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전 영화로 기억 속에 혼란과 충격을 안겨주었던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레이디 인 블랙’이란 영화입니다.
사업밖에 모르는 남편이 사업차 외박을 하던 어느 날, 대저택에 침입한 괴한에 의하여 아내가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사회적인 체면으로 아내의 폭행 사실을 덮어두려고 하지만 폭행을 당한 여주인공 실비아는 복수를 하기 위해 그 괴한이 살고 있는 슬럼가로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복수의 마음으로 찾아간 그 남자에게서 오히려 매력과 연민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 충격으로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전 스웨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든 또 다른 영화 ‘스톡홀름’도 역시 피해자들이 위협을 가한 피의자에게 연민과 동정을 갖게 되는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는 1973년 8월 23일 ~ 8월 28일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의 크레디트반켄 은행에 들어온 무장강도와 인질들 사이에서 생긴 실제 사건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관객들의 후기를 보면 영화보다는 실제 사건이 더 영화 같다는 평을 듣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평화롭던 어느 날, 요트를 타고 도착한 괴상한 분장을 한 범죄자 ’라스’는 크레디트반켄 은행에 들어가서 바로 총을 쏘고 인질들을 잡게 됩니다. 곧이어 출동한 경찰들과 대치하는 ‘라스’ 앞에 그의 친구가 등장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한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범죄자지만 순수한 모습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인질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을 인질로 삼은 범죄자들보다 경찰에게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르는데 영화는 범죄자들에게 차츰 동화되어 가는 모습들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게 됩니다.
마침내 범죄자들은 출동한 경찰들의 무력 진압에 투항하게 되고 곧바로 투옥되어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반감과 적대감을 가져야 할 피해자였던 인질들이 재판정에서 오히려 범죄자들의 신변과 건강을 걱정해 주고 변호를 해주는 모습입니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에서 생겨난 심리학적인 용어가 바로 ‘스톡홀름 신드롬(증후군)’입니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피해자인 인질이 가해자인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스웨덴의 심리학자이며 범죄학자인 '닐스 베예로트가' 이런 비이성적인 상황을 보고 처음으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생기는 심리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람은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친절한 모습을 보게 되면 피해자의 자아는 이를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게 되어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가해자의 폭력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톡홀름 신드롬 사례는 큰 사건들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또는 데이트 폭력과 같은 사례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스톡홀름 신드롬은 분명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일종의 심리적 질환의 정신병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톡홀름 신드롬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면 오히려 더 유익하고 흥미로운 사회적인 기능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정의할 때 요즘 그런 나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기현상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소위 ‘나쁜 사람 신드롬’입니다.
한편, 조금은 다른 어감이긴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신조어로 ‘츤데레’라는 말도 ‘나쁜 남자 신드롬’과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츤데레’라는 말은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일컬을 때 표현하는 뜻입니다. 즉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반전 매력’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매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첫인상이나 겉보기와는 다른 매력에 더 큰 자극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일컬어 ‘반전 매력’이라고 합니다.
요즘 한창 대세인 트롯의 열풍에 맞서서 최근 완전히 다른 차별화된 장르의 힐링 예능 오디션 프로그램이 새롭게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싱어게인’이란 프로입니다. 이 프로는 한때 잠시 인기를 얻었다가 세월이 지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가수들이나 아니면 인디밴드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무명 뮤지션들의 등용문과 같은 무대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최근 언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게 된 무명가수들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그중에 이러한 ‘반전매력’을 지닌 뮤지션이 있습니다. 바로 ‘장르가 30호’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승윤’이란 청년입니다.
이 청년은 아버지가 종교계에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목사님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가수의 음악세계가 기존의 음악 형식과 틀을 과감히 깨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데서 더욱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처음 그의 음악을 접하면 그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낯설고 약간의 반항적인 기질과 리듬이 다분히 파괴적일 정도로 나쁜 남자 이미지를 보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가수의 독특하고 놀라운 창의적 음악세계에 많은 팬들은 열광하며 응원을 보냅니다. 그의 음악세계 안에 완전히 매료되어 정신적 인질이 된 듯한 모습입니다. 나쁜 남자 신드롬이나 츤데레 같은 반전 매력입
니다.
코칭 리더십을 강의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리더십 중에서 ‘츤데레 리더십’을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제가 직접 만든 리더십입니다. 강한 카리스마에 반전 매력인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간미를 더한 리더십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직장 상사나 팀의 리더가 힘들고 지친 부하에게 무심한 척 슬쩍 전하는 커피 한 잔에 담은 짧은 메시지 하나의 힘! ‘많이 힘들지? 힘내!’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때 건네지는 이 커피 한 잔과 심쿵 하는 감동의 메시지에 진솔한 마음이 전해질 때, 이미 그 부하는 리더에게 인질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아있는 명품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는 바로 이런 ‘츤데레 리더십’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4년 전 ‘이게 나라냐?’하면서 이전 정부에 반기를 들면서 반드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내걸었던 새 정부의 공약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전까지 수많은 양치기 소년들에 의해 수없이 속아온 우매한 국민들이 ‘이번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살아보았으나 ‘역시나! 다시 그 밥에 그 나물!’이란 초라한 수행평가 성적표로 실망감과 배신감만 증폭되어 양치기 소년들로 가득한 정치판을 다시 외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조심스럽게 기대봅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이미 나쁜 사람으로 각인된 현실을 이 ‘츤데레 리더십’의 매력으로 극적 반전하여 기대에 지친 국민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늘푸른언덕)