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 심춘자
붉은 감잎이 떨어지는 어깨 뒤편
조용히 바람이 분다
느즈막한 아침 나른한 밥상
푸른 파도를 타고 건너온 고등어
단상 위에서 펄떡이고 있다
품앗이가 필요 없는 물 건너 보리밭
굵은 땀이 주르륵
허리가 부실했던 어머니가 신작로를 재촉했다
광주리를 따라가는 백구 꼬리가 살랑살랑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가는 어린 손
논둑에 콩꽃이 만발했다
누런 보릿짚에 앉아 먹는 들판의 오찬
검푸른 휘장을 두른 바다 내음
막걸리 한 사발에 대가리 한 입
어린 숟가락 위 푸른 물결 한 모금
세상이 밝아지는 입 안의 혀
무심한 어깨의 말
비린내 좀 나지 않아?
*시집/ 낭희라는 말 속에 푸른 슬픔이 들어 있다/ 천년의시작/ 2022
심춘자 시인은 늦깎이로 등단해 첫 시집을 내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의 많은 시가 고단한 인생을 헤쳐오면서 가슴에 고인 슬픔을 불러 낸다.
이래서 모든 예술의 원천이 슬픔이라 했던가. 이런 시는 연식(年式)이 최소 50년은 넘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어릴 적 풍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 몸에는 양반보다 머슴이나 천민의 피가 흐르기 때문인지 농투성이 유전자를 숨길 수 없다.
시에서 누런 보릿짚이 나오는 걸 보면 딱 이맘 때쯤이다. 지금은 사라진 모습이지만 논에서 일을 하다 논두렁에 둘러 앉아 들밥을 먹던 풍경이 아련하다.
흙 묻은 종아리를 씻을 겨를도 없이 막걸리 잔을 들이키던 아저씨들, 아기 주먹만 한 상추쌈을 입이 찢어지게 벌리고 먹던 아주머니들,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한 술 뜨고 가라고 소리쳐 부르던 손짓들, 참으로 그리운 풍경들이다.
내 어머니는 고기를 아예 먹지 않았다. 모태 초식 동물의 전형이랄까. 내 어릴 때 어머니는 고된 품팔이 일을 많이 나갔다.
술과 노름으로 재산 탈탈 털어 먹고 먼저 간 남편 덕에 일찍 혼자 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소처럼 일을 해서 식량을 구해야만 했다.
농번기 때 어머니가 논일 나간 후 점심 시간쯤 되면 나는 어머니 일터로 갔다. 논두렁에 볏짚을 깔고 앉아 먹는 일밥은 얼마나 고마운 식사였던가.
요즘엔 전부 기계로 농사를 짓고 설사 일꾼을 사서 한다해도 짜장면 배달을 시켜 먹는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일꾼을 쓰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삶은 고기에 상추쌈을 내는 집도 있었고 묵은지에 지진 자반 고등어나 생선구이를 내는 집도 있었다.
어머니는 육류도 드시지 않았지만 비린내 나는 생선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먹는 음식은 된장에 풋고추 찍어 상추쌈을 드시는 거였다. 당연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고등어를 맛볼 수가 없었다.
가난한 집에 육류는 언감생심이었으나 값싼 고등어 정도는 먹을 수 있으련만 비린내만 나면 헛구역질을 할 정도인 엄마에게 고등어는 금기 생선이다.
기껏 생선이래야 갈치조림 아니면 명태국이었다. 조개나 꼬막, 굴 같은 것을 드시긴 했어도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일품 요리는 코다리 조림이었다.
무슨 양념으로 만든지는 몰라도 짭조름한 코다리 조림이면 고봉밥도 금방이었다. 조금만 싱거우면 맨입에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나는 고양이만큼 생선을 좋아한다. 비린내 난다면서 만지는 것조차 멀리 했던 어머니와 달리 고등어가 나의 최애 생선이다.
심지어 나는 생선 축에 끼워주기 애매한 멸치까지 좋아한다. 음식을 가리지 않지만 육류보다는 생선이다. 해산물이라면 모두 좋아해서 미역도 잘 먹는다.
