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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又一村(우일촌)
남송(南宋)의 육유(陸游)는 애국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여러 시 속에는 금나라에 치여 남쪽으로 쫓겨 간 왕조에 대한 충정이 강하게 묻어 있다. 격렬한 항전을 주장하던 그는 42세 되던 1166년 관직에서 쫓겨난다. 타협을 앞세우던 남송 조정 내의 주화파에 의해서다.
답답한 심사를 감출 수 없었던 그는 고향 근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작(詩作)에 몰두한다. 이듬해 4월 무렵 육유는 집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원행을 나간다. 지팡이 하나를 짚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을 올랐다. 어느덧 산행의 재미에 깊게 빠져들었던 그는 가파른 산등성이를 기어오른다. 이윽고 그가 당도한 곳은 길이 없어져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곳. 발을 옮기기조차 어려운 곳에서 그가 읊은 대목이다.
이 대목은 중국에서 아주 많은 사람에 의해 애창되는 절구다. 보통 '버드나무 어두운 곳, 밝게 피어 있는 꽃[柳暗花明]'이란 성어로, 혹은 '또 마을 하나[又一村]'라는 명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를 뜯어 보면 사람이 더 나아갈 수 없는 경계에 대한 묘사가 빼어나다. 산이 다하고[窮], 물길도 끊어진[盡] 데서 느끼는 막막함이 대단하다. 길이 없는가 의심하다 눈을 돌렸더니 마주친 곳은 버드나무 우거진 어두운 그늘이다. 시선은 다시 그늘을 떠나 화사하게 피어난 꽃 무더기로 옮겨진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닿는 곳은 꽃 무더기 너머의 마을이다. 답답함의 경계에서 툭 터진 곳으로 나아가는 시선의 옮겨짐이 분명하다. 읽는 이로 하여금 적잖은 기쁨을 주는 시임에 분명하다.
북핵 문제가 길 막혀 답답한 곳에 이르렀는가 싶더니 버드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졌다. 이제 다시 꽃이 화사한 경계로 옮겨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시쳇말로 급물살을 타는 셈이다. 막힌 곳이 갑자기 뚫릴 상황이니 한반도 해빙을 위한 기대가 자연스레 높아진다. 버드나무와 꽃을 넘어 안락한 마을로 옮겨질까 가슴도 설렌다.
그래도 우려는 여전하다. 한국이 빠진 채 북한과 미국이 진행한 협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미 개발된 핵 문제는 해법이 오리무중이다. 그 위협을 이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손뼉만 치고 있기에는 뭔가 크게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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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상을 생각할때 주위배경을 생각하면서 감상하라 하더니 그렇군요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