터이지만 당신을 곧
저승으로 사라질 것이므로 거리끼지 않고 말한 것입니다."
고라화상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빈승의 추측이 과연 틀림없었군요. 여시주가 기왕 말을 꺼냈으니 다시
영사의 명호까지도 말해 버리는 것이 어떻겠소?"
제칠교주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갈수록 태산이군요. 사실 나도 명호를 알지 못합니다."
고라화상은 급히 물었다.
"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시주의 소녀 잔양신공은 어떤 경지까지 연마
했는지요?"
제칠교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제구단 초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을 물으십
니까?"
고라화상이 처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것은 빈승이 오늘 여시주와의 싸움에서 결코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
오. 또한 내가 여시주의 손에 죽을 경우 무림에서 당신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오."
제칠교주는 교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상은 중원 무림 제일 고수로 호칭됩니다. 만약 내가 당신을 죽이면 무
림에서 나를 이겨낼 사람이 과연 어디 있겠습니까?"
고라화상은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학 일도란 바다 같이 넓어 결코 한계라는 것이 없소이다. 자고 이래로
자질이 뛰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절학을 연마하여 천하에 무적수라 자부하
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다른 사람의 손에 죽어 갔소이다. 여시주는 총명한
사람이므로 당연히 이같은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오."
제칠교주는 냉랭하게 말했다.
"오경이 이미 다 지나갔으니 쓸데없는 소린 그만 합시다."
고라화상은 나직하고 침울한 음성으로 염불을 외우고 나서 말했다.
"자고로부터 성현 중에 누가 과실이 없었겠소. 개과천선이라는 말을 안다
면 그 이상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러니 여시주는 어서 마음을 고쳐
먹으시오."
이 몇 마디 말은 우렁차게 울려 구령에 메아리를 불러 일으켰다.
제칠교주는 안색이 약간 변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오늘 약속한 것은 결코 대사의 담경 설교를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닙
니다. 그러니 대사는 무슨 절학 호신이 있는지 마음껏 발휘해 보십시오."
고라화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빈승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살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말을
따르지 않고 끝내 고집을 피우겠다면 여시주는 곧 손을 써 보십시오."
이때 동쪽에서 오색 찬란한 아침 해가 떠올라 왔고 엷은 안개는 점점 흩
어졌다.......
제칠교주는 몸에 눈같이 흰 나삼 한 벌을 걸쳤으며 어깨에는 하얀 여우털
로 된 어깨걸이 한 자락을 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요염하고 아름다웠다.
또한 소림 신승 고라는 황색 가사에 염주를 목에 걸고 합장한 쌍장에 총
채를 쥐었으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한 모습은 엄숙하고 장
엄했다.
이 두 명의 절세 고수는 서로 칠 장 거리를 두고 있었다. 별안간 네 줄기
신광이 번개 같이 교차되었다.
한바탕 경천동지할 공전절후의 결투가 전개될 순간이었다.
갑자기 제칠교주의 요염한 몸이 허공으로 석 자쯤 솟구친 뒤 번개처럼 칠
장 밖에서 곧장 고라화상을 향해 날라 왔다. 그 속도의 빠름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고라화상은 번개처럼 덮쳐 오는 제칠교주를 못 본 척했다. 그는 쌍장을
합장한 채 총채를 가볍게 쥐고 책상다리를 하고 주저앉아 꿈쩍도 하지 않
았다.
그러자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제칠교주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왔다. 그녀
는 고라신승과 칠팔 자쯤 떨어진 곳에서 길을 돌아 밖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사 장 밖에 내려앉았다.
제칠교주의 안색이 돌변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노화상의 공력이 깊은 것으로 보아 놀랍게도 이미 달마암기를 연마해 냈
군요."
일단 이처럼 말하자 제칠교주는 다시 허공으로 질풍같이 날아왔다.
첫댓글 즐감~!
ㅈㄷㄳ
감사합니다
달마암기라!
ㅎㅎㅎ
즐감하고 갑니다.
ㅈㄷ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결투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
감사
ㅈㄷㄱ~~~~~~~```````````````````
감사~~~~~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구나
즐감
줄독
즐독
즐독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잘읽었습니다
즐독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