내가 많은 면이 어머니를 닮았지만 식성은 닮지 않아 뭐든 잘 먹는 편이다.
이런 시를 읽으면 풀만 먹으며 평생 황소처럼 일만 하다 떠난 내 어머니가 그립다.
오늘 같은 날의 밥상에는 옛 추억을 불러오는 고등어 조림 하나면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첫댓글 https://youtu.be/KAVLmL6t8AE
서민들의 밥상
보리밥과 고등어 글과 그림 느낌들이 참 따뜻합니다
이제 청보리밭에도 곡식이 익어 출렁거리고
6월의 바다도 달달한 바람에
서서히 몸을 풀어 파도가 일렁이겠지요
멋진글 즐감하며 문득 떠오르는 노래 올려봅니다.
6월에도
따뜻한 글 많이 올려주시고
늘 건강하세요
PLAY
드가님의 댓글도 참 따뜻합니다.
집을 떠나서야 고등어 맛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래도 무우 깔고 조린 코다리 찜이 어머니의 손맛이었네요.
보리 수확을 하던 딱 이맘때쯤 감나무 아래로 감꽃 주으러 다녔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올려 주신 노래도 잘 들었습니다.ㅎ
사진을 보니까~
가을걷이 하는 들판이네요.
어릴 때 우리 마을의 들판의 풍경입니다.
나도 저렇게 들판의 논에서
밥을 먹어 본 기억이 몇 번 있는데...
모내기 하는 계절에...
앞으로도 들밥 먹는 풍경은 볼 수 없을 겁니다.
늘 김치류만 먹다가 일밥 먹을 때 별미 음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모내기 철 밤이면 논에서 개구리들이 자장가를 떼창으로 불러줬지요.
피케티 님과 공감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ㅎ
고등어조림 짜박하게
해서.상추쌈과 먹으면
넘 맛있더라고요
유현덕님의 모친 생각에
짠 합니다
울 엄니도
평생을 불자로 사시면서.
생선 .비린거와 육고기 입에도 안대시고
억지로 드시라꼬 입에 넣어 드리면
우욱
구역질 나 하셔요
이 글을 보면서
그리운
울 엄니 생각이 나네요
리야님 모친의 식성이 어쩌면 이리도 울 엄니와 똑같을까요.
그래서 어머니와 외식할 때가 가장 난감했습니다.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찌개 쳐다도 안 보고,
쇠고기 들어간 된장찌개 또한 숟가락도 넣지 않습니다.
그저 조갯살과 두부 들어간 된장찌개 정도 드셨답니다.
글구 맛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고등어와 상추는 완전 찰떡궁합이랍니다.ㅎ
비린내 나는 생선은 집안에서 안합니다, 냄새가 싫어서요....
생선은 그저 외식으로 사먹고 오고말지요 ㅎ ^^
그런가요?
우리집은 이삼일에 한 번 정도 꼭 고등어 음식을 먹습니다.
요즘은 조리 기구와 환풍 시설이 좋아서 견딜 만합니다.
맛난 음식 먹으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맛볼 수 있다는,,^^
저도 코다리조림
엄춍 좋아해요 ㅎ
대구가 고향이라
생선을 잘 모르니
만만한게 간고등어에요
고단한 일 후에
육고기도 고등어도 못드셨다니 ㅠ.ㅠ
사진풍경 옛날 어른들 삶의 현장이네요
정아님이 저와 비슷한 해물 식성이시군요.
고등어는 그때그때 사다 먹는 편이지만 우리집 냉장고엔 늘 코다리가 있답니다.
대구 경북 쪽이 간고등어가 유명하지요.
울 엄니 힘의 원천은 식물성이었던 듯합니다.ㅎ
현덕님~~
어릴적 요맘때의 들판이 한눈에 보이는듯합니다.
어쩜 저와 판박이인 어린시절을 같은 시기에
보내셨네요.
비린내 싫어하는
엄마가 많이 그립습니다.
제가 농촌 출신이라 이런 풍경이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답니다.
