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間의 追憶을 뒤로 하고 서울극장의 영사기가 멈췄습니다.
'영화'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벗이요, 다정한 戀人 같지요. 수많은 얘깃거리가 늘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영화에서의 代打 성공기, 그 세 번째 이야기를 잇습니다.
먼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OCKOO'S NEST,
1975)입니다. 이 작품의 판권을 이미 오래 전에 손에 넣은 大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애초엔 본인이 직접 주연하려 했지만, 영화를 만들 당시엔 자신이 이미 너무 늙어버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아들인 마이클 더글러스에게 제작을 맡겼고, 잭 니컬슨을 캐스팅해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기는 등 대성공을 거둡니다. 한 주립 정신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정신자애자들의 서글픈 事緣입니다.
그러나 진짜 代打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千人共怒할 정도로 殘忍하고 加虐的인 首看護員 役의 루이스 플레처입니다. 그녀는 거의 無名 배우로 당시 할리우드의 톱 스타들인 제인 폰다, 페이 더너웨이, 앤 밴크로프트, 엘렌 버스틴 等이 하나같이 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행운이 넝쿨 째 굴러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영화 속에서의 그녀 연기는 마치 '물 만난 고기'였습니다. 당당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快擧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 작품 이외엔 이렇다 할 후속작을 남기지 못 하고 잊혀져 간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밀러스 포먼이 감독한 이 영화로 마이클 더글러스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도 만만찮은 실력을 誇示했습니다.
또 아카데미상 93년 역사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각본상 等 '알짜 다섯 개 부문'을 모두 席券한 딱 세 편의 작품 中 하나가 됐습니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羊들의 침묵'(1991)이 다른 두 작품입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최고의 뮤지컬 영화입니다. 이미 7년동안 뉴욕과 런던에서 각각 3천 回에 가까운 무대공연 기록을 樹立한 空前의 히트작입니다. 이미 무대에서 檢證된 주연배우는 줄리 앤드류스였지요.
영화에서도 그녀의 주연 拔擢은 따놓은 堂上?, 하지만 變數가 생겼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워너社는 헵번에게 落點했습니다.
최고의 가수이며 연기자인 앤드류스와는 달리 노래를 못 부르는 헵번의 영화 속 노래는 결국 마니 닉슨이라는 가수의 목소리로 더빙했습니다. 줄리 앤드류스는 적잖이 속앓이를 했다지만, 같은 해 '메리 포핀스'로 보란 듯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는 뒷얘기도 전해집니다.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타며 24살 때부터 세계적 배우로 우뚝 선 오드리 헵번은 64세에 세상을 뜨며 長壽하진 못 했지요. 다섯 언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은퇴 後엔 인도적 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獻身했습니다.
줄리 앤드류스는 1998년 聲帶 수술로 음성이 심각하게 損傷되면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자 아동작가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더욱 유명한 그녀는 지금 86세가 됐군요.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사연이 참으로 애처로웠던 영화 '길'(LA STRADA)을 모른다는 올드 팬이 있을까요?
성격이 거칠기 이를 데 없는 떠돌이 借力士가 온순하고 天眞爛漫한 여자 助手를 데리고 정처없이 떠돌며 궂은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앤서니 퀸과 줄리에타 미시나의 絶妙한 조합이 아니었더라면 이 영화가 과연 세계적 명작이 될 수 있었을까요?
또 映畵史 100년에 큰 足跡을 찍은 명품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제작자는 기획단계부터 주인공 役으로 다른 배우를 강력하게 밀었습니다. 바로 당시에 상대적으로 훨씬 유명했던 버트 랭커스터와 실바노 망가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背水의 陳을 쳤지요. 앤서니 퀸과 함께 젤소미나 역으로 자신의 아내인 줄리에타 마시나의 주연 캐스팅을 貫
徹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는 등 대성공을 거둡니다.
간혹 '여자 채플린'이라고도 불리운 마시나와 펠리니 감독은 평생 偕老했고, 남편이 먼저 他界하자 몇 달 뒤 부인도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느 배역에나 다 잘 어울리는 유일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던 앤서니 퀸, 그는 여러 아내들에게서 낳은 9명 等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던 바람둥이로도 유명합니다. 그림 실력도 만만찮았던 그는 우리나라등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한 재주꾼이었지요.
1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아카데미 남우助演賞만 두 번 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심심할 때 또 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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