옛날에 껌을 사면 판팍이를 구할 수 있더랬지요.
그것도 못 사먹는 처지라 친구들이 하나 주면
개구리 파리 잡아 먹듯 덥썩 받았답니다.
여기요 님이 저와 판박이 공감이라니 좋네요.ㅎ
아이고 짠한어머니 생각
엄니는 끝까지 자식을위해 희생하시며 살았건만
비위가 약하고 식성 까다로운 제 어미는
풀만 자시고도 그렇게 힘든 일을 하셨더랬습니다.
지존님 말씀처럼 짠하기가 이를 데 없네요.
육고기를싫어하시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생선은 많이 먹으며 자랐지요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번씩
생선 반찬은 기본입니다
얼마나 맛있게요~ㅎ
생선 맛을 아시는 동지로군요.
지영님이 생선을 많이 자셔서 그리 젊어 보이는 겁니다.
우리집은 이삼일에 한 번 꼭 생선입니다.
둘 다 식성이 해물쪽이라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네요.ㅎ
저희 친정 어머님 께서도 비린 걸 싫어 하셨습니다.
제친정 아버님 께서는 생선 요리를 즐기셨었구요
현덕님 글을 읽다보니 새삼스레 지금은 곁에 안계신 부모님 생각이 떠오르네요. ^^~
울 엄니는 생선 비린내 뿐 아니라 육고기 냄새도 견디질 못했답니다.
제 어릴 때 돼지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네요.
그래도 명태나 갈치 등은 맛나게 자셨답니다.
풋호박 깔고 풋고추 넣어 매콤하게 조린 엄니의 갈치 조림 생각을 하면 지금도 침이 넘어갑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ㅎ
오죽하면 어머니와 고등어란 노래도 있으까 심춘자 시인의 시 가슴에 사무치네요
저도 배고픈 그 시절이 떠올리기도 싫지만 이상하게도 배고팠던 기억 그때 먹었던 음식? 음식이랄거도 할수 없던 것들이 글로나 말로 보여지면 너무도 반가우니 웬 조화인지
그때를 아십니까
우리의 영원한 인생 보물창고 같기도 한
글 잘읽었어요 현덕씨~^^
심춘자 시인의 시가 사무친다는 운선님 마음 공감합니다.
첫 시집인데도 보석 같은 시가 많이 실렸습니다.
그때 먹었던 감자나 고구마는 하도 질려서 지금은 잘 안 먹게 되는데
코다리 조림은 여전히 맛이 있네요.
가난을 떠올리면 돌아가기 싫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ㅎ
난 원래부터 비린걸 좋아해서 고등어나 정갱이 꽁치 등등 다 좋아 합니다 고등어나 생멸치 짜박하게 졸여서 상추쌈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지요 봄에 봄동배추 살짝 데쳐서 갈치속젓이나 멸치젓 을 청량고추 넣고 갖은양념 해서 싸먹어도 입맛이 돌아 오지요 언젠가 제주도에서 갈치국을 먹었는데 깨운한게 맛 있엇던 기억이 나네요 하얗게 끓였는데 풋고추 덕인지 비린내 하나도 안나고 시원한게 아주 일미였답니다 그림에 논에서 밥 먹는 모습이 참 격세지감 느까게 하네요 요즘엔 논에서두 짜장면 배달시켜 먹는다네요 기계로 다 하지만 짜투리 논은 사람손으로 해야 된다네요
마치 요리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맛깔스런 음식 해설입니다.
저도 비린 것을 좋아해서 모든 생선을 잘 먹는답니다.
저한테는 비린내도 양념과 섞이면 식욕을 돋게 하기도 하네요.
들밥 먹는 풍경은 사라질지 몰라도 제 마음에 영원히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장앵란 님과 그 시절을 공감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ㅎ
사진속에서
들판에서 여러명의 식사장면
수없이..밥 나르고 많이 보고
자란 추억이 납니다
기계화가 되기전..농촌 풍경의
진짜모습일것 같네요...!!
님의 어머님의..생생한 모습과
역사의 한정면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